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 씨,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준혁이 작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는 낡았지만, 제목은 선명했다.
『작은 용기』 — 그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쳤다.
첫 장에는 연필로 적힌 글귀가 있었다.
“누군가의 따뜻함을 믿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용감해진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마치 지금의 나를 위한 말 같았다.
“이 책… 준혁 씨가 적은 거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학 시절에요. 그땐 세상이 너무 커서, 나 자신이 작게 느껴졌거든요.”
나는 책을 꼭 쥐었다.
그의 과거가, 그의 현재를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저도… 그런 기분 자주 느껴요.
면접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내가 너무 작고 투명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는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소연 씨는 작지 않아요.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누구보다 선명해요.”
그 말에,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들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내 마음을 조금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밖은 맑았고,
카페 안에는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향기 속에서, 나는
내가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게 되었다.
책장에서 먼지를 털어내며, 소연은 준혁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봤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커피를 내릴 때처럼, 책을 다루는 손길도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웠다.
"준혁 씨는 왜 이 카페를 시작했어요?"
소연의 질문에 그는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회사 생활이 맞지 않았고,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거든요."
그가 책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길 열고 나서 알았어요.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건 카페가 아니라, '집'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지쳐서 들어왔다가,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곳."
소연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의 카페가 왜 이렇게 따뜻한지 알 것 같았다.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만들고 있었던 거였다.
"소연 씨의 책방도 그럴 거예요."
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연 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니까. 어떤 책이 필요한지,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여기서 일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소연은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과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근데…"
준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책방, 혹시 커피 납품 받을 생각 있어요? 저 좋은 거래처 알거든요."
소연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그 거래처, 믿을 만한 곳인가요?"
"완전 믿을 만하죠. 사장이 좀 말이 많긴 한데, 커피는 끝내줘요."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책장 정리는 끝났지만, 둘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카페의 불빛 아래, 먼지 묻은 책과 낡은 가구들 사이에서, 그들은 각자의 미래를 조용히 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 속에는, 자연스럽게 서로가 있었다.
소연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혁 씨, 만약 제가 정말 책방을 연다면… 가끔 와주실 거죠?"
"가끔이요?"
준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매일 갈 것 같은데요. 제 쉼표가 있는 곳인데."
그 말에 소연의 마음속에도 작은 별표가 하나 붙었다.
'준혁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