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약국에 들렀다. 이 약국은 항상 손님들로 붐빈다. 인근 200미터 반경에 4개의 약국이 더 있지만 유독 이 약국만 손님이 많다. 의사 처방전을 접수시키고 뒤로 물러나 기다리고 있는데 체중이 있는 건장한 남자 두 분이 들어왔다. 그중 한 분은 매우 익숙한 듯 들어서자마자 박카스 2병을 콕 집는다. 다른 한분은 무엇을 사야 하나 두리번거리는 사이 약사께서 내 이름을 불렀다. 카운터로 다가섰는데 박카스를 들고 있는 남자가 끼어들면서 자기 꺼 먼저 계산해 달라며 박카스를 들고 있는 손을 내민다. 약사는 이분을 호출했으니 먼저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박카스를 들고 있는 남자가 "됐어요" 하더니 카운터에 박카스 2병을 내려놓고선 나가 버린다. 약사가 아닌 내가 괜스레 당황스럽고 황당한 느낌이다.
와우, 참 급하시네요
저런 분 많아요
궁금했다.
그분은 박카스가 필요하기나 한 걸까?
내 것을 계산하는데 몇 초도 안 걸릴 텐데 그걸 못 참고 나가버리니 말이다. 다른 약국을 찾는다면 몆 초가 아니라 몇 분이 더 걸리련만
그분은 약사가 어리석다고 판단했을까?
자기 것은 금방 계산하면 되고 내것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 계산을 먼저 해달라고 했는데 이를 거절하다니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뭐 억지를 부린 것도 아닌데 융통성이 그렇게도 없어서야 괜스레 손 내밀었다가 쪽팔리잖아. 어우 자존심 상해라. 됐어요. 박카스가 여기만 있남.
모든 게 빨라서 좋은 나라다. 식당에서, 병원에서, 마켓에서, 도로 운전할 때 거침이 없다. 허지만 빠른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우리는 인내심을 잃게 된다. 인내심이 부족하다 보니 매너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또한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식당? 손님이 북적 거리는 어느 식당에서는 밖에서 줄 서있는 손님들로부터 미리 주문을 받기도 한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손님. 빨리만 준다면 문제 될 게 없단다. 식당에서 주문하면 채 5분이 안돼 음식이 나온다. 어떤 손님은 자리를 찾아가면서 큰 소리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아주머니 여기 갈비탕 둘(2)입니다. 이리도 서두르는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면 급하게 할 일이라도 있나 싶지만 별일이 없다.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빠른 게 좋단다. 갈비탕 한 그릇을 먹어 치우는데도 10분이면 족 할성십다. 영어로 "식사 잘하셨어요?"라는 표현은 Didi you eat much enough? 가 아니라 Did you enjoy your meal?이다. 그들의 식사는 얘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병원? 전쟁터에 군의관 식이다. 환자와 대화가 없다. 몇 마디 묻고서는 바로 처방이다. 환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하면 “알겠어요”하고 가로막는다. 바빠 죽겠는데, 뻔히 알만한 내용인데 왜 이리도 말이 많으시나?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 동네 병원을 찾기 위해 예약을 하려고 전화했는데 그냥 오라고 한다. 이럴수가? 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해가 됐다. 환자 5분이 대기 중이라 할지라도 환자 한 명 진료 보는 데에 2-3분, 내 순서는 길어야 15-20분 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도로운전?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순간 그러니까 0.2초 안에 바뀔 터인데 그사이를 못 참고 어서 빨리 움직이라고 뒤에서 빵빵 거린다. 1초가 아니라 0.2초의 인내심도 없어 보인다.
미국 우리 교민사회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현지인들(대부분이 멕시칸) 사이에서는 "빨리빨리"가 한국인들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골프장에서 만난 그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들은
"안녕하세요?
빨리빨리"
하고 한국말로 인사한다. 그러면 나도
"예, 빨리빨리, 반갑습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도 내가 들렀던 병원은 환자들이 의사가 있는 방을 2-3분 간격으로 들락 거린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좀 어떠세요?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오늘 피 검사 하시고 2주 후에 다시 오세요
알겠습니다.
나가보세요
1분이 채 안 걸렸다. 향후 진료 방향에 대한 설명도 없고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아 보인다. 의사 만나고, 처방전 받고, 약국에 가서 약 수령 하는데 5분이면 족 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초고속이다. 감기에 걸려 의사를 찾을 시 2-3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느라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처럼 "빨리빨리" 덕택에 그 어느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살만하게 됐으니 한숨 돌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의 여유 말이다.
여유는 배려를 낳고, 배려는 질서를 만든다.
오늘 박카스병을 약국에 놓고 간 그 남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약사에게 부탁할게 아니라 대기 중인 손님 나에게 물었어야 했다. 그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고 그게 질서다. 미국이나 한국 공히 약사에게 선택권이 없다. 설령 약사에게 얘기했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답은 "first come, first served ,순서대로"이었을 것이다. 나도 미국에 살면서 급하게 끼어들기를 몇 번 했는데 그때마다 앞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한 번도 거절당하는 일이 없었다. 이게 여유고 배려 아닌가 싶다.
미국으로 이주했을 시 어느 선배님이 나에게 툭 던진 한마디 "마국에서 잘 사는 방법, 최대한 여유를 갖고 살 것". 살면서 그들의 여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뚱뚱하여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한 사람이 걸음걸이가 늦어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차량들은 몸이 불편한 이 보행자가 인도로 들어설 때까지 미동도 않고 기다려준다. 우리같이 성질 급한 사람이 보기에는 일부러 천천히 걷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준다.
프리웨이에서 모든 차량들이 70-80마일 속도로 달리는데 어느 노인이 60마일로 달리고 있다. 차량들이 그 뒤로 줄지어 따라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차선 변경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어느 미국 친구에게 그런 상황에서 짜증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의 답은 비켜가면 될 일이지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왜? 그 노인은 최대한 안전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영감탱이가 집에 있지 왜 길거라로 나와 교통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만 투성이다. 여유와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살면서, 오늘 약국에서 내가 목격한 장면을 보면서, 어느 날 아파트 입구를 건너는데 기다려주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에 치일뻔했던 일들을 당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여유"있게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유와 양보는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베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