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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Oct 24. 2023

(단편 소설) 조금은 아픈 이야기

6. 엄마에 관한 이야기

불이 꺼진 병실 안.

문득 미동도 없이 잠든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엄마가 자신의 자식이 있었다면 조금 덜 쓸쓸한 생을 보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낳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닮은 딸이나 아들이나 혹은 둘 다 있었다면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엄마, 어때? 엄마는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나를 키우기 위해서 해야 했던 희생들에 조금이라도 후회한 적 있어? 옛말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혹시나 가족 안에서 소외된 느낌이 느낀 적이 있어?  어릴 때 내가 너무 아빠만 따라서 커가면서 아빠를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자신을 닮은 부분을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묻고 싶은 말이 넘쳐나지만 한밤중에 잠든 사람을 깨워서 물어볼 내용은 아니었다. 불치병에 걸려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반복하는 기도뿐 그렇게 수척한 엄마의 옆에 앉아 신도 감동할 기도를 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다 보니 어느새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가수면 상태에서도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로 하염없이 슬픈 마음이었다. 과연 당신이 없는, 당신의 부재로 채워진 내 인생은 어떨까?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쓸쓸함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도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이따금씩 찾아오는 사무치는 그림움과 미안한 마음은 평생 가시지를 않겠지. 목소리만 들어도 위안을 주던 존재와의 이별은 나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매일 밤 기도했다. 나의 어머니를 살려달라는 기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그녀의 삶을 불쌍히 여겨 기회를 달라는 기도.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신은 내 앞에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자신의 건재함과 위대함을. 하지만 신과 인간 사이의 거래에는 '당연한'것은 없었다. 진실된 사랑은 희생을 강요한다.


신이 나에게 묻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모두의 선택지를 수정한다면 어떻겠냐 묻는다. 아무리 이 천지를 창조한 신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만든 섭리를 거를 수는 없는 법. 그냥 무작정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선택지에 나의 엄마가 우리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 자신의 아이를 낳고 병도 없이 어떠한 공허함도 없이 살 수 있는 선택을 한다면 그녀는 계속해서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엄마는 아빠를 만났기 때문에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말하고는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애를 낳고 육아를 하며 일까지 병행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친 딸은 아니더라도 반갑고 행복했다고. 지금도 나를 끔찍이 아끼는 엄마는 마음으로 나를 키웠다. 그런 엄마가 이렇게 일찍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엄마를 살리는 방법이 이것 하나라면 나는 이 길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나는 그녀를 기억 속에서 소멸시키는 것의 대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수십 년간 쌓아온 그 소중한 기억을 세상 그 어디에도 남기지 못하고 기억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나는 신에게 우리 모두가 다른 선택지를 선택하더라도 내가 이 기억을 가지고 살기로 선택한다면 허락해 줄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신은 그렇다 답하지만,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는 만큼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도 그 누구도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자 한다. 

후자를 선택하고 평생 엄마를 그리워할지라도 엄마가 더 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잠에서 일어나니 새로운 아침이 나를 맞이한다.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소멸되었다.

아빠랑 나 이렇게 둘이서 열심히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3000번째 아침이다. 

신의 나의 기도에 응답한 이후로 첫 3년은 매일같이 엄마의 부재에 가슴 아파하며 지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했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갔다. 

내 주변 그 누구도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의 기억에서 엄마라는 사람은 지워졌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엄마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요즘 들어 속이 좋지 않았다. 조금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고 속 쓰림이 느껴졌다. 오늘은 꼭 병원에 들르고 출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찍이 집을 나섰다. 


집 근처의 작은 병원은 친절하고 정직한 여자 선생님이 계신 걸로 유명했다. 항상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예약도 쉽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저녁에 예약에 성공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다소 짧은 시간을 기다리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엄마가 바로 앞에 앉아계셨다. 그 친절하고 정직한 의사 선생님이 바로 나의 엄마일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세미 씨,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을까요?


"아................"


"괜찮아요 편하게 불편한 곳을 말씀해 주세요"


나도 모르게 엄마의 눈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차올랐지만, 엄마는 딱히 당황하지 않고 나의 대답을 기다려줬다.


"아... 저 속이 좀 불편해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혹시 평소에 술 드시나요?"


"아.. 네 가끔요!"


"혹시 매운 것도 많이 드실까요? 요즘 젊은 분들이 마라탕이나 매운 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 드시다 보니 저희 병원에도 위염이나 장염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 네 뭐 매운 거 잘 먹는 편이고 즐겨 먹지만, 심하게 자극적인 건 피하고 있어요! 그냥 요즘 좀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어서.. 신경성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마음을 편히 하시고 자극적인 음식이나 과한 알코올 섭취 그리고 커피나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는 차 종류 피해 주시고 잘 먹고 잘 쉬시면서 처방해 드리는 약 제때 복용해 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진료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만.."


"아...."


10년 만에 본 엄마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안색은 밝았고 편안해 보였고 살은 조금 붙은 듯했지만 이전보다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제야 엄마의 책상과 진료실을 둘러보니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귀여운 남자아이와 엄마 그리고 풍채가 좋은 중년 남성분의 사진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아.... 아이가 너무 귀엽네요 선생님 자녀 이신가 봐요?"


"네?? 아! 아 네네 감사합니다. 올해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네요, 늦둥이랍니다 하하"


"아.. 선생님이랑 무척 닮았네요.. 가족사진이 무척 행복해 보이세요.. 다행입니다"


"네??"


"아....... 그냥 행복한 가족사진을 보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져서요!. 감사합니다 그만 가볼게요"


"아.. 네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


"네 선생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가다 몸을 돌려 엄마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 저.. 선생님.. "


"네?"


"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했습니다"


"............ 아 네네, 환자분도요"


그렇게 진료실에서 나와 진료비를 수납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 출근까지 여유가 있었다. 오늘 오전 반차를 썼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남은 데다가 생각보다 진료도 빨리 끝나서 혼자 산책을 하고 점심을 먹고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여전히 요동쳤다.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았지만 마냥 슬프기보다는 행복한 엄마를 보니 마음이 복잡하면서도 뿌듯했다.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나에 대한 인식과 기억조차 없이 살아가겠지만, 나라도 엄마와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갈 테니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알려준 만둣국의 조리법과 간장 닭다리 조림 그리고 우엉조림과 같은 음식이 그리울 때도 기억을 더듬으며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머리 위에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왔다. 

이렇게 앞으로 수십 번의 가을이 오고 갈 텐데, 그 계절 속에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쓰러질 듯 위태한 날에도 가슴 터질 듯 기쁠 것 같은 날에도 마음으로 나를 보듬어 주던 엄마의 기억을 꺼내보며 웃음 지을 테니.


안녕 엄마!

최고의 기억을 선사해 준 당신에게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는데

엄마와의 기억이 나를 밝게 빛나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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