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면
이 노래 가사가 원래 이렇게 슬펐던가. 출시된 지 벌써 21년이 지난 이 노래는 10대 때 듣는 것과, 20대 때 듣는 것과, 30대 때 듣는 게 모두 다르다.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던 10대 시절, 초행길을 걷다 진짜 길을 잃었을 때 친구들과 장난 삼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대학 시절,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이라는 친구의 말에 3점짜리 국가안보론 강의를 따라 들었다가 시험공부를 하며 현타가 왔다. 북 핵과 미사일, 전쟁 무기를 종류별로 외우는데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그리고 30대가 된 지금, 내가 정한 길 앞에 막막함이 앞서니 이 노래가 너무 구슬프게 들린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god - 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갓생을 살겠다며 퇴사했지만 여전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춤추는 게 좋아서 댄서가 되고, 달콤한 케이크가 좋아서 케이크 가게를 열고, 먹는 게 좋아서 푸드 상품 기획자가 되고...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잘 버는 사람이 부럽다.
쉬면서 조금이라도 관심 있고 하고 싶은 일에 하나씩 도전하는 요즘, 좋으면서도 불안하다. '더 오래 쉬다가 경력 단절되면 어떡하지? 여기가 좋겠다 싶어서 이직했는데 별로면 어떡하지? 계속 회사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승진했을 텐데...' 떨어져 가는 퇴직금 잔고도 불안함에 한몫한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다.
이 노래에는 몇 가지 물음이 나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길이 정해져 있는가?',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가?', '내가 택한 이 길에 자신이 있는가?'. 아직도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할 순 없는 나지만, 그래도 나는 이 노래에 나오는 몇 가지 물음에 나만의 답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Q.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A. 길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더라. 내 앞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갈림길 앞에서 충분히 고민을 해야 한다. 원하는 길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지?'이면 좋겠다.
20대까진 남들 사는 대로 따라 살았다. 일단 인서울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전공은 점수에 맞춰 합격 가능성이 높은 과로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취업이 잘된 사람들의 루트를 그대로 복사하고자 노력했다. 복수전공, 토익, HSK, 대외활동, 교환학생, 인턴, 그리고 취업. 그게 실수였다. 길은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닌,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30대를 맞이하고 보니, 나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채 어른이 되어있었다. 점수에 맞춰서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재밌을 것 같고 배우고 싶은 전공을 택해야 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했어야 했다. 합격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내 가치관과 맞는 회사에 지원했어야 했다.
나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그저 남들 따라 살았던 지난날의 대가는 번아웃으로 나타났다. 초점 없이 무표정으로 일하고, 회사 내 작은 갈등에도 미친 듯이 화가 나고, 회사가 싫고 일하는 게 싫은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셀프 위로를 하며 앞으로는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기로 했다. 선택의 갈림길 앞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지'를 최우선 순위 기준으로 삼아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Q.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A.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과 명예도 따라오더라. 그보다 '무엇이 내게 기쁨을 주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 없다. 남들의 성공 기준에 부합해도 나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면 성공한 삶이 아니다.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어도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성공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행복하고 즐겁다면 그것이 성공한 삶이다.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웠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나는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나는 이 고민을 30대를 앞두고서야 처음으로 했다. 이 고민을 대학 전공 선택 전에 알았더라면,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이 고민을 이제라도 시작한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른 뒤에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살다가 '먹고 사느라 바빴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먹고살기 바빠서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 채 살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