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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선 Oct 12. 2021

시선을 거두다

 나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항상 관객과 시선을 마주쳤다. 눈은 마음을 비추는 창이니 그림이 관객을 바라본다면 관객에게 나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너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항상 관객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있었다.


 너는 그림이 관객을 바라보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시선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내가 내 작품에 자신이 없나 봐. 너는 멋쩍게 웃으며 그림 속 인물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물은 작가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작품에 자신이 없다고 말 한 너는 동기들 중 누구보다 더 오래 그림을 그렸다. 수년이 지나도 그림 속 인물들이 관객과 눈을 마주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이 너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은 것이었다. 미술 전문 잡지의 기자로 일하던 나는 오래간만에 취재 차 너를 만났다. 형식적이고 당연한 질문들-작품의도나 제작 방식, 앞으로의 계획과 예술관까지- 로 취재를 마치곤 나는 조심스레 네게 다시 질문했다. 아직도 작품에 자신이 없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면에 안 실을게. 너는 가만 고민하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자신이 없어. 어쩌면 그래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라. 괜한 자존심에 놓지 못하고 있는 거지.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저 비어있는 시선을 좋아해 주는 것뿐이야. 정말 어쩌다 보니. 나는 아직까지도 눈동자를 그릴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네가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편집부에 사정하여 너의 회고전을 기획했다. 이를 핑계 삼아 너의 어머니에게 네 작업실 열쇠를 받아 내었다. 작업실에 들어가자 수많은 시선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들을 찬찬히 따라갔다. 작업실의 사방이 그림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한 그림의 시선을 따라가면 또 다른 그림이, 그 그림의 시선을 따라가면 또 다른 그림이 나를 반겼다. 그런 방식으로 네댓 번 시선을 옮겼을까. 이번에 따라간 시선은 작업실 천장 가까이 난 작은 창문을 가리켰다. 나는 굳이 의자를 밟고 올라가 그 창문을 내다보았다. 나는 깨달았다. 너의 작품은 비록 인물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지만, 비록 텅 빈 시선이라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그림은 세상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세상 만물의 아름다운 색채를 찬양하는 그림이었다. 따스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네가 관객들로부터 거둔 시선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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