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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Milk Feb 23. 2024

요시다 슈이치 장편 소설 < 다리를 건너다> 리뷰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의 일상이 위협받을 때


(글에는 미묘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연남동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길 사이에 위치한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오랜만에 방문했다. 사람마다 삶의 단조로움이나 예상치 못한 일로 생긴 좌절감, 혹은 이유 없는 무기력감을 대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많은 이유에서 내 생각과는 다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 다른 이들이 상상해 낸 이야기에 내 마음을 숨기고는 했다. 지난 몇 년간 꽤 많은 글을 접했음에도 '아! 이거다'싶은 소설을 찾기 어려웠다. 이미 많은 수의 일본 소설을 접했으며,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에 온전히 만족하기란 쉽지 않으니 어쩌면 이런 것조차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일지도 모르나, 깊은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망을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도착한 헌 책방에서 유명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다리를 건너다는 책을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이날 구매한 세 권의 책중에 가장 궁금했던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곧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나는 이미 그의 책을 두권 가지고 있었고, 그의 소설이 영화로 여러 번 제작되었단 것과 내 '최애' 일본 영화 중 2개인 악인(악인은 책으로도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 '분노'의 저자가 그라는 것이었다. 책에 온전히 빠져들기 전에 천천히 악인 와 분노의 줄거리와 분위기를 생각하다 보니,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영화한 감독이 재일교포 영화감독 이상일이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상일 감독의 분위기와 요시다 슈이치 특유의 분위기가 서로 교차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었나 보다.


이 책은 꽤 두껍다. 번역가 이영미 선생님의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 나면 이미 500페이지가 한참 넘어가 있다. 그럼에도 쉴 새 없이 읽히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 재능이 그만큼 특출 나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500장이 넘는 소설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해 보면, 이 글의 소제목과 비슷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주인공들 삶에 존재하는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잔잔히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예상치 못한 다른 이들의 등장으로,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총 크게 4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굴이고 있습니까? 가 아닐까 싶었다. 첫 장의 주인공 부부는 계속해서 자신들의 마음의 소리를 의심하며, 자신이 내면에 쌓아온 도덕젓 잣대, 윤리적 의식 그리고 감각을 무시한 채로 세상의 시선에 자신들의 선택을 맞긴다. 그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둘지도 모르나 왠지 모르게 찝찝한 감각이 과거의 유령처럼 자신을 쫓아다닌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인지하는 듯 인지하지 못한 이들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 '그때 바꿨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더라도 이 것을 통해 얻는 교훈은 어쩌면 다시 적용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경험과 시간을 역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타임머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타임 슬립으로 통하는 문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부분의 과학자와 일반인이 인지하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번째 챕터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아쓰코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도의원 남편과 아들 한 명을 키우고 있는 전업 주부이다. 한 여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성 의원을 향한 여성 혐오적 발언의 진원지를 찾기 위한 국민과 여론의 사냥이 시작되고 혹시나 자신의 남편이 시대착오적이며 차별적인 말을 한 것이 아닌지 내심 초조해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이자 딱히,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게 해주는 남편이지만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혹은 사회생활을 하며 애써 감추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아내가 알고 있는 남편이란 사람의 진정한 인격은 그녀의 도덕적 잣대를 괴롭힌다. 사실, 그녀가 느껴온 자신의 남편은 꽤나 차별적이다. 그래도 인간을 증오하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면서도, 자신의 평판을 위해 보이지 않게 왜곡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왜곡할 수 있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조금은 불편하고 불쾌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합리한 사건이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뻔한 사회의 질서를 의식하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일반 시민들 중에도 자신과 의견을 같이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아들과 같은 수영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의 엄마들 또한 이 불합리한 사건에 대해 공분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수록 자신의 남편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커지기 때문에 내면의 불안이 자신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장에서 새로운 주인공이 마주한 삶의 균열이 더 심각하다. 자신만의 확고한 도덕적 신념을 가지고 사회-정치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주인공은 항상 '자신은 옳다'라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앞부분에 등장한 다른 주인공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다른 주인공들은 자신이 맞다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 혹은, 내가 맞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고민하지 못한다. 그렇게 내면의 소리들은 제대로 발화하지 못한 채로 내면에서 증발된다. 하고 싶었던 말, 그때 당시 해야 했던 말과 적절한 행동은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3장의 주인공은 자신이 맞다는 확실한 신념하에 극단적 행동을 저질러 버린다. 그 순간에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며 그 행동을 해버리지만, 결과는 처참하고 언젠 가는 후회할 수밖에 없는 큰 죄를 지어버린다.


이 책은 마지막 장이 묘미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장치에 책을 읽으며 어리 둥절 해버리는 것도 잠시, 금세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든다. 1장부터 4장까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조연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결된 있다. 1장에 등장한 누군가는 2장에 짧게나마 언급되며, 2장에 등장한 누군가가 3장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친구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던지, 이런 식으로 큰 세계 속의 작은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크고 작게 서로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들이 꽤나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야기는 자극적이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으며, 섬세한 듯하나 뭉툭하다. 하지만 그 강약 조절이 완벽히 이루어진 그의 이야기를 끝내고 책을 덮은 후 잔잔히 몰려오는 후 폭풍은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성과 관념을 자극했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살아가며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내재된 도덕의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건들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것이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발화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들은 결국 죽어서 내 안에 시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시체들은 서서히 나를 병들게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한 명도 결국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나의 수치심,

후회 remorse

그리고 죄책감


소리 없이 쌓아간 망령은 끝내 나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게 시선과 감각을 잠식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불의에 침묵을 지키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목소리를 내며 순간의 불합리함을 그냥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면하는 이들이 실패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의 모든 선택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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