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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unset Mar 24. 2022

아이의 시간을 지켜보는 일

조금씩 자라고 있어요



 빨래를 정리하다가 아이들의 옷을 펼쳐보는데 문득 생각보다 옷이 꽤 커 보였다. 내 손도 안 들어가던 좁은 팔 부분이 달린 옷을 입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손을 쑥쑥 넣어 뒤집을 수 있으니, 아이가 많이 크긴 컸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다가오는 큰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한 품에 쏙 들어오는 따뜻한 체온을 가진 생명체, 가만히 내 등을 감싸는 두 손이 여전히 작지만 보드랍고 통통했다. 매 끼니 식사를 챙기고, 계절마다 옷이 작아졌나 (제대로 말하면 몸이 커졌나)를 체크하며, 신발 앞 코에 엄지발가락이 바짝 닿았는지 확인하는 일들을 몇 번이나 했을까, 육아를 시작한 지 햇수로 8년이 되어가는 데 새삼스럽게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처음 아이와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의 설렘과 공포를 잊지 못한다. 요즘 어딘가를 지나가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저 소리가 이렇게 작고 귀여웠나 생각하곤 한다. 그때는 나의 모든 세상을 뒤흔들어놓을 듯 크게 들렸는데, 심장도 터질 듯 뛰고, 등과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만큼 어찌할 줄 몰라서 절절매던 초보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소리가 이렇게 귀엽고 작은 소리였다니 뭔가 허무하고 애틋하다. 웃음소리도 마찬가지, 인터넷에서 떠도는 영상 중에 갓난아기의 웃는 모습을 보는데 아이는 너무나 작디 작고 웃음소리의 마디는 너무 짧았다. 우리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는 우주가 함께 웃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행복이 막 비눗방울처럼 아이의 입에서 방울방울 쏟아져 나와서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길게 느껴졌는데, 하고 생각했다.


 한 때는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갖는 것이 싫어서, 내 옷 하나 가볍게 걸쳐 입고 내 가방 하나 가뿐하게 챙겨서 나만 챙기면 되는 어엿한 성인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이제는 이 아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두려워지는 온전한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다.


 야채를 자르는 내 옆에 다가와 “엄마, 제가 같이 해 드릴까요?” 하고 묻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볼 때면 귀찮고 번거롭지만 반갑고 기특하다. 양말을 정리하는 데 가만히 보고 있다가 따라 해 보는 앙증맞은 손도, 두 아이가 뜻이 맞질 않아 말다툼을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잘잘못을 따지는 긴 문장들이 작은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도 모두 작은 생명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기쁜 알림들이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 아이의 시간을 지켜보는 일, 나의 시간도 같이 흘러  속에 내가 있고  밖에도 내가 있다. 조금씩 몸과 마음이 크는 살아  쉬는 존재들에게 엄마라 불리는 일은  재밌고 신비롭지만 그만큼 혹은  보다  힘들고 어려운 .  훗날 아이들이 행복을 찾을  알고, 지나온 시간을 감사해할  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할  같다. 마음 아픈 일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일을 헤쳐나갈  아무도 없다고 느끼지 않고 가족이 곁에 있어 괜찮다고 위로받을  있는 성인으로 자란다면 좋겠다.


 그저 내가 변함없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바로 이런 말들. “조금씩 자라고 있으렴, 엄마도  너희들의 시간 속에 함께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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