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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교동방울이 Oct 21. 2021

정든 강냉이와 이별,  고생했어 그동안

게으른 주인 만나 고생한 어금니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26번 치아다.


여기까지 오기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2년 입 속에서 들린 '바스그락'소리.

아니 '빠그덕'에 가까웠는지도. 집에서 오뎅을 먹고 있을 때다.


치아가 나갔다. 왼쪽 위에 있는 어금니라 거울 두 개로 어찌어찌 살펴보니 전에 씌운 크라운 테두리가 조금 갈라졌더라. 그래서 치과를 찾아 신경치료를 했고 다시 왕관을 씌우기로 했다.


웬걸,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이미 깨끗이 신경관을 청소한 터라 더 보이는 통증 요소는 없단다. 그래도 아픈 건 CT로 잡히지 않는 뿌리 쪽 염증일 가능성이라고 했다.


여기에 무시무시한 말.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잇몸을 째고 뿌리를 자르는 치근단 수술이라는 걸 받아보세요. 여기선 안 되고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청천벽력.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입 속에서 벌어질 대형공사. 그 두려움은 생각보다 엄청났고, '땜질'로 이어가는 게으른 동행이 시작됐다. 간간히 통증이 찾아오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가급적 오른쪽으로 씹었고 익숙해지니 아픔도 조금씩 줄었다.


어영부영 살아가니 찾아온 2018년.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덮쳤다. 다시 치과를 찾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데 하나는 포기하고 임플란트를 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앞서 들었던 치근단 수술이다. 이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이라며 치근단을 추천했다. 자연치를 쓸 때까지 쓰는 게 좋고, 수술 경과가 좋으면 몇 년은 더 쓸 수 있다고 했다. 난 다시 순간의 두려움보다 안주를 선택했다.


거기서 또 2년이 흘렀고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어렵게 예약을 잡은 신촌의 세브란스 치과. 어머니 말로는 5살 때 충치치료를 하다가 학교 정문까지 도망가는 너 때문에 난감했다고 한다.


레지던트 선생님의 무색무취한 진료에 이어 수술이 시작됐다. 교수님이라는 분이 집도했다. 한 40분 걸렸을까. 이 분은 내 잇몸을 헤집으며 동시에 약간의 불친절함을 뽐내던 레지던트를 신나게 갈궜다. "야 좀 봐라. 눈이 있냐. 이거 들으라고." 갈구는 방법이 이렇게 여러 가지인 줄 처음 알았다. 갈구면서도 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엑스레이는 어차피 봐도 모르니 넘어간다. 사진으로 본 내 어금니는 거의 폐가 수준으로 테두리만 남아 있었다. 빈 곳에 레진을 채우고 자르코니아라는 어려운 이름의 크라운을 씌웠다. 수술의 욱신거림은 나흘 정도 후에 가라 앉았다. 

입에서 튀어 나온 크라운. 일단 기념으로 남겨놨다. 사진은 필터를 한 껏 먹인 버전.

그렇게 산 지 1년이 흐른 지난 주말.


9년 전 들렸던 바스그락 소리와 함께 딱딱한 고체가 에 맴돌았다. 그대로 크라운이 빠졌다.


혀끝을 훑으니 하얀 페인트 껍질 같은 치아 가루들이 나왔다. 속에서 또 깨졌고 빈틈이 생기니 빠진 것 같다. 이젠 때가 됐구나.


치근단을 추천했었던 그 선생님을 다시 찾았다.

요 녀석 이제 왔구나 하는 흐뭇한 미소의 그는 "그래요. 이젠 해야 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근데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놔두셨어요?"라 물었다.


게을러서요라고 하기엔 순간 쪽팔려 "바빠서요"라고 둘러댔다. "바쁜 건 좋은 거죠"라는 진심반 농담반과 함께 다음 주 10년을 고생시켰던 이 치아를 뽑기로 했다.


무섭다. 많이 아플 테고, 심을 때도 여러 과정이 있을 거다.


그래도 이 분은 말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뽑고 있을 겁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


To. 26번 강냉이

이제 너랑 함께할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

그동안 고마웠어. 넌 떠나지만 덕분에 즐거웠단다.

너랑 함께한 곱창, 피데기, 닭갈비를 잊지 못할 거야.

마지막까지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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