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런날 Oct 30. 2024

그림책, 읽어 보시겠어요?

그림을 읽는 아이 -사계절

 

얼굴만 보아도 내 눈에선 하트가 쏟아지고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던 어린 두 아들들.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자석마냥 붙어 있던 녀석들이 어느덧 말수도 적어지고 엄마와 붙어 있는 시간보다 각자의 시간을 더 즐기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그림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고 엉덩이를 들이밀던 아이들은 이미 못 본 지 오래지만 아직도 우리 집에는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많은 그림책들이 책장에 가득하다. 우리 가족 중 그 책장 앞을 서성이는 사람은 이제 나 하나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책장을 가끔씩 나 혼자 둘러보다가 잠시 잊고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면 그 책에 묻어 있는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재치 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점점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처음 그림책을 접하던 그 순간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꼬꼬마 시절에도 아이들과 서점에 가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 주기보다는 예쁜 그림들로 내 눈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들을 찾느라 더 바빴던 것 같다. 아이들 핑계로 그림책 코너를 어슬렁대고 있었지만, 사실 내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책을 가려내는 특별히 뛰어난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좋다!”라는 내 느낌 하나만으로도 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마치 모래밭에서 작은 보석 하나 찾아낸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책을 책장에 꽂아 놓으면 어찌나 뿌듯하던지.


“또 하나 찾았다!”


내가 찾아낸 책들을 아이들도 꺼내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을 아이들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마는, 엄마 눈에 예쁜 책들은 아이들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아이들이 직접 꺼내 와 읽어 달라는 꿈같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같이 책을 읽자며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혀도 싫다고 도망갈 법도 한데, 얌전히 앉아 같은 곳을 보며 시간을 보내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우리 집 막둥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글을 조금 늦게 뗀 편인데, 그래서인지 혼자 책을 들고 읽는 시기가 남들보다 천천히 왔다. 덕분에 나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더 많이 즐길 수 있었다. 어떤 책들은 내가 읽어주는 이야기보다 아이가 그림을 읽는 시선을 따라다니며 즐거움이 배가 되기도 했다.


퍼트리샤 헤가티가 쓰고 브리타 테큰트럽이 그림을 그린 “사계절”이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이 책도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예쁜 표지에, 나무를 지키고 있는 부엉이의 큰 눈에 이끌려 엄마가 고른 엄마의 책이었다. 새 책을 집에 들고 온 엄마는 또다시 흐뭇해하며 그것을 책장에 고이 꽂아 두었지만, 엄마의 다른 책들처럼 몇 개월을 소리 없이 꽂혀만 있었다. 내가 좋아서 산 책이니 아이들이 그 책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고 크게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책, 한 번은 같이 읽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이의 손에 한 번도 선택받지 못했던 책을 오랜만에 꺼내 들고 아이를 불렀다. 이 날도 학교 간 형을 기다리며 집에서 엄마와 복작대던 둘째 아이는 책을 들고 부르는 엄마 옆에 말없이 앉아 주었다.


독특한 질감의 표지 한가운데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에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부엉이가 있다. 믿음직하게 서 있는 나무가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다시 겨울로 사계절을 지난다. 그 긴 시간을 부엉이는 나무와 함께하며 묵묵히 모든 변화를 지켜본다.


“거미가 집을 짓고 있네?”


아이가 나뭇가지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온 작은 거미를 찾아낸다.

겨울 내내 꽁꽁 얼어 있던 숲에 눈이 녹기 시작하면 거미도 집을 짓기 시작하고 여우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뭇잎 색이 변해가는 동안 어디선가 새들도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과 다람쥐도 나무 위를 오르내리며 따뜻한 계절을 보낸다.


“어! 부엉이가 없어졌다!”


나타났다 싶으면 이내 사라지는 동물들, 수줍게 피었다가 바쁘게 지는 꽃, 탐스럽게 열렸다 힘없이 떨어지는 열매처럼 무심한 듯 하지만 섬세하기 그지없는 일러스트가 아이를 사로잡는다. 아이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고 입은 종알종알 쉴 새가 없다.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작은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들을 야무지게 찾아낸다. 그럴 때마다 바삐 책장을 넘기려던 엄마는 동작을 멈춘다. 한 줄 한 줄 곱씹어가며 읽어 주던 나는 일러스트에 빠져 재잘거리는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엄마! 여기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어!”


이 책을 몇 번이고 혼자 읽으면서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달팽이를 찾아낸 아이. 사계절이 지나도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 앞을 지나가는 그 달팽이의 모습을 아이와 함께 지켜본다. 혼자 읽을 때는 보지 못한 사소하면서도 다채로운 것들이 아이와 읽으며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이와 책을 펼쳐 보는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우리들만의 세상이 된다. 그저 좋기만 하던 이 책은 아이와의 이 시간으로 인해 나에게 또 다른 책이 되어 다가온다. 아이와 나만의 행복한 추억이 담긴 우리의 책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아이가 글을 깨치고 난 후에 읽었다면 이렇게 마음을 다해 그림 속을 신 나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이는 우리가 함께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그 책은 아직도 그때의 추억과 함께 나에게 특별한 책으로 남아있는 것을.


5년이 훌쩍 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한글 깨치는 게 무엇이 중요할까 싶다. 조금 늦더라도 아이와 같은 것을 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없었을 그 행복한 순간이, 조잘대는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없이 큰 선물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컸다는 핑계로 잠시 그림책과의 멀어졌지만 다시 나의 마음에 품고 싶은 그림책을 찾아보려 한다. 새로운 보물을 찾아낸다 해도 나의 아들들을 예전처럼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 줄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 안에 나누고픈 단 한 구절이라도 찾게 된다면 저녁을 먹으며 슬며시 읽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먼 훗날의 나에게 사춘기 아들들과의 추억이 담긴 또 한 권의 그림책을 선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