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naMilk Jan 10. 2024

7년 만의 keep calm and carry on

학자들의 도시 옥스퍼드

옥스퍼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영국을 아직 방문해 보지 않았거나, 근래에 방문할 계획이 없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힌번쯤은 런던, 옥스퍼드, 캠브리지라는 지역명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선 세계 최고의 교육 기관중 하나인 옥스퍼드 대학 (University of Oxford, 39개의 컬리지로 구성된 대학교)이 있으며 옥스퍼드 시내를 중심으로 곳곳에 클래식한 분위기 가득한 옥스퍼드 컬리지들이 세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교(christ church college)는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학교의 다이닝 룸을 촬영하기도 한 곳이다. 또한, 크라이스트 처치의 교수였던 루이스 캐럴(Lewis Carol)이 학교의 정원과 연결된 공원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영감을 받아 완성한 이야기가 그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다이닝 룸

필자는 수년 전 런던 외각에서 어학연수를 끝내고 대학교 입학 전 과정인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을 리서치하던 중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옥스퍼드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라에서 구입한 털 달린 재킷과 이번 여행을 위해 급하게 구매한 큰 배낭을 메고 옥스퍼드 기차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자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중세시대의 우중충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단단하고 견고한 건물들에 압도되었다. 사실 건물의 크기가 매우 커서 크기에 압도된다는 것보다는 한눈에도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의 자태가 특별하고 우아했다. 영국의 건물은 특히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이 강한 지역의 건물들은 튼튼하고 견고하게 지어졌다. 옥스퍼드는 사계절 내내 비가 자주 내리고 바람도 꽤나 많이 부는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건물들을 단단하고 꼼꼼히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옥스퍼드의 겨울은 우중충하면서도 뒷골목에서 풍기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시작될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클래식하고 강직한 분위기를 가졌다. 대학교 도시들의 특징은 전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다는 것인데, 이 세계 최고의 대학 도시중 하나인 곳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 이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고 런던에는 이미 유명한 예술대학교들이 많이 분포해 있던 지라 굳이 옥스퍼드 대학교라는 학교에 미대에 진학하겠다는 야무진 야망은 품지 않았다. 사실, 옥스퍼드 대학교에 순수미술 과가 있다는 것도 한참 뒤에나 알았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할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옥스퍼드에 살 수 있을까? 나의 첫 영국 살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 유학원에 옥스퍼드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곳의 실장님께서 옥스퍼드에 있는 사립학교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셨다. 나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 학교에 지원서를 넣었고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10대에서 20대 초반의 국제 학생들이 모이는 작은 사립학교였던지라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허술한 20대 초반의 나는 학교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학교와 내가 1년 동안 머물 숙소가 있던 곳은 옥스퍼드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옥스퍼드의 할렘가였다.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풍경 좋은 카페나 맛 좋은 레스토랑도 ,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마트도 없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그곳에서 1년 동안 학교집 교회만을 오가며 신앙생활과 대학교 입학시험 준비 그리고 미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매일 집에서 밥을 해먹으며 요리 기술도 늘었고 그나마 맛있던 태국 음식점과 인도 식당에서 시켜먹던 입이 터질듯한 매운맛의 커리는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가을에 시작한 첫 학기부터 우중충하고 우울함 가득했던 겨울,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봄의 학기. 사실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만끽할 기회도 없이 가장 우중충한 계절에 월화수목금 학교에 가야 하는 또 다른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그렇게, 대학 원서를 지원할 때가 다가오자 나는 무조건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겠다는 집념으로 런던의 예술대학교에 합격증을 거머쥐고 옥스퍼드를 탈출했다. 이 당시 친해진 친구는 옥스퍼드에 위치한 한 학교에서 학업을 지속했기 때문에 런던으로 이사를 갔음에도 한 번씩 친구와 교회 목사님 가족들을 방문하기 위해 옥스퍼드를 찾았던 것 같아. 그때까지만 해도 옥스퍼드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에서  학업을 마치고 서울로 완전히 돌아오자, 10년 전에 옥스퍼드 땅을 처음 밟았을 때의 흥분과 압도적이었던 학구적인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는 꼭! 다시 옥스퍼드에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의 2박 3일 치열하고 바쁘게 옥스퍼드 곳곳을 돌아다니겠다고 다짐한 우리의 옥스퍼드 행은 기대감과 지나간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뒤섞였다. 새벽 일찍 기상해 모든 짐을 정비하고 런던 빅토리아 역으로 가서 7년 만에 옥스퍼드 코치를 타니 2시간 반 만에 옥스퍼드에 도착했다. 런던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도 그대로였다. 남편의 한국인 친구와 그녀의 프랑스 남자친구가 거주하는 옥스퍼드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의 현관문을 두드리자 아담하고 깔끔한 2층집주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남편의 친구는 한국인으로 영국으로 건너와 이곳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날도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처음에는 여름의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바람에 휘날리는 샤워 같은 비에서 시작해 점차 빗줄기가 강해졌고 비에 홀딱 젖은 채로 남편의 친구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친구와 재회한 남편과 남편의 친구는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지만 나의 친한 친구와 점심 약속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시 급하게 버스를 타러 길을 나섰다.


옥스퍼드에 사는 나의 친구는 나보다 3살 많은 친한 언니다.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는 내내 런던 시내에서 같이 살며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본 그런 소중한 친구이다. 옥스퍼드에서 1년 과정을 다닐 때 인연이 닿은 교회 목사님의 딸이기도 한 언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12월의 겨울, 갑작스럽게 한국에 계셨던 언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며 언니의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러니깐… 아마도 3년쯤 전에 언니를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고, 팬데믹이 생각보다 장기화되자 나의 결혼식에는 오지 못했던 언니는 그 점에 대해서 꽤나 아쉬워했다.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편을 처음으로 소개해주는 자리이자, 영국에서 다시 조우하는 것은 내가 영국을 떠나고 7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옥스퍼드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큰 쇼핑몰이 생겼고 그 안에 수준 높은 음식점과 브랜드들이 입점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옥스퍼드의 할렘이었던,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옥스퍼드의 카울리 로드 근처도 다양한 레스토랑과 펍이 즐비했고, 꽤나 힙한 분위기로 변모한 것이었다. 조금은 억울했다. 가장 즐거웠어야 할 시간에 나는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변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내로 나가기에는 버스를 타고 20분에서 길면 30분이나 움직여야 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찌 됐든, 새로 지은 옥스퍼드의 쇼핑 몰로 들어서자 쉽게 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내리는 비에 어울리는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예상보다 맛있었던 쌀국수와 디저트,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언니 덕분에 이전에 방문해보지 못한 캠퍼스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모들린 대학교(Magdalen College) 근처의 유명한 산책로를 걸으며 비에 젖은 풀의 냄새를 마음껏 맡았다. 옥스퍼드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자체가 풀이 가득하고 그린 띵스(green things) 초록초록한 식물과 나무 그리고 조깅을 하며 조정을 하는 학생들의 함성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학구적인 도시인만큼 좋은 세컨더리 스쿨(미국과 한국의 중학교-고등학교 시스템)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모두가 윌리엄 왕자와 미들턴이 졸업한 세인트 앤드류나, 옥스퍼드, 캠브리지, 유씨엘 등 상위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신만의 학구적 분위기를 어린 나이에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옥스퍼드 여행의 마지막날 시도한 옥스퍼드 도서관 탐방에서 만난 가이드는 가이드를 시작하기 전 옥스퍼드를 빛낸 유명 배우들을 언급했다. 옥스퍼드 걸!이라고 하면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옥스퍼드에서 살며 옥스퍼드에 있는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을 뜻한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해리포터의 엠마 왓슨과 맥고나걸 교수 역 및 수많은 연극과 영국 영화에 등장한 매기 스미스가 있다.

영국에서도 가장 비싼 도시중 하나로 손꼽히는 옥스퍼드. 지금은 모르겠으나 옥스퍼드는 몇 년 전만 해도 런던 다음으로 비싼 도시에 속했다. 실제로 런던으로 매일 출퇴근할 필요가 없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옥스퍼드나 런던 근교에 살며 런던 중심으로 일주일에 2-3번씩 출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영국 여행을 계획한다면 1박 2일 혹은 당일치기도 가능하니 옥스퍼드를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옥스퍼드를 추천하는 편이다. 옥스퍼드 학교를 방문하고 도서관을 돌면서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강력한 학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학구적 열망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개인적인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