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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나만의 관점에서 쓰인 앨범 리뷰 - #1

#1: Frank Ocean - channel ORANGE

by Cerulean Blue

나의 첫 리뷰는 서론에서 예고했던 대로 Frank Ocean의 데뷔 앨범인 'channel ORANGE'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앨범이 나에게 선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내 음악 세계가 이 앨범 전과 후로 나뉠 만큼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미를 독자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필자의 과거 이야기를 하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제일 처음 들어본 노래가 무엇인가? 내가 물어보려 하는 노래는 애국가, 교가 같이 누군가에 의해 머릿속에 주입된 노래가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찾아 듣게 된 첫 노래를 말한다. 매우 오래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독자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긴 시간의 고뇌 끝에 머릿속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노래를 하나 끄집어냈는데, 바로 Maroon 5의 'Payphone'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뭐랄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 이전의 나에게 음악은 일상 속에서 흘려보내는 음파에 불과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 노래를 클릭해서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애덤 리바인의 보컬 멜로디 라인, 벌스를 채우는 생소한 드럼 비트, 그리고 위즈 칼리파의 랩까지 모든 파트가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이 Payphone에 매혹되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aWnd3LJfs

그렇게 돼서 나는 Payphone을 통해 해외 팝송에 입문했다. 빌보드 차트나 유튜브 추천 곡들을 들으면서 다양한 음악들을 듣기 시작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등의 팝 음악, 포스트 말론, 다베이비 등의 힙합 아티스트, 제드, 캘빈 해리스 등의 EDM을 들으면서 내 딴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5~6년 동안 이런 식의 음악을 듣고 나니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노래가 나와서 그 노래를 들으면, 새로 나온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들었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한 하이햇 쪼개는 트랩 비트나 오토튠 떡칠 보컬은 끔찍한 이명같이 계속 들려왔고, EDM 또한 하우스, 퓨처 베이스 등의 장르곡 몇 개를 듣고 나면 모든 노래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팝송들이 식상해지니 되려 이것들만큼 싫어지는 것이 없었다.

탁자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오렌지 빛. 유일하게 가진 피지컬 앨범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20년이 되었고, 빌보드는 The 100 songs that defined the decade라는 이름의 포스트를 올렸다. 사람이 아는 대로 보인다고, 가끔씩 보이는 친숙한 노래들 20개 정도 빼고는 아는 노래가 없었다. 내가 해외 음악만을 들었는데 이렇게 부족한 점이 많았구나, 하는 일말의 죄책감이 들어서 이 100개를 모두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들었다.

이 리스트를 듣고 가장 좋았던 노래 세 개를 꼽자면 Tame Impala의 ‘New Person, Same Old Mistakes’와 Kendrick Lamar의 ‘Alright’, 그리고 Frank Ocean의 ‘Pyramids’였다. 이 노래들은 사막처럼 메마른 내 음악 가치관이라는 세상을 걸어가다가 만난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 오아시스에는 나의 음악 세계를 다시 활기차게 해 줄 새로운 음악들이 넘쳐났음을 직감했고, 얼른 그 음악들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제일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Frank Ocean의 'channel ORANGE'였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프랭크 오션이나 각 트랙의 가사에 대한 어떠한 사전 지식 없이 들었다. 그저 노래의 프로덕션, 멜로디, 박자, 오션의 음색에 집중해서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앨범이 시작되고 5분도 채 안된 ‘Thinkin Bout You’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노래들과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노래들은 꽉꽉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을 매혹하기 위해 이미 큰 성공을 맛본 사운드들, 공식화된 노래 진행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달랐다. 이 노래는 꽉꽉 채워있다기보다는 너무 비어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코드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패드 사운드와 단조로운 드럼 비트는 트랙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오션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들어 보컬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매우 간단해 보이는 비트였지만, 사실은 매우 세련된 비트였다. 이 미니멀한 비트는 이야기를 하는듯한 오션의 벌스부터 코러스 부분에서 내지르는 팔세토 모두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해줬다.

위에서 느낀 충격은 ‘Super Rich Kids’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박에 깔리는 피아노와 베이스 소리, 그리고 같은 박자를 따르는 킥과 드럼이 모두인 비트 위에서 프랭크 오션은 자신의 머릿속 이야기를 나긋나긋하게 풀어낸다. 중간에 있는 얼 스웻셔츠의 피처링 또한 인상적이다. 프랭크와는 달리 질질 끄는듯한 목소리로 가사를 몰라도 느껴지는 엄청난 라임 진행을 읊는데 이 부분은 지금 들어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piW5MR9F7k

https://www.youtube.com/watch?v=PFI0eRMcE_Q

가장 좋았던 트랙을 꼽으라고 하면 이 앨범을 알게 해 준 ‘Pyramids’를 선택할 것이다. 웅장한 합창단 소리와 샹들리에가 찰랑거리는 듯한 신디 소리로 시작하여, 그 위에 깔리는 진득한 신스 베이스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드럼 비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무덤덤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오션의 목소리가 합쳐지니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지 못한 오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피라미드가 있는 광활한 사막을 열심히 달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갑자기 비트가 바뀌며 아르페지오가 시작된다. 마치 오션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전환되며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되었다. 오션의 보컬은 습한 목욕탕에서 말하는 것 같이 축축한 느낌이 들었고, 공간감이 느껴진다, 비트도 808 드럼 머신 소리와 클럽에서 틀어줄 법한 신디사이저 소리로 바뀌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아까와 달리 날카롭고 차가운 것 같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후덥지근한 곳에서 갑자기 한밤중의 온갖 전등 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차가운 유흥가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다. 따뜻함과 차가움, 아날로그와 디지털같이 전혀 다른 두 가지가 합쳐져 있음에도 프랭크 오션이라는 사람 때문에 하나로 이어져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프랭크 오션은 따뜻한 색감을 가진 태양빛과 전등에서 새어 나오는 차가운 불빛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빛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트랙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aO-i5rD9Y

이후에 가사를 보고 나서 다시 감상했을 때에는 ‘Pilot Jones’‘Crack Rock’ 두 트랙이 인상적이었다. 두 트랙이 말하는 이야기는 약간 차이점이 있지만 마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은 공통된다. Pilot Jones에서는 마약을 하는 여자와의 이야기를 재치 있는 비유를 하며 마약에 취해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애틋한 심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Pilot Jones가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Crack Rock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마약을 하는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두 트랙이 이 순서대로 붙어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며,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는 프랭크라서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라고 생각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YzE8cD3Sn0

https://www.youtube.com/watch?v=hD82JEfc8HQ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앨범이 나에게 갖는 의미는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특별하다. 왜냐하면 나를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다. 기존에 내가 들었던 'Payphone'같은 노래들은 듣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물론 이런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을 자신의 천직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티스트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 세상에 없던 창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소속사와 함께 꾸며낸 환상을 찍어내고 있다.

하지만 프랭크 오션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었다. 바로 노래는 이야기이고, 아티스트는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좋은 아티스트란 매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그걸 잘 전달해내는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랭크 오션과 그의 작품이 좋은, 아니, 최고의 본보기임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hannel ORANGE'는 나의 기존 음악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시도였다. 이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을 잠시 멈추고 높은 평가를 받아온 옛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였으며, 앨범 하나하나를 들어볼 때마다 아티스트의 철학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그것에서 큰 감명을 받고 자극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앨범은 나의 새로운 음악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여정의 초석인 샘이다.

만약에 이 앨범을 아직 들어보지 않았다면 꼭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 앨범을 듣고 그다지 큰 감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취향은 존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나는 이 앨범을 아직 듣지 못한 귀를 사고 싶을 만큼 이 앨범을 사랑한다!


평점: 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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