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작금의 일상. 정확히 말하면 잘못 만났다가는 큰일 나는 시절이다.
그래도 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인지라 최근엔 혼술이 내 정체성이 됐다.
퇴근 후 8~9시쯤 요기요를 켜고 참이슬이나 조니워커 레드를 세팅한다. 메뉴는 주로 고기반찬이 든 백반 or 치킨, 엽기 오뎅 따위다. 배달이 도착한 뒤 반주를 곁들이자 쉬이 얼큰해진다. 와이프의 퇴근시간은 10시 이후. 1시간 넘게 말없이 유튜브와 술잔을 꺾어대니 취할 수밖에.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주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왜 빨래는 내가 해야 하나" "고양이 화장실이 너무 더러웠다" "신발 하나 더 사면 안 될까" 같은 하소연을 한다. 본전을 건진 적은 없다. 되돌아오는 레이저에 시무룩하기 일쑤다.
내 결혼생활 특이점은 사실상 통금이 없다는 거다. "나돌아다녀 봐야 뻘짓을 할 것 같지도 않고 딱히 걱정도 안 된다"는 그분 덕이다. 물론 외박을 결행(?)하지도 못했으나데드라인이 없다는 안정감이 스트레스를 줄인다. 심야 외출 정도는 프리패스.
한껏 욕을 들어먹고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에 밖으로 나선다. 주 행선지는 집 근처 자그마한 공원. 아주머니가 벽에 등을 치고 초딩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그 스타일 공원이다. 주머니에 츄르를 채워 나가는 덕에 몇몇 길고양이와 친해졌다. 알아서 다가오는 녀석도 있다. 잔디 위에 츄르를 짜주면 두어 마리가 경계를 풀지 않고 주위를 서성인다. 한발 물러서 엄복동 코스프레로 철제 자전거 기구에 앉는다. 알아서 할짝할짝 잘도 먹는다. 페달을 돌리니 술기운도 조금은 날아간다.
집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자정 남짓. 감자칩에 필스너우르켈을 때릴 타이밍이다. 독주에 맥주가 겹치니 취기가 복리로 몰아친다.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해본다. 오늘 일과나 사고 싶은 물건, 유용한 생활용품 같은 이야기로 와이프를 유인한다. 수작을 알면서도 이따금 앞에 앉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 짓을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이후 계속했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이었던 것 같다. 십수번은 반복됐으니 그녀도 지쳤을 테다. 넌 친구가 없냐고 묻는다. 거리두기 핑계를 댄다. 10시까진 괜찮지 않냐고 묻는다. 친구들은 다 유부라 안 만나준다 둘러댄다. 혹시 술값 때문이냐고 묻는다. 그건 정말 아니라고 해명한다.
이 일련의 과정이 지겨웠나 보다. 며칠 전엔 그녀답지 않게 큰 목소리를 냈다.
제발 사람이랑 마셔... 너 그러다 골방 폐인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좀 만났다. 전 직장 선배, 동네 죽마고우, 고딩 동창까지 다양했다. 결론이 났다. 난 그냥 혼술을 좋아하는 거였다. 게다가 급격한 아재화로 유머 감각이 떨어졌다는 소리가 결정타였다.
ex)
A: 요새 어떻게 지내? 무탈하냐
나: 그냥 하회탈이야.
내가 봐도 썩은 개그다. 혼술+유튜브 조합은 유지하되 개그감을 살리기로 다짐했다. 마시는양은 조금 줄이기로 한다. 숙취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이 멍해진 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에서도 고주망태인 건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