- 영어를 왜 배워야 할까요?
작년 하반기부터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었고,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매달 원하는 액수를 벌지도 못했다. 시간이 많이 남다 보니 무료하고 가끔은 우울한 시간이 늘어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내 전공인 미술과 지금까지 열심히 배워온 영어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 그렇게 국제학교 학생들의 숙제와 리딩 컨프리헨션(reading conprehension)그리고 그들의 학교 과제를 케어해 주는 튜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영어가 서툰 한국 10살 미만의 아이와 비즈니스 영어, 특히 회화에 관심 있는 성인 영어도 가리키게 됐다.
이렇게 영어 과외를 준비하며 나 스스로도 계속해서 영어를 공부하고 사용하면서 문득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한국 어머님들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엄청나다. 자신의 아이가 영어를 모국어만큼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큰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영어 실력, 특히 회화 실력이 단기간에 늘지 않으면 마음에 조바심이 든다던지 괜한 선생님을 탓하거나 아이에게 큰 정서적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을 짧게나마 경험하며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왜 우리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였다. 새로운 학생 혹은 주변에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근데 영어를 왜 배우려고 하세요?"
그렇다면 나는 왜 영어를 배웠으면 아직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냥 자연스럽게 엄마가 학원에 보내서 배웠고,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들었고 운 좋게도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게 즐거웠고 책을 읽고 언어 능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어권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운 좋게 영어권 국가로 장기간 유학을 떠나게 됐다. 영어권 국가에 도착하니 영어를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고 내가 가고 싶던 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으니 그렇게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다. 첫 시작이 중요하단 생각에 영국 선생님과의 일대일 레슨과 비싼 어학원 그리고 영국인 가족들과 지내며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영어가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는 나의 모국어가 아니었고,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유학을 온 사람들보다 영어가 서툴렀다. 그냥 정말 대학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졸업을 할 수 있을 정도만의 영어를 배우고 유지하며 한국에 돌아왔고 그 상태로 한국의 대학원에 들어갔다. 한국의 대학원에서도 과에 따라서는 해외 논문을 국내 논문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내 경우가 이런 경우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어려운 영어 논문과 아티클을 접하다 보니 다시 영어가 느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에 즐겨보단 외화 드라마와 영화들의 한글 자막을 없애고 영문 자막으로 공부를 하며 보기 시작했더니 다시 영어가 늘기 시작했다. 또다시 운 좋게 미국인 남편을 만났고 한국말이 서툰 그 때문에 한국말보다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서울에서 외국인 친구들이 늘어났고 대부분의 날들을 한국어보단 영어를 더 많이 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가 편해지고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느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준원어민 레벨의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리서치를 하고, 언어 전문가인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고, 내가 관심 있는 영어 기사들을 읽으면 모르는 어휘를 배우고 익혔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더 자연스럽고 정확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시간적 투자가 꽤나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약 10년 정도를 영어와 가깝게 살다 보니 이제야 영어가 편안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지만 시간이 없고 배움을 지속할 자신이 없어서 도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이 일주일 한 달 이렇게 눈에 띄게 빨리빨리 성장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마음이 답답하고 자신감이 붙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이해하는 부분이지만 언어는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너무 뻔한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듯하다.
많은 어머니들이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원하시고, 무조건 대화를 영어로 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유명한 언어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그 반대인 듯하다. 이미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아이들은 모국어로 사고를 하고 모국어로 개념을 이해하기 때문에, 모국어의 문해력의 높은 아이들이 제2외국어도 비슷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경험상, 아직 영어가 서툰 아이들에게 모든 질문을 영어로 하기 시작하면 금세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는다. 알아듣지 못하니 대답을 할 수 없고 대답을 할 수 없으면 자신감이 줄어들고 그러면 입을 닫거나 반항하게 된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한다면, 일주일에 2시간 3시간의 수업으로 아이들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머니들도 못하는 영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보면, 안쓰럽다가도 다시 한번 왜 우리는 영어에 목숨 거는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영어를 잘하면 여행할 때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를 잘하면 직장에서 더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될지도 모른다. 영어를 잘하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정보들이 늘어난다. 영어를 잘하면 멋있어 보인다. 영어를 잘하면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나의 삶을 확장할 수 있다. 그렇다. 영어를 하면 좋은 점들이 많다. 하지만, 이 장점들이 과연 삶의 본질을 변화시킬 만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99%가 한국말을 하는 한국에서 영어를 못한다고 삶에 큰 지장이 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자신들도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영어 공부를 시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이다. 모국어인 한국어로 책을 많이 읽고 문해력을 키우며 영어를 배우고 영어책을 꾸준히 접하다 보면 고급스러운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모국어의 문해력과 문장력 그리고 개념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언어로 무언가를 익힌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물론 부모 중 한 명이 원어민이라거나 집안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한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의 모국어는 한국어이다. 얼마 전, 잠시 가리켰던 아이에게 안경과 선글라스 이미지를 보여주니 영어로 곧잘 대답을 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안경과 선글라스의 차이점을 물어보니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지를 보고 영어단어는 외웠지만 안경을 언제 사용하고 선글라스를 언제 사용하며 이 두 개의 차이점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말로 설명해 보라 했더니 한국어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너무나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이가 안쓰러웠고, 이것이 한국 영어 교육의 단점의 한 예시인가 당황스러웠다.
결론은, 이미 한국어가 모국어인 아이들 혹은 어른들은 자신의 모국어 실력의 최대 80% 정도까지만 외국어가 성장할 수 있다고 하니 모국어로 문해력 그리고 문장력, 어휘를 향상하며 영어를 접하는 것은 어떨까?
최근에 영국인 친구와 남편에게 한국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었다. 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세요? 그들에게는 각자의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다는, 한국을 더 알고 싶다는 그런 열정. 적어도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