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 음악평론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내 아빠(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으므로 아빠라고 적는다)는 클래식 마니아였다. 우리가 가곡이라고 불리는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음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들어줄 만한 목소리를 들려주신 적도 없었다.
노래는 차라리 엄마가 잘했다. 성가대에서 조수미라도 빙의된 듯 고역으로 치고 올라갔다.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 실력은 딱 부모님의 중간 정도다. 역시 유전자는 위대하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완전 소름이 끼칠 수준이다.
이런 아빠에게 이끌려 단자리 숫자일 때부터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곳엘 갔다. 그것도 정말 많이 갔다. 턱시도를 차려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매고 갔다. 나처럼 번듯하게 차려 입은 아빠는 정말이지 엄숙한 얼굴로 클래식 연주를 끝까지 감상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아빠가 집중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어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첫째로 너무 자주 졸았고, 둘째로는 거의 40년이 다 된 추억인 까닭이다.
여기까지만 읽었다면 당신은 아마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순탁 씨의 아빠는 되게 엄격한 분이셨겠구나 추측할 확률이 높다. 전혀 그렇지 않다. 자랑은 아니고 내 아빠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인생 전체에 걸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친절했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따뜻한 사람이었다. 대상이 친척이든 이웃이든 나눠주는 행동으로부터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아빠에 비한다면 그가 낳은 아들은 과연 형편없다. 이거 참, 뭐로 보나 낙제점이다.
비단 세종문화회관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호텔에도 갔다. 1980년대에 서울에서 유명한 호텔은 아마 다 가봤을 것이다. 아빠의 직업은 회사와 회사를 연결해주는 프리랜서 무역 중개인이었다. 출장이 잦은 만큼 해외에서 온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1980년대에 나는 무수하게 김포공항에 갔다. 그곳에서 엄마가 사준 햄버거를 (한 개로는 부족하니까 어떻게든 졸라서 두 개) 먹으면서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호텔에도 진짜 여러 번 갔다. 아빠가 벼락치기 해준 영어를 어떻게든 외워서 인사한 뒤 호텔 식당에 함께 앉아 스테이크를 먹었다. 아빠의 고객은 미국인이거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었다. 어린 마음에 “코 진짜 크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낯설고, 어려웠지만 문제는 없었다. 이유는 뻔하다.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빠와 가장 자주 간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세종문화회관 별관이었다. 지금은 서울시의회 본관으로 바뀐 이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봤다. 대부분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였다. 그중 최고는, 나와 비슷한 X세대(아아. 기어코 이 단어를 쓰고야 말았다)는 다 알겠지만 <우뢰매>였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우뢰매> 시리즈를 4탄인가 5탄까지 봤다. 물론 내 옆자리에는 언제나 아빠가 있었다.
일단 까놓고 말해볼까. <우뢰매>는 엉망진창인 영화다. 이걸 영화라고 정의하는 게 영화 예술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을까 우려될 만큼 <우뢰매>는 영화라고 말하기조차 힘든 영화다. 완성도는 처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표절 아닌 구석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알다시피 <우뢰매>의 주인공은 코미디언 심형래가 맡았다. 당시 그는 영구라는 캐릭터로 일세를 풍미하는 중이었다. 초등학생치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당시 <우뢰매>를 본 아이들은 모두 자기가 심형래가 연기한 에스퍼맨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쫄쫄이를 입고 하늘을 마음껏 누비는 상상에 푹 빠졌다.
이게 대체 특수촬영인지 애니메이션인지 종잡을 수 없는 촬영 따위는 상관 없었다. 미니어처를 이용해 대충 때운 장면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우뢰매>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 주위의 모든 아이가 봤다. <우뢰매>는 가히 당대의 ‘난 알아요’ 같은 존재였다.
물론 어린 시절 <우뢰매>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생각을 했을 리 없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도리어 열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우뢰매와 에스퍼맨도 좋았지만 내 눈길을 사로 잡은 건 (당연히) 에스퍼맨의 파트너인 데일리, 즉 배우 천은경 씨였다.
아아. 그것은 첫사랑이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쫄쫄이를 입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당장 나이를 먹고 20대가 되어 천은경 씨를 찾아가 고백하고 싶어졌다. 물론 단칼에 거절당했을 것이다. 어쨌든 장담할 수 있다. 당시 초등학교 남자애들 모두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을 거라고 확언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아빠에 대해 생각한다. 내 옆에서 그가 어떤 기분으로 <우뢰매>를 감상했을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마찬가지로 나는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재미 더럽게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들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대체 언제 끝나나 좀이 쑤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나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우뢰매>를 봤다. 금성극장에서는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를 봤다.
이 영화들이 내 영화 보기의 밑거름이 되어주었을 리는 없다. 다만, 영화 보는 기쁨이 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해줬다는 점에서 나는 우뢰매와 순돌이에게 감사한다. 돌아가신 아빠의 인내심과 사랑에 감사한다. 뭐가 더 필요하겠나. 이것만으로도 우뢰매와 순돌이의 존재 가치는 적어도 나에겐 충분하다.
<계속>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