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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Nov 07. 2024

바비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그 인형 바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둘째가 항상 아빠를 부를 때 빠삐 빠삐 하는데 요즘은 빠삐라 부르지 않고 바비 바비라고 부른다. 이십 때 그가 나의 연인이었을 때 그의 별명은 하품이었다. 그를 정시에 만나기 위해 회사에서는 악착같이 일하고 퇴근 후 우리는 여의도 신촌 홍대를 쏘다녔다. 매일 저녁 일상이 이러하니 나도 피곤했고 그도 피곤했다. 남자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하품을 자주 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하품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처음 그를 만난 건 소개팅에서였다. 소개팅 장소였던 광화문 이마카페에서 그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던 장면은 지금도 눈에 훤하다. 교양 수업으로 여성학을 들을 때 교수님은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정한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린다고. 나는 속으로 교수님이 나이가 있으신데 소녀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이브한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광화문 이마 카페에서 그를 처음 보고 머릿속에서 종이 댕댕댕 세 번 울렸으니 말이다. 강렬한 느낌이었다. 우리 둘은 첫 만남부터 말이 잘 통했고 웃음 코드가 맞았다. 당연히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고 나는 그 교수님보다 더 나이브하게 고속도로에서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숨을 참았다. 긴 터널을 통과할 때 숨을 참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었는데 그 말을 믿었던 나머지 그의 차를 타고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나는 티 안 나게 숨을 꾹 참았다. 그리고 빌었다. 우리 둘이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지금 생각하면 픽 웃음이 나온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았던 게 분명하다.  


 두 해를 지나 그와 결혼을 했다. 그를 닮은 사내아이와 나를 닮은 여자 아이를 낳았다. 그는 내게 손에 물 묻히는 일 없이 행복하게 해 준다 하였고 나는 그의 흰 셔츠를 매일 빳빳하게 다려준다 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손에 물이 흥건하고 그의 셔츠는 내 손이 아닌 유명 체인 세탁소에 맡겨진다.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에게 강렬했던 느낌은 사라지고 지쳐버린 나머지 상대가 듣기 힘든 말들이 오갔다.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폭력적인 말들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바닷속에서 오로지 홀로 깊고 더 깊은 곳으로 헤엄치는 프리다이버를 떠올렸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시커먼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또 참고 외롭게 잠영하는 내가 있다. 무섭고 외로운데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인데 버텨야만 했다.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옷걸이에 대충 걸려 있는 때 묻고 구겨진 하얀 셔츠를 본다. 우리의 관계가 입기 싫게 구겨져버린 셔츠 같았다. 빨리 세탁소에 맡기든 내가 다림질을 하든 해결을 해야만 했다.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 때도 있었고 내가 은근슬쩍 손을 잡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방송에서 한 여성 감독이 남편이 더럽게 밉고 징그럽다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본인은 이게 사랑 같다고 했다. 어느 정도 맞고 어떤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십 대의 강렬함은 없지만 여전히 나는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몹시 좋아한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이미 함께 웃고 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우리 둘은 온화한 기후를 가진 섬에 자주 와서 오래도록 지낸다. 반짝이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는 시간에는 남편과 러닝을 하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 앉아 늘어지게 핸드폰을 하는 그와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로 정신없는 내가 있다. 낮과 밤이 딱 만나 하늘이 연보랏빛으로 물들 무렵 주로 나와 남편은 산책을 하며 동네를 걷는다. 밤에는 나쁜 행동(?)도 하고 거실 옆 테이블에 앉아 소설도 읽고 글을 쓰는 내가 있다. (영화도 빠질 수 없다!!) 남편은 스노클링이 지겹지도 않나 이 섬 저 섬 혼자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쁘다. (왜 혼자 가냐고? 나는 이명이 있어서 배를 못 탄다) 상상하는 우리의 훗날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자주 상상하면 비슷한 모양이라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목젖까지 보이며 환하게 웃는 내 남편 바비 옆에 여전히 큰 소리로 깔깔 거리는 내가 있다. 우리의 웃는 모습이 어딘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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