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엄마가 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엄마라니, 마냥 어색했다. 실감이 안 났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 그 기분을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느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던 그 기분. 가까운 가족의 탄생이나 죽음은 극과 극의 상황이지만 얼떨떨함은 비슷한 것 같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 기쁨이냐 슬픔이냐, 긍정적 당황이냐 부정적 당황이냐, 하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내면에선 본질적으로 ‘어색함’이라는 공통점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한 법인데, 그 관성을 훌쩍 벗어나버리는 게 탄생과 죽음이기 때문일까. 이 둘은 참 가깝고도 먼 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난 엄마가 되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무조건 해야만 하니까, 그냥 그렇게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미치도록 귀엽고 귀했지만, 나는 ‘엄마니까’ 온 마음을 다한다는 자세였다기보다 ‘해야 되니까’ 해내자는 자세에 가까웠다. 미안하게도 엄마가 될 준비가 부족했었나 보다. 그러다 문득, 첫 아이를 낳은 지 어언 3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에, 당시 100일 좀 지난 둘째도 첫째와 다를 거 없이 ‘그냥 그렇게’ 돌보고 있던 무렵에, 아직까지도 ‘엄마’라고 불리는 게 조금 낯설던 무렵에, 난데없이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기분을 강렬하게 느끼게 됐다.
이런 걸 두고 ‘에피파니(갑작스러운 깨달음)’라고 하던가. 첫째 아이와 단둘이 놀이공원에 갔을 때였다. 수많은 인파 가운데 내 옆에 나만 믿고 서있는 작고 예쁜 아이가 있는데, 나만 의지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그 모습이 왜인지 눈물 나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없어지면 이 아이는 혼자서 물 한 모금 마시기도 힘들 것 같은, 그 어떤 놀이기구도 탈 수 없을 것 같은, 집에 돌아가는 건 꿈도 못 꿀 것 같은, (실제로는 혼자 잘 해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막중한 책임감이 솟아나고, 내 몸속 모든 세포가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 같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필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까지 중요한 존재였던 적이 있었던가.
한때 나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연스러운 구성원이었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었고 대체로 역할을 잘 수행해서 약간의 인정도 받으며 살아왔다. ‘너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지’라는 흔한 말도 들어봤지만 당연히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전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난 우리 부모님의 전부겠지만 부모님은 내가 없다고 (죽었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옆에 없다고) 식사를 못 드시거나, 집을 못 찾아가시거나 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래서인지 부모님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다.
나의 어린 자식들은 본인들이 귀중한 존재인 만큼 나의 삶 또한 귀중하게 만들어 놓는다. 내가 나 자신을 ‘의심할 여지없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든다. 가슴 벅찬 사랑을 알려주고, 벅차게 받은 만큼 벅차게 돌려주지 못하는 부족한 엄마를 언제나 존중해 준다. 미안하고 또 미안한,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