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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택 경비원 K Aug 01. 2024

근무 태만

자택 경비원 1일 차

2024년 7월 31일.

5년 조금 넘게 다닌 회사를 나왔다.


그래서 오늘, 8월 1일부터 '자택 경비원'으로 직업(?)이 바뀌었다.


'백수(白手)', '구직러'라는 단어도 있지만 이번에 퇴사한 회사를 포함해 10년간 직장 생활을 해왔고,

구직 활동은 조금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고 싶기에 자택 경비원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자택 경비원.

집을 지키고, 집안일을 하는. 놀고먹는 직업인데...

사실... 무진장하기 싫다!!!


와이프에겐 '내가 이제 자택 경비원이 되니까 집안일은 하나도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다할게!'라고 큰소리쳤는데...

너무 하기 싫다.


그래서 오늘 눈을 뜨자마자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물론 복장은 아주 캐주얼하게, 지하철은 늘 탔던 루트가 아닌 다른 루트로.


원래 출근해야 했던 곳인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10년간 체득된 'BAD모닝 억지 출근 루틴'이 아직은 생생히 살아 있어서?

아니면 근무지를 이탈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렇게 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광화문.

평일 오전 10시에 찾은 광화문은 한적했다.

눅진한 더위만이 나를 반겨줄 뿐. 내가 아는 광화문이었다.


unsplash.com


그런데도 세종대왕님을 뵙는 순간 웃음이 나더라.

왜였을까.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알기에 광화문을 갔다.


지난 10년간 난 '혼자서' 광화문을 가본 적이 없다.

업무 미팅 때문에 가본 적은 있어도, 

와이프와 데이트를 한다고 가본 적은 있어도,

퇴근길 와이프 데리러 간다고 차를 타고 지나가본 적은 있어도,

혼자서 '광화문을 느끼기 위해' 가본 적은 없었다.


'그게 뭐가 대수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나에겐 광화문은 조금 특별하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던 10년 전.


난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광화문으로 갔다.

간 이유는 단순했다. 나에게 있어 광화문은 서울의 상징이자 우리나라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난 광화문을 돌아다니면서 지금 보면 정말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는' 다짐을 했다.


"꼭 여기에 빌딩 하나 사야지"


빌딩의 'B'도 살 수 없는 형편이지만 지난 10년간 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정말 [예쁘고, 멋지시고, 똑똑하신] 우리 와이프를 만나 결혼도 했고,

훌륭한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직장 생활도 나름 성실히&재밌게 했고,

인격적으로 많이 성숙해졌고, 나태함도 많이 사라졌고,

외모는 많이 망가졌고...


unsplash.com


이런 변화는 내가 10년 전 광화문을 돌아다니면서 했던 허무맹랑한 다짐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오늘 세종대왕님을 뵀을 때 웃음이 절로 나왔다.


10년이 지난 오늘.

10년 전 그때처럼 광화문을 혼자 걸으면서 다짐을 또 하나 했다.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오늘 한 다짐은 객관적으로 봤을 땐 그리 허무맹랑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와이프 포함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다.


아무튼 오늘의 근무 태만은 성공적이었다.

광화문 산책

광화문 맛집

광화문 커피

광화문 교보문고

광화문 무더위

를 모두 경험한 나의 하루는 비록 태만적일 순 있겠지만 알찬 경험이었다.


근데... 지금 바쁘다.

집에 오자마자 현업에 복귀해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저녁 준비하고, 집 지키고...

할 게 뭐 이리 많은지...


밥 먹고 나면 와이프랑 저녁 운동도 가야 하는데...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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