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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선 Oct 10. 2021

화조도-초충도

매화는 꽃 중에서 아름다움으로 으뜸이요 봉황은 새 중에서 기품으로 으뜸이니 과연 그 화첩은 세상의 고고함을 담고 있노라


초목은 풀 중에서 생명력으로 으뜸이요 사마귀는 미물 중에서 용맹함으로 으뜸이니 과연 그 화첩은 세상의 활기를 담고 있노라


등을 맞대고 있는 이 둘은 종종 각자의 맨 뒷장과 맨 앞장에서 서로를 마주하여 세상만사에 대해 논하곤 하였다. 


이것 좀 보아라. 내가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내려준 것이 무색하다. 뭇 아름다움이란 세상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개념이거늘 인간은 치장과 사치에만 아름다움을 남용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이웃을 돌보지 아니하고 제 편리에 안일하여 남의 불편을 무시하고 하물며 스스로 아름답고자 노력을 하지도 않으니 이젠 나의 존재조차 의미를 다한 듯하다.


저것 좀 보아라. 내가 이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 무색하다. 활기란 자고로 모두의 평안을 비는 생명의 기운이거늘 인간은 제 활기를 생명으로 쓰지 못한 채 파멸로만 이끌고 있다. 각자의 귀를 막고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과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약자에게 그것을 과시하고 하물며 스스로의 활기조차 저버리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이젠 나의 존재조차 의미를 다한 듯하다.


그러나 오늘도 인간은 태어나고 누군가는 자신을 희생하고 누군가는 신념을 지키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고 누군가는 모두를 포용하려 갖은 애를 쓰고 있으니 너는 다시 앞으로 나는 다시 뒤로 가 또다시 한쪽의 화폭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쥔 붓과 분채를 묵묵히 받아내어야 한다. 아름다움과 활기를 내려준 것은 우리이나 그것을 지속시킨 것은 저들이기에 우리는 저들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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