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화의 거리였던 홍대 앞. 지난 주말 늦퇴길에 지났던 이곳은 아찔했다. 어떻게 보든 엉망이었다.
위드 코로나(With COVID-19)가 바로 여기였다.
'과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건 문화가 아닌 혼란만이 거리를 점령해서다. 모르고 보면 지구촌 축제 뒤풀이였다. 족히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외국인들이 뒤엉킨 광경. 방금 내 옆으로는 경찰차가 지나간 터였다. 공권력도 소용 없는 것인가. 호기심인지 오지랖 일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관찰한 상황은 이렇다. 크게 스팟은 세 군데였다. 전통의 강호(?) 홍대 놀이터 앞. 그리고 수 노래방이 있는 주차장 골목 허리쯤. 또 하나는 명월관 골목이다.
어디가 됐든 풍경은 똑같았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이들이 삼삼오오 길 가는 여성을 잡아 세운다. 발걸음을 멈춘 여성의 손목을 끌고 편의점에서 이슬 톡톡이나 캔맥을 산다. 입에서는 뻐꾸기가 멈추지 않는다. 마스크는 온데간데없다. 그게 아니면 풀냄새가 풀풀 나는 정체불명(이라 하기에는 짐작이 간다...)의 담배를 펴댄다.
외국인 여성들은 냉소 섞인, 혹은 풀린 눈으로 이를 바라본다. 불어와 영어가 뒤섞여 들린다. 목소리가 크다. 말을 이어가며 담배꽁초를 허공에 날린다. 날아간 꽁초는 낮에는 선별검사소로 쓰이는 놀이터 바닥에 착륙한다. 20대 후반, 멀면 내 나이 정도로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도 많다. 역시나 빈 손이 아니다. 술병이나 담배. 혹은 입에서 떼어냈을 마스크가 손에 들렸다.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케밥트럭 앞에는 노가리를 까는 사람들의 비말이 소스통 속에 안착한다.
한참 잘못됐다고 느낄 때 경찰이 등장했다. 아까 봤던 순찰차인가... 차 두대에서 서너 명이 내렸다. 굉음을 내는 열쇠고리 같은 걸 들고 사람들을 몰아낸다. 범인을 쫓을 때 쓰는 사이렌도 요란하다. 거리에는 짧은 탄식이 돈다. 그것도 잠시. 불 켠 부뚜막에서 샤샤삭 하고 사라지는 바퀴벌레 마냥 순식간에 수십 명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음,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이제 좀 조용해지겠군...."
집에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아. 아아. 집에 좀 가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에 귀를 의심하고 돌아봤다. 민중의 지팡이가 짜증을 내뿜는다. 사실 걸면 걸리는 행동이다. 세금으로 녹을 먹는 경찰들이 시민을 계도할 때 반말을 썼다. 날 선 말이 향한 곳은 한 건물 주차장 구석. 헤드라이트가 비치니 아까 놀이터 앞에 있었을지 모를 외국인 십여명이 보인다. 표정에 두려움이나 미안함 따윈 없다. 원어민 강사일까 교환학생? 또는 연구원일지도 모를 그네들의 얼굴엔 귀찮음만 비쳤다.
이들은 시민이 아니라서 반말을 쓴 걸까. 그렇지는 않을 거다. 반복됐던 상황일 테고, 도저히 말로는 먹히지 않는 이들에 대한 좌절감일 수도 있다.
이게 과연 무슨 일일까. 지난하게 이어진 코시국이 이날만 유독 사람들을 밖으로 몰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오늘 괜찮겠지' '지난주에도 재밌었어' '잠깐만 피하면 돼' 이 실패하지 않았던 경험이 상황을 쌓고 쌓아 지금을 만들었다. 거리두기를 위해서였던 영업시간 제한이 무질서란 괴물을 낳았다.
문제는 분명하다. 문제의식이 없는 게 문제다. 의무를 지킬 때 권리도 있다는 걸 모두가 잊은 걸까.
오늘은 국민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날이다. 지원금으로 마신 술에 취해 세상 곳곳 비말을 내뿜을까 걱정되면 과한 노파심일까. 대마와 맥주가 함께해서 위드(Weed) 코로나(Corona) 일지 모를 이날의 광경이 '복지'라는 허울에 취해 가려진 건 아닌지.
지금 창밖에는 상수도 공사가 한창이다. 물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 평소 시끄럽게 느껴진 망치 소리가 생각보다 괜찮다. 꼭 필요한 공사에 쓰이는 돈. 누군가의 생활을 위해 궂은 날씨에 땀 흘리는 사람들. 왜 구별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