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아프면
예전에는
"자기야, 아프지 마 내가 대신 아파 줄수만 있다면 “
이제는
"나 자기 없이는 못 살아"
엄마 등에 업혀있는 어린애가 행여나 내려서 혼자 걸어가라고 할까 봐 애를 태우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는 언제나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었고, 강을 건널 때는 돌다리가 되어 주었고, 살면서 내가 지쳐 있을때에는 시원한 사이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나를 앞세워 내 공(공로)으로 포장해 주기도 했다.
그런 와이프가 심장질환이 있어 심장 박동기 pace maker를 달았다.
오늘은 그 심장박동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날이다.
의사를 만나고 나온 그녀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병원 근처 맛있는 베이커리 샵(빵집)을 찾아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와이프는 그동안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이 캄캄해졌다가 1-2분 지나면 정신이 돌아온다면서 힘들어 했었다. 차 안에서 우리 두 부부는 과거 십여 년 동안 병명을 몰라 답답해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드디어 그놈을 잡아 냈다는 성취감에 신바람이 나 있었다.
그때 앞차가 급 정지를 했다. 순발력이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 용케도 부딪치지는 않고 겨우 차를 멈춰 세웠다. 바로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트렁크에 무슨 짐이 있었나? 했다. 연이어 또 한 번 쿵 하더니 이제는 엉덩이가 들려 올라가는 기분이다. 순간 직감했다.
자동차 사고구나!
시동은 켜 있는데 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뒤돌아보니 다른 차가 내 차 밑으로 박혀있다.
나라는 사람은 왜 그럴까? 누가 다치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해야 하는데
AC, 아들이 큰맘 먹고 사준 벤츠인데 망했구먼 하는 생각이 앞서니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중에 들이박은 차량 운전자가 나이 많은 백인 노인이라는 것을 보고서야 저 노인이 안 다쳐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달리는 프리웨이는 편도가 5차선으로 차량의 동행이 붐비는 고속도로다. 옆에 앉아있는 와이프는 당황해하며 "이를 어쩌나?" 한다. 그녀의 어쩌나는 무슨 의미였을까?
망가진 내 벤츠?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내 심장 박동기?
운전사고 경험이 몇 차례 있었던 나는 침착하게
자기야, 움직이지도 뒤 돌아보지도 말고 그대로 앉아 있어
우리는 고속도로 순찰차 highway patrol 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때 내 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또는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위험하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겁에 질려 차에서 내리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에 치어 죽었다.
사간이 꽤 지났는데도 순찰차는 나타나질 않는다. 월추 10분은 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속으로 이 정도의 사고에 10여분 이상 방치됐다면 족히 4킬로미터 이상 차량이 밀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우리는 차 안에서 꼼짝을 않고 순찰차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윽고 순출차와 소방차가 출동했다. 경찰이 옆으로 다가오기에 차 창문을 내리니 "매우 위험하오니 차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주위를 환기시킨다. 그들은 도로를 완전히 차단시키고 나서 교통이 충분히 통제 됐으니 이제는 차에서 내려 차 상태를 확인하란다.
놀랍다.
아우디 (Audi) SUV 차량이 내 차 꽁무니 밑으로 들어가 박혀있고
운전자는 80대로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다.
에어백이 터졌는데도 할아버지 안면은 다행히 상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더러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으면서
좋은 자동차 보험을 갖고 있으니 차량 수리는 걱정하지 말란다.
신차를 구입한 지 얼마 안돼 보이는데, 폐차를 시켜야 할 만큼 자기차는 엉망진창이 돼버렸는데 나에게 다친 데는 없느냐고, 자동차 수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저런 여유는 어데서 나오는 것일까? T, V,를 보면 산불로 인하여 집을 잃은 사람들이 리포터와 웃는 얼굴로 인터뷰하는 장면을 접 할 때면 "집이 불에 다 타버렸는데 쟀더니 앞에서 웃음이 나올까?" 했는데 그토록 여유 있는 백인 할아버지를 여기서 만나다니-------
아무려면 목숨보다 중(소중)할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지
그 운전자와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고 그분의 이름, 전화번호, 운전면허증, 자동차 보험도 확인할 겨를이 없이 나는 고속도로 순찰차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경찰관이 차에서 내리더니 케이스 넘버 case number라고 적혀있는 조그마한 쪽지를 건네준다. policy report (경찰 현장 보고서)가 2주(two week) 이내에 집에 배달될 거라면서 이를 갖고 보험회사를 접촉, 차를 수리하란다. 그러고 나서 그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차고에 세워둔 차를 쳐다 보았다. 꽁무니가 너덜너덜하게 돼버린 이 차를 타고 경찰 리포트가 당도할 때까지 2주간 운전을 할 수 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보험회사의 승낙이 있기 전에 차를 렌트하면 보험이 커버되지 않기에 그렇다고 내 쌩돈을 내가며 차를 렌트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난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들들의 의견을 묻곤 한다. 비록 몇십 년간 이곳에 와 살고 있지만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그들로부터 늘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첫째에게 전화했다.
"경찰이 2주 기다리라고 했으면 기다려 봐야지?" 한다. 어떻게 2주나 기다리냐고 반문했더니 "그럼 어쩔 거야 기다리라는데"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한 모범생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답이었다.
그럼 둘째에게 전화하여 그이는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야지.
"경찰이 말한 대로 2주 동안이나 기다릴 수는 없지. 집 근처 고속도로순찰대 사무실이 있을 거야 인터넷에서 확인하여 찾아가 봐. 내차를 들이박은 상대방의 신원, 전화번호, 보험 등에 관한 기본정보를 알려줄 거야. 내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전화해"
살면서 그렇게도 내 속을 썩이더니만, 본일 말로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마스터했다고 하더니만 세상사는 일은 어찌 이리도 똑 부러지는지. 공부가 시원찮아 저것이 앞으로 무엇이 되려나 했는데. 공부 그까짓 것 좀 잘한다고 우쭐 될 일은 아니구먼. 기특하다. 역시 내 아들답다.
그 할아버지께 전화했다. 안 그래도 내 전화를 기다렸단다. 하기야 그 할아버지도 나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그래도 나는 똑 부러진 아들 덕택에 당신 전화번호를 먼저 찾아냈지만. 보험회사 정보를 받았다. 그리고 내 보험회사에도 보고를 했다.
내 보험회사에서는 내 보험으로 먼저 차 수리를 하고 나중에 상대방 보험회사에 수리비를 청구하겠단다. 상대방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못 받으면 내 보험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니 미국에서는 뒤차가 앞차를 들이받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했는데 청구해 봐야 알겠다고? 이는 상대방 과실 이오니 99.99% 확실하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험회사냐고 화를 냈다. 때려치워요. 당신들은 개입하지 마세요. 내가 저쪽 보험회사와 직접 얘기하겠소. 그러나 나를 진정시키고 나니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 보험회사는 지정된 수리업체가 있으니 그곳에 차를 갖고 가 견적을 받으라고 권한다. 할아버지께서 좋은 보험이니 걱정하지 말랬는데 오죽이나 잘 알아서 해줄까. 견적비가 $5,700 나왔다. 아니 엔진오일을 교환하는데도 $500인데 고작 $5,700? 이유를 물으니 차량이 5년을 경과하면 메이커 부품(O.E 부품)으로 수리해 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무슨 소리, 벤츠 하면 썩어도 준치라고 했는데 아무 부품이나 갖다가 고쳐 주겠다고?
나와 얼마나 많은 여행을 동행해 준 그녀인데 (영어로는 차를 she 라 칭한다)?
이게 누구의 policy입니까? 보험회사입니까? 당신 회사입니까?
보험회사 policy입니다.
이런 고급차를 운전하다 처음 겪은 사고 인지라 조금은 색다른 policy 가 있나 보다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었다. 한번 물으면 쉽게 놔주지를 않는 투견 같은 성격인지라 보험회사 policy를 받아서 정독을 했다. 그 수리업체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객이 선호하는 특정 수리업체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져가 견적을 받고, 결재를 받아서 수리를 할 수 있다는 숨은 그림을 찾아냈다.
남가주에서 벤츠딜러로서 가장 유명한, 평이 좋은 곳을 찾아갔다. 30분 동안 지켜보고 있노라니 20-30대의 고급 벤츠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는 장면은 흡사 벤츠 제조공장을 방불케 했다. 세상에나! 이런 곳도 있네?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조용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돈 많은 사람들의 세상(나만 빼고).
먼저 수리기간 3주 동안 필요로 하는 렌트가를 받았다. 내 차의 value (고급차)를 감안하여 제일 큰 SUV Ford Expedition으로 달라고 했더니 차 크기가 같은 수준 이어야 한다면서 Ford Explorer을 내줬다. 차 운전석에다 나를 앉혀놓고 차 작동범을 가르쳐 주고 이 차에 대한 보험조건을 설명해 준다. 설명을 너무 빨리 할뿐더러 익숙지 못한 보험 약관 때문에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설명을 끝내고 나더러 서류에 사인하란다.
그렇게 며칠 동안 렌터카를 운전하고 다니는데 렌트가 회사에서 5일 간격으로 $150씩을 두 차례나 내 카드로 청구했다. 보험회사에서 3주간 차량 렌트비 전액을 부담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믿고 있었다. 그런데 청구서가 날아든다? 전화했다. 내가 추가 보험을 들겠다고 서류에 사인했다는 것이다.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우리 한국인의 기질이 발동했다. 운전을 하여 렌터카를 내준 사무실로 쫓아갔다. 내가 미국에 와서 살면서 비록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류에 사인하는 것만은 신중한 사람인데 설마 했다.
어디 내가 사인한 서류를 봅시다.
사기였다. 어느 종업원이 대신 서류에 사인했다.
내 싸인과 대조를 했더니만 그는 나더러 기다리라면서 자기 상사에게 보고하고 오겠단다.
돌아온 그는 50%를 깎아 주겠다면서 반반씩 부담하잖다.
이봐요, 여기 벤츠 딜러 맞아?
벤츠를 아무나 타지는 않을 텐데(그래도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 탈 텐데)?
내가 50% 부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리고 당신들이 지금 고객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해?
그는 다시금 상사와 상의하겠다고 나가더니만 한참 후에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