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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Nov 08. 2024

정신을 차리고 나니 가을이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절기상으로는 겨울인데 마치 봄 같았던 그날 엄마의 병을 알았다. 아빠는 엄마 몰래 서재에서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렸고 오빠는 애써 담담했다. 수서역에서 집으로 오는 기차 안, 엄마는 자세도 고쳐 앉지 않고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옆에 앉은 나는 헛기침을 하고 하품도 해보고 괜히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도 모르게 눈에서 흘러내리는 그 뜨거운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행여나 엄마가 내 우는 모습을 볼까 봐, 그래서 엄마 마음이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옆승객의 핸드폰 액정을 쏘아본다. 두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 뜨거운 것 때문에 빨리 기차에서 내리고만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다.   


 글로벌 보일링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무더웠던 여름,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아빠는 집에서 혼자 엄마를 케어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했다. 아빠는 여전히 어느 기업의 고문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집안일은 많이 해보신 적이 없기에 아빠에게 엄마를 맡기는 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 편히 쉬게 해 드렸다. 아침에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엄마의 컨디션을 살폈다. 잠은 깨지 않고 편안히 잘 주무셨는지 밤 사이 기침을 많이 하지 않았는지 물집 잡힌 데는 없는지 기타 등등.


 그때부터 나의 어설픈 간병이 시작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마트가 있는데 굳이 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파는 곳까지 차를 타고 갔다. 엄마가 그나마 거기서 파는 채소는 드시기 때문이다. 무더운 날 뜨거운 불 앞에서 자주 음식을 만들었다. 그 무렵의 나는 삼각형 인간이었던 것 같다. 마트-집-헬스장 이렇게 세 개의 꼭짓점을 매일매일 찍었다. 내가 아프면 간병도 못하고 아이들 케어도 안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짬을 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나를 위해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온갖 걱정거리를 다 잊을 수 있어서 한편으론 좋기도 했다. 작은 탈출구였다.


 모든 걸 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결국 몸에서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눈밑과 입술 떨림은 기본, 삐 소리와 함께 자주 어지러웠다. 급기야 남편이 없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대구에서 살 때처럼 토하고 또 토했다. 구토는 한번 시작하면 끝이 나는데 오래 걸렸다. 항상 비슷한 패턴이다. 위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어야 하는 상태. 맵고 시기도 한 투명한 위액이 나오면 토악질은 멈춘다. 시간은 늘 그렇듯 한 시간 남짓이다. 당장이라도 머리가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은 말라비틀어져버린 지렁이처럼 내 몸을 뒤틀리게 하고 휘어지게 했다. 아픈 엄마는 식식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기력이 없어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엄마는 거실 및 화장실에 흩뿌려진 내 토사물을 치우느라 갑자기 슈퍼우먼이 된다. 간병도 제대로 못할 망정 환자에게 보호를 받는 내 꼴이 우스워 쓴웃음이 났다. 봄과 여름, 아픈 엄마가 우울하지 않게-남편과 아이들이 그 우울한 기운을 최대한 받지 않게 하려고-원래도 발랄하지만 더욱 가볍고 산뜻하려 애썼다. 그러나 겉은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하고 있었지만 속은 곪고 있었나 보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은 때론 스승이다' 이런 말들은 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어느 정도 흘러 이렇게 나는 캐주얼한 자세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가을이요, 폭염 때문에 올해 단풍은 예쁘지 않다는데 내 눈에는 떨어진 낙엽 하나하나가 눈이 부시게 예쁘다. 아깝고 소중하다.

남편과 친구들이 내게 힘이 돼주었지만 날 가만히 위로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데미안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고쳐먹었고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보며 모로 누워 울었던 밤도 있었다. 힘들 때마다 오히려 책을 더 파고들었고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영감이 떠오른 쇼팽 마냥 나중에 글 쓸 때 참고하고 싶은 단어와 문장들은 잊을세라 메모장에 써놓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걸 왜 써놓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 그 모든 건 즉시 글쓰기를 하지 않는 이상 헛수고였다.


 선선한 바람이 발끝을 간지럽히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 계절을 통과하며 나는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봄과 여름은 조금도 쓰지 못하고 읽기만 하던 계절이었으나 이제는 틈틈이 다시 쓰고 싶다. 그래도 되는 계절이다 그러고 싶은 가을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하얀 종이 위에 어떤 이야기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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