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000원짜리 이어폰 언박싱;;과 잡일을 위해 찾은 카페가 인산인해다. 노트북은 42%라는 애매한 배터리를 뽐냈고, 수염이 채운 내 얼굴이 비친 화면이 신경 쓰인다. 그래도 확실히 따스한 공기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덩달아 마음도 조금 들뜸.
봄이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꽃피는 봄이라 사랑하는 건 아니고 여름이 아직 안 왔다는 안도감이랄까. 작렬하는 햇볕 아래서 타는 자전거.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다가도 찬물 한잔이면 뻥 뚫리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한강에서 먹는 맥주 맛이나 길디 긴 낮도 너무 좋다. 그 여름을 향해 가는 기대감이 가슴을 채운다.
그래서일까 여름에 비유하는 걸 좋아한다. '내 인생의 여름'같은 소리 말이다.
내 인생의 여름
참 많이 썼던 말이다. 사전적으로 나눈 계절은 네 개뿐인데, 봄이나 겨울, 가을에 삶을 비유한 적이 없는 듯하다. 내 인생의 여름은 여러 번이었다. 가장 강렬했던 건 처음 기자 생활을 제대로 했던 2015년. 그리고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이다.
2020년은 의미가 크다. 여름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다. 기사 공장장이 된 생활 패턴에 '일 한다'는 느낌은 녹진했지만, 자외선 같은 업무량에 화상을 입었다. 즐거웠던 일의 의미를 부정하게 되고. 내 가치관까지 돌아보게 했던 늦은 오후 땅거미 같던 시절이다.
회사를 나온 건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느꼈다. 업무가 내리쬐면 양산을 썼어야 했다. 주변과 청량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하지만 알량한 책임감에 뜨거움을 홀로 받아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