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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Dec 30. 2021

나의 산타, 할아버지 할머니 메리 크리스마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정확히 말하면 외할머니네 집에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빵집에 들렸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단팥빵과 소보루빵 등등을 사서 기분 좋게 룰루랄라 콧바람을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할머니 나 왔어!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 사 왔다! 얼른 드세요!"

"으이그, 뭘 또 이런 걸 사 왔어. 그래도 우리 손녀딸 밖에 없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자취방을 얻기 전 외할머니댁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다. 오랜만에 외할머니의 따뜻한 밥을 먹으며 얼마나 좋던지. 할머니랑 같은 방을 쓰면서 할머니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면 난 그 냄새를 맡으며 방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읽었다. 마음이 폭신폭신한 나날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 우리 외가댁은 시내 정 중앙에 집이 있었다. 할아버지 건물 꼭대기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이 도시의 주인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잡고 시내를 돌아다니면 동네 분들이 손자 손녀들와서 또 장난감 사주러 가시는구먼 하셨다. 그렇다. 나의 산타는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중앙공원 앞에는 큰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와 오빠, 민주(내 이종사촌동생)가 오면 우리들 손을 잡고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가게에 가면 항상 갖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하셨고 가게를 나올 때면 우리들 손에는 바비 인형과 미미, 신상 레고가 양손에 한가득이었다. 장난감 가게에 들른 날은 할아버지 건물 지하에 있는 돈가스 집에 가는 게 코스였는데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딸들이 돈가스를 잘 먹을 수 있도록 칼로 슥삭슥삭 잘라주시고 수프도 호호 불어주셨다. 그런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슬픔에 가득 찬 마음이 멀쩡하게 식을 세도 없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이유로 가세가 기울어 할머니는 외삼촌네와 함께 서울로 이사를 가셨다. 


시내 정중앙에 있던 집은 모든 음식을 맛깔나게 하시던 할머니에게 안성맞춤인 커다란 부엌이 있었다. 집에서 쌀을 불려 직접 식혜도 담는 건 물론이거니와 각종 떡, 갈비찜,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코다리 조림 등등을 뚝딱뚝딱 만드는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밥 먹자 하면 우리들은 거실에서 다다다다 뛰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먹느라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누가 내게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 묻는다면 아마도 난 할머니가 직접 담근 간장게장과 매콤한 코다리 조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음식 장인이었던 우리 할머니는 서울 집으로 이사 후 본인의 전매특허인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지 못하셨다. 연세도 연세거니와 짐작 건데 부엌이 너무 좁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조그만 서울 집 부엌에서 탄생한 할머니표 음식은 여전히 맛있고 정겨웠다.


내가 학교 근처 자취방을 얻어 더 이상 할머니네 집에서 통학을 하지 않아도 됐을 때 난 나의 젊음을 사느라 매일이 즐겁고 바빴다. 할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우리 현주 혼자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집에 좀 들러라 하면 할머니 알았어 갈게 갈게요 하면서 몇 번을 가지 못했다.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때 난 친구들과 모든 게 처음 같은 재밌는 하루를 사느라 우리 할머니를 잊고 지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창 육아에 혼이 쏙 빠져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애써 울음을 삼키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현주야 할머니한테 진짜 가봐야겠다 하셨다. 왠지 마지막이 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남편과 나는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속으로 몇 년 동안 찾지도 않던 하느님에게 애원하듯 기도를 했다. 제발 우리 할머니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제가 더 잘할게요. 제가 더 착하게 살게요. 하느님 우리 할머니 아직 데려가지 마세요 제발요. 


병원에 도착해서 돌도 안된 둘째를 아기띠로 업고 할머니가 입원에 계시는 병실에 들어갔다. 검은 머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우리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이서방이랑 유하랑 준서도 왔냐며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무서운지 앵앵 거리며 울었다. 할머니 얼굴은 오랫동안 복용해온 스테로이드제 때문인지 퉁퉁 부어있었다. 먼저 와 있던 우리 오빠는 할머니 이제 일어나셔야죠 이제 퇴원해서 나가셔야죠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또로록 떨어지는 눈물이 갑자기 폭포처럼 커져 오빠는 할머니를 책망하듯 빨리 일어나세요 하다 결국 소리 내 울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다리를 어루만지고 손을 잡았다. 우리 할머니 언제 이렇게 더 많이 늙으셨나.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 이제는 하나뿐인 나의 할머니를 데려가려 하고 있나.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할머니 뭐야. 이제 괜찮을 거야. 얼른 퇴원해서 여기서 나가자 할머니. 힘내야 해"


할머니에게 힘을 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왜 눈에서는 미적지근한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것인지. 입과 눈이 따로 동시에 다른 기능을 하고 있었다. 오빠와 나를 보고 있는 할머니 눈동자 아래로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고 울지 않으려 입가에 애써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 병실에서 뛰쳐나와 복도에서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은 나를 도닥이고 아이들은 엄마가 왜 저렇게 우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을 하며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챘다. 그게 내가 할머니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할머니가 남색 옷을 입고 검은색 가죽 가방을 들고 서 계신다. 은행 비슷해 보이는데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다. 


"할머니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꿈인걸 나는 이미 아는 걸까.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은 채 할머니 품에 푹 안겨 소리쳤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두 손으로 꼭 안아주셨다. 병원에서의 누워 계시던 모습이 아닌 꼿꼿하게 서 계신 상태로. 할머니 품은 참 따뜻하다. 할머니 뽀글거리는 파마머리가 내 볼에 닿는 감촉도 좋다. 그런데 내 양쪽 볼을 타고 미적지근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거 같아 순간 번쩍 눈을 떴다. 베갯잇은 이미 흠뻑 젖어있고 몸은 부르르 떨린다.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 꿈이었구나 꿈이었네 하며 몸을 떨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일어나 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어! 와아아아아!"


성탄절 아침 나도 나의 산타. 할머니. 보고 싶었던 우리 할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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