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
출근길에 허둥지둥 집 밖을 나서다가도, 새로운 계절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문득 주위를 돌아보게 해주는 냄새.
자연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과 벌써 한 분기가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섞여 몽글몽글한 마음이 피어난다.
어느덧 올해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겨울 냄새가 찾아왔다.
수분이 완전히 빠져버린 차분한, 그러나 무겁지 않고 산뜻한 공기.
흐음- 크게 숨을 들이쉬면 몸속을 가득 채우는 신선한 숨.
밝은 햇살 아래, 상쾌하다는 생각과 함께 낙엽들이 뒹구는 한적한 산책길을 걷는다.
괜히 깨끗한 도보를 놔두고 떨어진 낙엽들 위를 자박자박 걸으며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어진다.
겨울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번에는 올 한 해 나름 힘겨운 일들이 있었던 탓인지, 한 해가 지나간다는 아쉬움이 그리 크지가 않다.
물론 이루지 못한 것들에 조급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어쩌나.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매듭을 예쁘게 짓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2024년의 마무리와 2025년의 새로운 시작을 꾸며볼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햇빛만은 따스한 이 초겨울을 조금 더 즐기고 싶어 산책을 떠났다.
다른 목적 없이 단순히 자연 속을 거닐며 존재하는 것이 주는 기쁨이 있다.
스스로가 ‘선택’하기 이전에 ‘주어졌다’고 느껴지는 인생의 목표들에 몰입해 애쓰는 나날을 보내다가도, 코끝을 스치는 자연의 냄새는 현재의 순간을 알아차리게 도와준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잠재워지는 이 여유로운 바깥공기가 참 좋다.
산책 이후에는 서늘해진 몸에 크림이 올라간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며 온기를 데웠다.
꾸벅꾸벅 졸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여유로운 주말은 지나가고 이제 출근할 날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킁킁거리며 거리를 거닐던 ‘그저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뒤로 하고, 단시간에 쳐낸 일과 쌓은 업적으로 존중받는 ‘역할을 지닌’ 인간으로서 숨을 들이마실 시간이 온 거다.
아무렴, 내 손을 거쳐간 일이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하니까.
낙엽을 구경하던 때보다 한껏 더 예민하게 부담감을 지녀야만 그런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에.
겨울 냄새에 젖어든 몽글몽글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그래도, 앞으로도 가끔씩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마다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 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겨울 냄새를 맡고,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구경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