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책을 내야 할까

이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

by 이음서가의 빈 잔

왜 이 책을 내야 하는가, 라는 이야기를 근래 자주 하고, 자주 듣고 있다. 이미 좋은 책이 충분히 많은데도 이 책을 왜 또 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그보다 더 자주 듣고, 더 많이 하게 된다. 책으로 내야만 하는 글이란 뭘까. 여러 사람과 각자의 기준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에 기대 반쯤 멍한 얼굴로 생각을 이어가 보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은 어떤 결론이라기보다, 요즘 내가 붙잡고 있는 생각의 캡쳐 정도에 가깝다.



이미 플랫폼은 충분히 많아졌고, 그만큼 글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거기에 AI가 날개를 달아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고 있고, 그 글로 투고를 하기도 한다. 스토리를 짜거나 흐름을 점검할 때, 교정·교열을 할 때 AI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AI는 빠르고 능숙하게 문장을 만든다. 정보는 정리되고, 문장은 매끄럽고, 감정의 형태도 그럴듯하다. 이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사진 이후에 그림이 그랬던 것처럼, 글 역시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굳이 이 글이어야 하는가, 굳이 이 방식이어야 하는가. 굳이 책으로 남아야 하는가.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림의 미래를 걱정했다. 기록은 이제 기계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초상화와 풍경화는 빠르고 저렴한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역할이 사진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질문이 달라졌다.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왜 이 장면을 그리는가로. 사진 이후에, 어떤 작가들은 얼마나 똑같이 그리는가, 얼마나 세밀하게 표현하는가에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바라볼지를 더 중요하게 두기 시작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담는 일에서 조금 물러나,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바라보거나, 하나의 장면을 오래 붙잡고 있거나, 형식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변화는 특정 주제나 경향으로 묶기 어렵다. 오히려 작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이 한꺼번에 열렸다는 쪽에 가깝다. 그 결과 미술은 더 이상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했는가로만 설명되지 않게 되었다. 작가의 선택과 태도,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작업의 일부가 되었고, 같은 장면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 정답이 아니라 관점이 중요해지는 흐름 속에서 미술은 이전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책도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는 매체처럼 느껴진다. 책은 이미 가장 느린 방식이다. 검색보다 늦고, 요약보다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책이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시간을 건너는 방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시점에서 쓰인 말이 다른 시점의 독자에게 도착하기까지, 그 느린 경로 자체가 의미가 되는 매체. 그래서 요즘에는 무엇을 더 새롭게 말할 수 있을지보다, 이 이야기가 어떤 시간 위에 놓이게 될지를 더 오래 떠올리게 된다. 지금의 언어로 충분히 소비되고 끝나도 되는지, 아니면 조금 느린 방식으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이야기인지. 사진으로는 오롯이 담기지 않아 끝내 직접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던 장면처럼, 다른 방식으로는 대신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지.


AI가 글을 쓰는 시대에 책을 만든다는 건, 효율적인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 이후에도 미술이 남았던 것처럼, 빠르고 정확한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책이라는 형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그 자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사진기 이후의 미술이 더 이상 하나의 정답을 향해 나아가지 않게 되었듯, 글 역시 AI 이후에 ‘잘 쓴 글’이라는 기준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 매끄러운 문장이나 그럴듯한 구성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말,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나오지 않았을 문장들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어쩌면 지금 내가 책이라고 부르고 싶은 글은, 완성도가 높아서라기보다 이런 이유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대신 이 시간과 이 사람을 분명하게 통과한 흔적을 가지고 있는 글. AI가 대신 써줄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는 글.

그래서 왜 이 책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요즘에는 조금 다르게 남는다. 더 잘 쓴 글인가를 묻기보다는, 지금 이때가 아니면 지나가 버렸을 이야기인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질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어떻게 정리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이 기준을 손에 쥔 채 책과 글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오늘 생각은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기원] 20s Note Archive_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