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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만 Jul 30. 2021

<나는 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에세이-


슬슬 여름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날씨, 피부 언저리에 미세하게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오전 업무가 끝나고 왔다. 내 책상 위 오른쪽 냉기를 잔뜩 머금은 체, 파란 벨트를 맨 만랩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책상에 놓여져 있었다. 절전상태의 PC를 켜자 직장동료로부터 업무용 텔레그램에 메신저가 날아와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죠? 00님"


"네 맞습니다 감사해요~!!" 라고 답변을 보냈다.  


최근 코로나로 팀에게 할당된 월 회식비를 전액 사용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 이어졌다. 그 대안으로 매일 점심시간이 끝난 이후 카페에서 음료를 살 때 잠시 수다를 떨다가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오는 문화가 생겼다.  바빠서 나가지 못한 사람은 메신저로 주문을 하는 게 의례적이었는데 공석인지라 주문을 못했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단것이 당기는 게 아니면 대부분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일관성 있게 주문을 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셨나 보다.


넘겨 지나가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기호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것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어쩌면 운동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기에 칼로리에 민감해 보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실상은 그 정도로 가리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비추어진다는 것은 체감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거의 생리적인 현상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일과 중 커피, 것도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었다. 가령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책을 읽을 때, 산책을 할 때, 혹 약속이 생겨 카페에 가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럼 난 언제부터 커피, 나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 삶 한가운데에 받아들이게 되었을까?라는 것이 이번 글의 소재였다.


회상하건데 유년기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 때까지도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학습에 부진한 영향을 끼친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서야 커피라는 식품에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당시 국민커피로 사랑받고 있는 맥심사의 믹스커피로 입문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 믹스커피는 그 나이 때  너무나도 합리적인 가격과 언제 어디서나 만나기 쉬운 접근성으로 가령 학교 자판기, 식당, PC방, 부동산 등에서 즐겨 먹었다.  


당시 활동반경에 꽤나 많은 카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소 대상은 그대로인데 관심이 없어 잘 보지 않다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보이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직업의 특성상 심미적인 것을 우선순위로 보는 성향이 있다. 때문에 차를 구매를 하게 될 때도 모델이 희소해 보이거나 디자인적 특징이 있는 것을 선호했었다. 그러나 정작 구매한 후 도로 위로 나가보면 동일한 차가 얼마나 많이 보이는지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 기억이 있다.


남자 친구들끼리 다닐 때는 카페라는 공간 차체가 미지의 세계였다. 그 공간 안에서 수다라는 행위가 벌어진다는 것을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구심 늘 가득했다.  


"저기서 무슨 몇 시간이나 보내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나 또한 미지의 세계의 출입증을 받게 되었다. 그 키를 준 것은 첫 여자 친구였다. 놀랍게도 그 공간은 나의 성향에 제법 잘 맞아떨어졌다. 거기서 몇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을뿐더러 24시 카페에서는 수다로 날도 지새워본 이력을 남기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당시 우연찮게도 자영업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로 카페 창업이 번성하는 시기였다. 상가 한 블록마다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한 번, 두 번 다니다 보니 카페에 가는 것이 취미로 되었고 절정일 때는 연휴에 각을 잡았다. 자주 탔던 지하철 4호선 라인 주요 역을 거점으로 매일 다른 카페를 방문했다.

기준은 망고플레이트나 네이버 앱을 열어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 순회 방문을 하기도 했고 주말에는 교외, 넓은 부지의 콘셉트가 명확한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다.  SNS는 잘 안 했기에 포스팅용이라기 보단 단순 호기심 더 컸다. “어떤 새로운 공간과 맛의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작은 설렘은 소소한 행복을 주기에 괜찮았다. 재미있는 건 그 기간이 꽤 누적이 되자 자연스레 카페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름의 기준을 삼아 카테고리별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프랜차이즈를 우선 논외로 하고, 나름의 상황에 맞는 경쟁력을 가지고 승부수를 띄웠다.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고(적정 가격으로 적절한 테이블 회전율), 혹은 콘셉트 있는 인테리어(인스타 감성용 데이트 코스), 넓은 공간과 편안한 좌석을 비치한다던지(장기간 스터디용 카페) 오로지 맛으로 승부해 테이크 아웃을 주포지션으로 하는 카페도 생겼다.(대부분 젊은 사장님들로 자금이 넉넉지 않아 공간이 협소함에도 트렌디한 맛을 추구하는 전략, 정말 놀랍게도 그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저렇게 예쁜 원피스를 입고 한껏 꾸민 여성들이 공터에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앉아서 먹을 정도니 말이다.) 여하튼 주관적으로 내린 결론은 재방문율을 높이는 것은 커피 맛이 가장 유력했다. 그때 백종원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져 좀 수그러들었지만 잔재가 남아 약속이나 미팅,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애용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동네에 생기는 자영업 카페에 호기심으로 한 번씩 방문한다. 인테리어나 커피맛과 그에 비례한 가격, 사장님 혹은 직원의 친절도, 그리고 성향을 보고 폐쇄할 것 같은 가게를 몇몇 맞추기도 했다.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혹 언젠가는 작업실 겸 아늑한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도 했다. 지역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정기 전시해 주기도 하고, 잔잔한 음악을 깔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많은 카페를 애용하면서 커피를 즐겨먹었는데 당시에는 대충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캐러멜 마키아토 세 가지 범주에서 돌았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저기에 수많은 메뉴가 있는데 난 왜 늘 이 세가지만 먹었을까?"라고 "어쩌면 처음 시작을 상단 메뉴 몇에서만 머물렀기 때문이 아닐까?"  


의구심 끝에 전 메뉴를 다 먹어 보기로 결심했다. 콜럼버스로 빙의한 나는 다음 날부터 우선 티 종류 얼그레이 티, 페퍼민트, 캐모마일, 히비 비커스 유자차등을 다 마셨고 그 이후는 에이드 종류인 복숭아, 채리 캔디 , 크레드 등을 간판 깨기 마냥 다 박살 냈다. 심지어 단백질 셰이크도 판매하길래 먹어 보았는데 이건 집에서 먹는 제품이 훨씬 나았다.


대략 3주 정도 지나자 당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카페의 모든 메뉴를 먹어볼 수 있었다.

의외로 너무 맛있는 것도 있어, 연속으로 며칠 먹은 적도 있었고 개인적 입맛에 맞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그게 뭐라고 미션 클리어했다는 뿌듯함 따라왔다.

그 이후부터 놀라운 변화는 특별히 아쉬움과 선택의 장애 없이 과감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선호해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습관은 나름의 가치관에서 행동하게 된 것이다.


혼자 사색하기를 즐기던 나는 문득 내 행복의 정의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행복이라는 수치의 시작점은 최악의 상황이 아닐까 가정을 했고, 행복의 지수는 최악의 상황과 기쁨의 간극이라 생각했다. 인간에게 있어 희로애락을 작은 파동이고 최악의 상황은 멈춤, 곧 죽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불교나 기독교적인 교리에 대해서는 간략히 알고 있지만 믿음은 아직 없기에 이 가설을 사용 중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큰 지병 없이 평온하게 가족들이 다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의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결국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일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결국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회상을 할 것 같다고 추측을 해본다.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행동심리가 뻔하다. 그때의 짧은 찰나이긴 하지만 후회할 일을 최소화하는 것을 행복의 기준을 삼았다. 자기 할 일에 열의를 다하지 못한 것,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생각으로 갇혀 살았던 것, 더욱 사랑하지 못한 것,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 등의 리스트들을 최소화시켜 나가기로 다짐했던 것 같다. 그게 사소하지만 후회를 최소화할 기호식품,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트리거가 되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다.   

칼로리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운동을 하고 난 뒤 당분이 많은걸 섭취하면 그냥 관절만 마모시킨 거다.)


작업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카페인  


매일 먹기에 가장 부담이 적은 가격


유치하게도 얼음이 찰랑이는 소리를 좋아한다.


 

당분간 변수가 없다면 가장 최애의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할 것 같다. 이 사소한 과정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나는 지금의 나다. 그렇게 행동했고 행동의 빈도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해준다.  

"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시냐?"라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름의 주관적인 기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앞서 말한 성찰이라는 행위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라는 존재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기에 어떠한 질료를 넣었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스개 소리로 믹스커피를  먹고 있었다면 내 테이블 위에는 믹스커피가 올려져 있었을 것이다.  

작은 통찰은 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다.   



이상 21년 7월 29일 기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최애로 이용하고 있는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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