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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건조 Oct 12. 2021

<16>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호흡하기

이화정 영화기자




   “혹시 아직 계시면, 맥주 한잔하면서 영화 이야기 더 나누실래요?” 


   새벽녘 카톡이 울렸다. 이 시간에? 엄청 취했거나 아니면 스팸이겠거니 하고 무시하려다가, ‘영화 이야기’라는 말이 걸렸다. 누가 스팸으로 ‘뜨거운 밤 보낼래요’도 아니고 ‘같이 영화 이야기 나눠요’라고 쓸까. 영화제 기간에 받은 톡이니 혹시 영화제에 참석한 지인인데 혹시 전화번호 저장이 안 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프로필을 눌러서 프사를 확인해보며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아는 지인들 얼굴을 떠올려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톡의 발신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맞았으며, 그럼에도 저질 스팸 톡은 아니었다. 그날 내가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픈 채팅방’을 열었는데, 단톡방에서 아직 나가지 않았던 관객이 같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톡을 보낸 것이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예매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 화제작을 보려고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예매하다가 앞뒤로 선 이들이 서로 영화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니 이날 관객의 오프라인 접속 시도는, 온라인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만남의 결합쯤 되는 걸까. 디지털 시대의 오픈 채팅방이 아날로그 만남을 불러오는 기이한 풍경이네. 


   아, 오픈 채팅방이 뭐냐고? 코로나19 이후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 행사에서 이제는 일상이 된 관객과의 대화 소통의 방식이다. 감염의 위험이 있는 마이크를 관객 간에 서로 공유하지 못하니 톡방을 개설해 질문을 받고, 행사를 진행하는 모더레이터가 톡방에 올라온 질문을 채택해 참석한 감독, 배우 등 게스트들과 문답을 진행해 나가는 거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대면하고 있지만, 질문자는 아이디로만 소통하는 비대면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일지라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싶은 마음들이 고안한 사뭇 절박하고도 신박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든, “정신 나간 XX”라고 욕설을 보내기 직전까지 갈 뻔한 그 톡의 전말은 그랬더랬다. 


   강변 테크노마트에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강변 CGV가 오픈했던 해가 생각난다. 테크노마트가 있는 그 첨단의 건물도 이제는 인터넷 쇼핑몰에 밀린 지 한참이지만, 1998년 입점한 멀티플렉스는 단관극장에 익숙한 관객들의 발걸음을 모을 새로운 형태의 극장이었다. 그 시절 미국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친구가 “미국에서는 말이야, 티켓 하나를 끊고 들어가서 하루에 영화 3, 4편을 볼 수 있어.” (아니 어떻게, 표 하나로?) “화장실에 잠깐 가 있다가 다음 영화 시작하면 옆 관으로 들어가는 거지. 어차피 출입구는 하나고 상영관은 10개 정도는 되거든.” 하고 불법 관람 무용담을 늘어놓던 시절, 드디어 우리에게도 멀티플렉스가 생긴 일대 사건이었다. 뭐 그 친구 말은 다 틀렸다. 미국은 몰라도, 한국은 철저한 관객 관리로 인해 티켓 하나로 복수 관람은 아예 불가능했다. 컴컴한 로비에 별빛 네온이 빛나던 최첨단의 극장은 당시 젊은 층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았다. 


   국내 멀티플렉스의 확장으로 이제는 집 앞에 ‘동네친구’처럼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하나쯤 있게 됐고, TV 보다가 슬리퍼 신고 뛰쳐나가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던 편리한 때가 됐다. 극장의 확산으로 중장년층까지 관객층도 확산됐고, 관객 연령대의 확산으로 중장년층이 즐길 영화 콘텐츠도 개발됐다. 그렇게 전진만 하던 극장이 2020년에 들어 잠깐이지만 명백한 뒷걸음을 하고 있는 거다. 입장 절차에서부터 심리적 체감까지, 극장 입장에는 이제 단단하고 높은 벽이 생겼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영화제는 특히나 방역 조치가 더 강력하다. QR코드를 찍고 체온 측정을 하고,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라텍스 장갑을 낀다. 얼핏 선별진료소 간호사처럼 보이기도 하는, 코로나19 시대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진행에 들어가는 모더레이터 기본 착장이 이 정도다. 거리두기를 시행한 좌석은 비어두기 표시로 띠를 두르거나, 종이 안내지가 붙어 있고, 또 배우의 등신대가 대신 빈 자리를 차지하는 등 각양각색이다. 무대와 관객과의 거리두기도 철저히 지킨다. 


   방역지침 2.5단계가 시행되고서부터는 이 정도 무장만으로는 부족해서, 무대 위에서도 옆사람을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줄 투명 아크릴판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만전을 기하고 나서야, 감독과 배우 관객들이 함께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마련된다. 앞서 말한 오픈 채팅방은 이런 절차 후에야 찾아오는 한 줌 소통의 기회다. 2021년 극장은 공기 중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 행복한 행사고, 요즘은 아예 감독과 배우가 사전에 영상을 녹화해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하는 경우도 많다. 


   너무 우는 소리만 했나. 의외의 호 반응도 있다. “GV 빌런이 없어서 쾌적해요.” 마이크를 독식하고 질문보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관객을 일컫는 GV 빌런을 맞닥뜨리던 관객들은 이제, 오픈 채팅방 형식이 오히려 더 좋다는 말도 한다. 관객에게 아예 마이크를 주지 않으니 ‘빌런’이 자연스레 걸러지고, 말보다 더 정리해서 올라오는 질문도 정갈하다며 나름 장점도 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감독과 배우들은 행사가 끝나고 질문을 캡처해서 보내 달라고 요청도 한다. 생생하게 도착한 관객들의 궁금증, 평가를 두고두고 보고 싶다고. 그래,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같이 웃고, 지금 이 시기를 함께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환경에서도 강한 빌런은 살아남기도 합니다만. 얼마 전 일화 한토막. “거, 마스크 좀 벗고 합시다.” 감독의 답변이 진행되는 와중 갑자기 객석에서 거친 요구가 들려왔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협조해달라”는 진행자로서의 내 멘트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 관객이 다시 “관객들의 볼 권리를 막는다”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의 세상에서는 ‘볼 권리’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시 된다. 당신이 주장하는 볼 권리를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다가 감독과 배우와 그 자리의 다른 관객들이, 우리 모두가 겪을 위험은 생각도 하지 않는걸까. 생각해보니 그분은 내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부터 내게 비키라고 손짓하며 자리를 이탈해 계단에 앉아 연신 촬영을 했다. 볼 권리가 아니라 촬영할 권리에 대한 항변이었구나. 그 관객, 끝끝내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나를 불러 세워 “주최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마스크 쓰고 앞만 보고 거리두기 하는 극장은 방역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에 “팝콘 없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봐요?” 했던 이의 대꾸가 생각난다. 멀티플렉스에 최적화된 블록버스터 콘텐츠는 캬라멜 팝콘의 당도까지 가미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체험인지도 모른다. <테넷>을 너무 보고 싶은데 극장을 못 가 자동차 극장에서 봤다는 친구의 경험담과, 올해의 화제작들이 애초 계획한 극장 개봉을 접고 OTT 플랫폼을 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차츰 변화하는 시간에 적응 중이다.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했던 작년 초 전도연 배우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무대 인사를 하면서,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의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순간이 기억난다. 자신의 영화를 위험을 무릅쓰고 보러 와준 관객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한 마음, 공들여 찍은 영화를 앞에 두고도 극장에 오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겹겹의 복잡한 마음들이 뭉쳐진 눈물이었으리라. 다양한 작품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코로나 시대의 극장 풍경을 무대에서 경험하고 있는 나도 요즘은 자주 울컥한다.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이 자리에 와서 영화를 보고 마스크 위로 내놓은 눈빛으로 감정을 전하는 관객들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 방역 단계가 격상될 때마다 언제나 문화 콘텐츠의 소비는 가장 하위로 밀려났다. “영화 안 본다고 죽나”라는 말은 어쩌면 너무 맞는 말이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쉽게 볼 수 없는 시간이 지속되면서 솔직히 마음의 수명은 조금씩 단축된다. 나처럼 매 주 신작을 기다리고 품평하고 인터뷰를 하던 게 업인 사람은 일상의 루틴이 깨지는 걸 이렇게 경험한다. 코로나의 악화로 이만큼의 ‘허락’마저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행사, KF94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숨이 막혀 가끔 턱턱 발음이 막히고, 그 사이 라텍스 장갑에는 땀이 차지만, 행사 후 우리의 생명줄인 보호복을 벗으면서 생각한다. 우리 모두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더 이상 일상이 되지 않는 것도 지극히 현실이라는 걸. 이제는 체감하고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바람은 하나다. 이 책이 출간될 때쯤이면, 부디 코로나가 종식되고 이 페이지에 써내려 간 이 모든 이야기가 한때 극장가의 풍경을 통과했던 한 행사 진행자의 증언이 되길 바란다. 




   <계속>




    이화정 영화기자

    前 「씨네21」 기자 

    前 「필름2.0」 기자 

    前 「무비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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