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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Apr 11. 2024

마음은 그릇과 같아

그렇다고 갑자기 완전 깨지다니......

 그 날 저녁, 나는 으레 그랬듯이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 일을 그다지 싫어하는 편이 아니라서 약간은 즐겁게 그릇에 하얀 거품을 묻혀가며 주부생활 마감을 앞둔 설레임으로 평범한 저녁시간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파란색 테두리가 둘러진 그 하얀 접시는 왠지 지적으로 보여 내가 좋아하는 그릇 중 하나였다. 풀세트로 다 장만하기에는 부담이 있어서, 4인 가족이 일품요리를 즐길 수 있게 큰 접시 네 개만 따로 구입했다. 약간은 두꺼운 듯한 두께감 때문인지 설거지 할 때 손에서 몇 번 미끄러져 떨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가 나가거나 눈에 보이게 금이 가서 깨진 적은 없었기에 안 깨지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그릇처럼 잘 안 깨지는 독특한 재료로 만들어졌나, 하고 다행으로 여기며 접시를 챙겨두곤 했었다. 그런데 그 날, 설거지를 하다가 손에서 접시가 미끄러지더니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소리를 내며 쨍, 하고 금이 가서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비단 그 날 단 한 번의 충돌로 인해 그 그릇이 깨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왠지 모르게 확신했다.

 왜냐하먄 사실은 몇 번이고, 실금이 생겼을 것 같은 충돌사고가 있을 때마다 설거지를 끝낸 후에 그 접시를 우유에 담궈두려 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릇을 잘 다루는 한 인플루언서가 실금이 간 그릇을 우유에 담궈두면 실금이 메워진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쌀밥 한스푼을 넣어 팔팔 끓인 물에 담궈두려고도 했었다. 엄마가 언젠가 그릇을 한번씩 뜨거운 물에 쌀밥 한스푼과 함께 담궈놓으면 단단해지고, 금이 메워진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내 손에서 쨍, 하고 소리를 내며 그 접시가 떨어질 때마다 진심으로 다짐했었다. 내가 너를 보살펴주리라, 이따 살뜰히 치료해주리라, 하고. 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그저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접시가 깨지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내 눈에 실금이 크게 보인 적도 없고, 접시에 이가 나갈 정도의 표식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문득, 무수한 그릇의 실금들이, 아니 그릇들이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아주 단단하고, 꽤 정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잦은 충돌에 실금은 얼마든지 계속 생겨나갈 수 있을테니까. 눈에 뚜력하게 보이지 않은 생채기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잠시만 떠올려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릇을 몇 번이나 떨어트린 주인의 생각이, 이렇게 방법을 알고 있어도 실행에 옮기기가 별 이유없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마음의 주인도 마음을 돌보는 방법과 마음에 생긴 작은 상처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하루하루일지도 모른다. 작은 생채기들을 모른 채 하다가, 결국은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상처들마저 돌봐주기를 조금 뒤로 미뤘다가, 생채기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한 순간 버티지 못하고 작은 부딪힘에도 주저앉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애정하던 그릇을 깨트린 이후였을까, 나는 요즘, 나의 마음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마음을 되도록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돌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전에 속상했던 것, 며칠 전에 서운했던 것, 따져보면 사과해도 좋을 일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서운하지 않을 일들을 얼른 꺼내어 다독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게 또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다. 괜한 자존심 앞세워서, 괜히 센 척하면서 강해보여봤자 어느날 바싹 깨져버린 그릇을 부여앉고 아쉬워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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