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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Feb 24. 2022

그때 그 시절, 나의 선생님

2022. 2. 24.



 나의 학창 시절, 그 시절에는 가고 싶은 학교를 세 곳까지 지원할 수가 있었다. 일명 ‘뺑뺑이’라 불리는 추첨 방식으로 가고 싶은 학교에 운 좋게 갈 수도 있고 그냥 주소지와 가까운 곳으로 배정을 받을 수도 있는 천운에 따르는 시스템으로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졌다.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로 유명한 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과는 달리,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에 맞춰 지망학교를 적었다. 이제 막 멋을 내기 시작한 친구들은 교복이 예쁜 학교나 시가지에서 가까운 학교, 좀 더 사교적인 아이들은 남녀공학에 지원을 했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예쁘고 공부 잘하는 언니가 다닌다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에 지원을 했다. 나와 친했던 친구들은 그저 함께 다니고 싶다는 생각으로 함께 같은 학교를 지원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라서 추첨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운 좋게도 모두 같은 학교를 배정받았다.


 버스를 타면 삼사십 분이 걸리는 꽤 먼 곳에 있는 학교였다. 그래도 좋았다. 새 학교는 반짝거리게 예쁘고 깨끗했고, 좋아하는 언니는 같은 학교가 됐다고 함께 기뻐하며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매점에서 음료수나 작은 간식을 사 주곤 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두 명이 중학교 3학년 때에 이어 같은 반이 됐다. 외로울 일도, 서먹할 일도 별로 없었다. 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던 나는 단정하고 예쁜 교복을 입고 일찍 학교에 등교하는 일을,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도록 좋아했다.


 담임 선생님은 마르고 세련된 여자 선생님이었다. 안경 너머 웃는 눈매가 선하고 짧은 머리가 지적인 인상을 풍겼다. 신학기 상담을 하던 날,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물으셨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궁금한 것들을 이야기하도록 해주셨다. 나는 궁금했던 배치고사 성적에 대해서 물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기에 몇 등으로 들어온 것인지 궁금했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잘 봤고 고생했다고, 꽤 잘했다고 답해주셨다. 나는 그 대답이 좋았다. 몇 등이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 그런 선생님들보다 훨씬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 시절 내게는 평범하고 인간적인, 친근한 어른이 필요했다. 유난스러운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른들을 향해 다소 냉소적인 시선을 갖게 되거나 비난을 품게 되곤 했기에 여차하면 엇나갈 기회를 노리면서 또래들과의 생활만 재밌고 편안하다고 여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치우칠 수 있는 그 균형을 지긋이 잡아준 것이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나를 이해해준다는 생각이 들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눠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가족들 사이의 일로 마음이 무척 상했던 날, 아침 자율학습 시간 내내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 숙이고 있던 나를 불러내어 담담한 위로를 전해줬던 선생님을, 그 조용하고 차가웠던 복도에서 들려준 따뜻한 목소리를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단 한 번도 그 일을 다시 꺼내거나 되짚어 위로하지 않은 배려 또한 오랫동안 고마웠다. 당시에 불행한 마음을 가진 사춘기 여고생에게는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의 소소한 행복들을 다정하게 건네주던 선생님을 아마도 나는 평생 동안 고마워하며 내가 멋진 어른이 되거든 꼭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어른이 되고, 삶의 순간순간 선생님을 떠올렸다.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배려,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선생님이 내게 주신 좋은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흔들림의 순간에 많이 의지하곤 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그리 바쁘지 않으면서도 일 년, 오 년, 그렇게 십 년, 이십 년이 훌쩍 흘러갈 줄은 몰랐다. 늘 그리웠는데, 정말 안부를 묻고 싶어 했는데, 선생님과 연락이 안 닿은 지 거의 이십 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유난히 선생님 생각이 났다. 혹시 하는 마음에 옛날 이메일 주소로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검색했다. 밝게 웃는 사진, 사려 깊은 선생님의 글, 그곳에 분명히 나의 선생님의 계정이 존재했다. 당장 메시지를 보냈다. 반갑게 돌아온 답변에 심장이 따뜻해졌다. 내가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이 조금은 달랐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내게 큰 영향을 준 선생님과의 해후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선생님의 주소를 물어 귤을 보냈다. 엊그제 먹은 맛있고 달콤한 귤을 꼭 맛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귤 농장에 가서 사장님께 꼭! 가장 신선하고 가장 맛있는 귤로 꽉 채워서 보내달라고 강조했다. 귤이 잘 도착했다고, 잘 먹겠다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정말 고마웠다고, 많이 그리웠다는 말을 귤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내 마음이 뿌듯하고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제주에 오면 꼭 시간을 내어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내가 얼마나 행운을 많이 얻은 사람인지 새삼 깨달았다. 우연히 선택한 학교, 우연히 함께 하게 된 좋은 친구들, 우연히 만난 좋은 선생님까지. 많은 우연과 행운에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의 이 기운을 받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많은 행운이 찾아오길, 삶의 많은 순간 좋은 결정을 하게 할 수 있는 따뜻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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