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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Jul 01. 2024

오랫동안 모른 척 했던 이야기

고생많았어 언니, 미안해, 고마워.


 우리집은 크게 성공했다가 쫄딱 망한 집안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한참 후였지만 기억으로는 뭔가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가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그 변화 전에 기억에 남는 일은 언니의 생일파티. 다섯 살 많은 언니의 초등학교 6학년 생일파티는 엄마가 운영하시던 고급레스토랑의 제일 큰 룸에서 치뤄졌다. 곱게 차려입은 언니의 친구들이 스테이크를 썰고, 풍선이 굴러다녔다. 언니의 친구들이 언니에게 “너네집 진짜 부자구나? 이 레스토랑이 진짜 너네 엄마꺼야?” 하며 묻고 언니는 웃으면서 맞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언니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아빠가 운영하던 금융회사가 위기를 맞이했고 (전해듣기로는) 엄마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갑자기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 엄마는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셨다. 언제나 미용실에서 드라이를 하고 우아한 옷차림으로 출근하던 엄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빠는 예전과는 달리 자주 집에 계셨고 그 빈도 못지않게 자주 술에 취해 늦은 밤에 귀가하셨다.

 어린 나는 가난함을 딱히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다만, 엄마와 친했던 친구들 엄마들이 엄마의 근황을 물으며 걱정하셨고, 나를 딱하게 여기는 듯 자꾸 음식을 갖다주셨다. 무엇이든 덥석 받기를 좋아했었는지, 나는 부담 한 톨 없이 호의를 받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서우면 친구집에 가서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신나게 놀고 엄마가 오면 졸졸 엄마를 따라다녔다. 담임 선생님은 언젠가부터 나를 남게 해서 공부를 더 가르쳐주셨고, 수업시간마다 나를 혼자서도 다 잘해내는, 뭔가 성실한 아이로 포장하여 칭찬했다. 내가 그 정도인가, 얼떨떨했지만 또 그렇게 하면 다 별탈없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숙제도 공부도 혼자 꼼꼼하게 챙겨서 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다녔다. 각종 대회도 다 나가겠다고 손을 들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부모님께 혼자 버스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구김살이 없다 못해 실크 같았던 해맑은 아이였나보다.

 갑자기 사라진 것들은 사라졌음에도 그대로인 것처럼 얼마동안 우리 곁을 맴돌았다. 마치 한이 남아 떠나지 못한 망자처럼. 부유한 집안 분위기, 엄마가 대부분 곁에 있던 시간들, 무엇이든 다 사 주고 호탕했던 아빠, 공주님처럼 새침했던 언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은 한여름밤의 꿈같은 허상이 되었다.

 그무렵, 잠자리에 누워서 이제는 곁에 없는 것들에 대하여 언니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우리 그랬었는데…” 하는 것도 처음엔 재밌었다가 몇 번 떠올리고 나니 지겨워졌다. 현실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되찾고 싶었던 것들을 되찾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부모님은 늙어갔다. 그 사이 먼저 어른이 된 언니가 집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나는 멀리서 내 갈 길을 걸었다. 젊고 예쁘게 꽃필 나이에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언니 곁에서 나는 여전히 부잣집 막내딸인 것처럼 살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그 때의 언니 나이가 되어도 언니가 그 때 겪고 감당해야 했던 시련과 두려움을 모른 척 하면서, 그건 언니의 선택이었다고 애써 눈을 감았다.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아이를 낳고서야 그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서야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내 모습이 투영됐다. 아무것도 모를 시기, 비싼 옷을 사 줘도 얼마인 줄 모르고 좋은 곳에 다녀와도 기억도 잘 못하는 시기. 이렇게 천진난만한 시기에 부모님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내가 브런치를 먹을 시간에 엄마는 정신없이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의 상을 차렸을 것이다. 딱 지금 내 나이 쯤이었다. 엄마의 변화가, 아빠의 변화도. 그렇게 그 시절을 그려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어두컴컴한 저 구석에 언니가 울고 있다. 우리 식구 머물 집을 구하려고, 학원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어느날 갑자기 산더미처럼 불어난 이자를 날짜 맞추어 내면서, 그 중간 중간 별일 없는 것처럼 나랑 떠들고 웃으면서, 가끔 언니 좀 봐달라고 애원하면서.

 여전히 웃고 떠드는 자매로 살고 있지만, 나는 불쑥 불쑥 울고 있는 언니를 떠올린다. 남은 인생 가슴 아픈 일 없이 살아라, 언니야. 혼자 다 감당하게 해서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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