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날씨, 음식 그리고 신사의 나라
영국, The United Kingdom.
영국이란 나라를 생각할 때 당신은 무엇부터 떠올리게 되는가?
주변 지인들 그리고 유튜브 및 소셜 미디어에서 영국이란 나라의 정치 혹은 역사 및 문화, 영국 영어와 관련된 콘테츠와 그 밑의 댓글들을 관찰하다 보면 영국의 맛없는 음식, 그리고 우중충하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미국이 등장하기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흔들던, 많이 오만하던 '깡패'이미지가 거론되고는 한다.
후자의 부분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지만.. 많이들 하는 말이 영국인들과 영국 문화는 겉으로는 신사인척 하나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가졌다 말한다. 사실, 이러한 문화와 기질을 고작 5년 남짓 거주한 내가 판단하거나 섣불리 말할 수는 없으나, 살면서 만나온 다양한 사람들 중에 영국인들도 많았던 지라 나만의 결론을 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기질이나 민족성 보다도 나를 조금은 흥분하게 하는 것은 영국 음식에 대한 편견이었다! 내 주변 지인들도 도대체 영국에서는 뭐 먹고살아야 해?라는 질문을 종종 하고는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도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첫 3달 정도는 KFC의 팝콘 치킨과 감자튀김 그리고 중식, 파스타, 피자로 연명하고는 했던 듯하다. 그리고 점차 적응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서 직접 한식을 해 먹거나 한식당을 탐방하고는 했다. 하지만 나의 미식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계기는 옥스퍼드에서 거주할 당시 먹었던 인도 음식이었다. 영국의 국민 음식이 치킨 마살라라고 할 만큼 영국에서 인도 카레와 인도 음식은 제2의 국민음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인도 현지를 가본 적이 없으니 딱히 비교할 곳이 없지만.. 확실히 한국의 유명 인도 음식점들 보다도 맛이 뛰어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먹기 힘든 '찐' 인도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쌀국수'얘기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고는 하는데.. 내가 살면서 먹어본 쌀국수 중에 최고는 이스트 런던 쪽에 위치한 쌀국수 식당이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조금은 건조한 쌀국수 면이 아닌, 살짝 쫄깃하고 깔끔하면서도 깊이 있는 육수와 깔끔한 고기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치킨 허트! 닭의 심장 구이의 쫄깃함과 다양한 육류를 먹고 싶으면 꼭 방문해야 하는 브라질 음식점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 음식 하면 떠오르는 피시 앤 칩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원래도 튀긴 음식을 좋아해서 큰일이긴 하지만.. 대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사 먹던 피시 앤 칩스 가게는 센트럴 런던에서 북쪽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여러분 이곳에서 피시 앤 칩스를 산 후에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리젠트 파크에 앉아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위치는 아래의 사진을 참고...) 그리고 또한 세계적인 도시인만큼 정말 다양한 식문화가 있다. 고급 초밥 & 사시미부터, 랍스터 그리고 제철 오이스터와, 다양한 미슐랭, 스페인, 멕스코 그리고 화려한 차이나 타운까지.. 내가 20대에 맛보았던 유럽식 파스타와, 일식 레스토랑 그리고 다양한 국가의 음식들은 나의 미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물론 갈수록 외식 비용이 많이 비싸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 맛은 보장되는 곳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국의 날씨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다. 갑자기 흐려지고 비가 퍼붓다가 10분 뒤 환한 해와 잔잔한 바람이 불고, 그러다 갑자기 더워지기도 하는 영국 여름의 날씨는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우중충하고 축축하고 조금은 센티하며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국의 날씨가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대에 영국의 날씨는 조금 더 짧은 간격으로 변덕스러워진 것 같았다. 영국의 날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따듯한 티와 맛있는 스콘, 혹은 비건 케이크를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것!
이제 마지막으로 '신사의 나라'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영국은 신사의 나라이며 영국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젠틀 우먼, 젠틀 맨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그들이 잘못을 하거나, 과거의 역사가 언급되거나 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이들의 이 미즈를 조롱하고 들먹거리는 것을 종종 보고 듣고는 한다. 왜 괜히 '신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서 조금의 실수로도 비교적 큰 조롱을 받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영국 사람들은 , 적어도 내가 경험한 영국인들은 친절했다. 길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교환하고, 질서를 지키며, 길을 헤매는 나에게 다가온 나이 지긋하신 영국 할아버지까지.. 내가 마주쳤던 인연을 맺었던 영국 사람들은 친절했다. 신사의 나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느긋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적절한 화법으로 완급 조절을 하는 그들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들이 망쳐놓은 역사와 몇몇 국가들에 대한 태도는 간혹 가다 비겁하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국 사람들이 젠틀하다는 명제를 세울 수는 없지만 매너를 갖춘 사람들이 특히, 대도시에는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영국인이라면 이 신사의 나라라는 수식어를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목도하고 있는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영국이란 나라를 떠올리면 다양한 감정이 뒤섞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큰 변화를 선사했던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