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든 게 그대로지만 공기는 더 차갑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의 꽤나 가깝게 지내던 미술 선생님이 내가 학업을 마친 예술 대학교를 나오셨다. 선생님의 런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영국 교육의 장점과 영국 현지 생활의 어려운 점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선생님이 해주셨던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런던은 원래도 차갑지만, 졸업하고 비자가 끝나고 완전히 무비자 외국인 신분이 되고 나니 그렇게 런던이 차갑게 다가올 수가 없더라"였다.
나는 전형적인 영국 백인 친구들도, 백인들 사회에서 소외당하던 유색인종 친구들도, 인도, 한국 이민 2세 친구들도, 나 같은 유학생 친구들도, 골고루 교류하며 지냈었다. 그래서, 영국이 그토록, 특히 런던이란 도시가 그토록 차갑던가?라고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무슨 말인지 정말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차갑고, 어려운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스노비즘(snobism)' 이면의 자부심과 합리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복지를 우선시하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자들에게도 손이 뻗치던 시절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 영국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내 비쳤을 때, 우리 아버지의 반응은 그 인종차별 심하고 백인 위주의 한때 지지 않는 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곳을 왜 가려고 하냐! 였다. 차라리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나 캐나다, 가깝지만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서 있던 일본을 가는 것이 어떻냐고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영국 드라마와 영국 예술가들 그리고 칙칙하고 우울한 영국의 풍경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하필이면 가장 춥고 칙칙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1월이었다. 유럽의 환상 아닌 환상을 품고 도착하니, 히드로 공항은 인천공항 혹은 도쿄의 공항과 비교해서 허름을 넘어서 오래되고 쾌쾌하기만 한 풍경이었고, 처음 타보는 택시 아저씨의 영국 억양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며 , 그렇게 도착한 호스트 패밀리의 집은 예쁘고 아늑했지만 온돌방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그래도 호스트 패밀리는 친절했고, 호스트 맘의 음식은 새롭고 맛있었으며 방에는 큰 욕조를 가진 화장실과 침대 바로 위에 쓸만한 티브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영국은 해리포터가 튀어나올 것 같은 건축과 아름다운 환상과 기대로 가득 찬 나의 꽃밭이 실현되는 최상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5년을 히드로와 인천공항을 왔다 갔다 하다가 , 7년 만에 방문하는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개트윅 공항(Gatwick airport)에 착륙했다. 놀라웠던 것은, 한국 여권으로 자동 시스템을 통해 여권 한 번만 기계에 찍으면 아주 쉽고 편리하게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1년 만에 사용하는 영국 여권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빠져나온 남편과, 자랑스러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출입국을 지나치며 만감이 교차했다.
7년 만에 드. 디. 어 런던이었다. 그렇게 짐을 찾아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대화를 하며 기차 밖의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대학교 시절 자주 오가던 빅토리아 스테이션(Victoria station)에 도착했다. 여전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부산하고 바쁜 센트럴 런던의 공기와 소음 그리고 역시나 여름에도 흐릿흐릿한 날씨까지. 그렇게 그곳에서 노던 라인(nothern line)으로 갈아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2 존에 위치한 핀즈버리 파크(Finsbury park) 역에 도착했다.
내가 사랑하던 런던의 북쪽.
그곳의 조용한 거주 지역에서 우리의 영국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