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가 폭주하는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 마무리됐다. 오로지 시청각적 정보만 있는 영상 매체가 후각과 미각을 다루는 요리 콘텐츠를 내놓는 것은 많은 용기와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요리사의 ‘쇼’와 ‘사연’이 요리 예능의 중심 메뉴처럼 다뤄질 때가 많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그런 유혹을 빗겨갔다. <흑백요리사>는 그 바이럴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로 기록될 콘텐츠이다.
<흑백요리사>는 대한민국 발 OTT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게임의 알레고리’(allegory)화에 있음을 일깨웠다. 돌이켜 보면, 성공적인 대부분의 대한민국 OTT 콘텐츠는 게임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흑백요리사>는 <오징어게임>에서 시작한 게임의 알레고리를 예능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미 지난해에 <피지컬100>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렇게 <킹덤>, <지옥>, <지금우리학교는>, <스위트홈>, <D.P.> 등의 드라마는 모두 게임을 알레고리화한 서사이다.
게임의 알레고리란 게임의 논리를 차용하여 어떤 콘텐츠의 전체 서사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알레고리적 서술은 풀어내고자 하는 서사를 직접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조건으로 ‘바꾸어’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 목적은 어떤 문화가 국경이나 문화권을 넘어설 때 발생하는 문화적 할인을 최소화하는데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의 성향이나 성격을 동물의 모습으로 우화하여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길 수 있게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각 인물의 거주 공간, 이동선, 직업, 삶의 태도 등으로부터 현대사회의 계급의 작동을 기생충의 알레고리로 표현한다.
알레고리는 두 개의 가치관이 중첩되는 상황일 때 자주 활용된다. 그런 점에서 국경 너머로 서비스되는 OTT에서 우리나라 같은 제3세계 국가의 콘텐츠에 알레고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척 현명한 판단이다. 게임화가 이루어지면 낯선 얼굴이 게임 속 캐릭터처럼 되어 문화소비의 진입장벽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에서 게임 참가자들과 진행자들에게는 츄리닝과 제복, 마스크를 씌운 것은 매우 잘한 선택이다.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세트장은 그곳이 게임 속 세계임을 암시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약속한다.
<흑백요리사>는 서바이벌 포맷에 플롯을 성공적으로 얹음으로써 게임화의 지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그래서 <흑백요리사>는 예능이지만 다큐멘터리 같고 또한 드라마 같다. 그런데 100명의 요리사 중에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스토리와 캐릭터를 뽑아내는 후반기 작업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를 놓치지 않는 저인망식 촬영과 충분한 편집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지난 1월에 슈팅에 들어갔음에도 9개월여의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예능에서 <흑백요리사>만큼 교차편집을 잘 사용한 전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흑백요리사>의 서사를 완성시킨 마지막 비밀은 백종원과 안성재 두 사람이 보여준 질적 판단이다. 그들은 게임 속 마법사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보통의 경연대회는 심사자들의 평균점수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 논란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콘텐츠의 완성도를 해치는 위화감마저 피할 수는 없다. <흑백요리사>의 두 평가위원은 범접할 수 없는 마법같은 평가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충돌되었을 두 사람의 판단이 경연 서사 안에 매끄럽게 스며들었다. 역시나 꼼꼼한 후반기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 발 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게임적 요소를 많이 활용하는 것은 신세대 창작자들의 성향이 반영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OTT 제작자들이 게임의 채택에 그치지 않고 게임과 서사가 융합된 새로운 문화관습을 개척한 것은 분명 주목해야 할 성과이다. 탁월한 만듦새를 보여준 제작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작자들의 고된 창작 노동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수고에 걸맞는 보상이 있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