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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건조 Nov 02. 2021

<앙케이트 4>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든 배우

『어쩌다 영화』멤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성철 영화기자

   주성치. 백수 생활을 딱 1년 정도 한 적 있다.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루저의 제왕 주성치의 영화를 비디오숍에서 세 편 정도 빌려 오면, 웃겨서 데굴데굴 구르느라 그날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보고, 지겹도록 되돌려 보다 보면 저멀리 해가 떠올랐다.




   이화정 영화기자

   그런 눈빛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눈이 먼저 걸어 와 말을 걸고,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 잔상을 남기고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한마디 대사 없이도 모든 감정과 스토리와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 세상 단 하나뿐인 양조위 눈빛 감옥에 종신형!




   김미연 PD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위 ‘남자 때문에 밤을 설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외계에서 지구로 떨어진 불쌍한 남자. 낮에는 어리바리 코스프레를 하지만 밤에는 망토를 입고 세상을 구하는 남자. 마지막에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4만 킬로미터나 된다는 지구의 둘레를 거꾸로 돌아 시간을 역행시킨 초초초초초능력자... 흙... 불쌍하지만 잘생긴 그 남자.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실명보다는 ‘클라크 켄트’로 나에게 기억되는 배우이다. 

   놀라운 점은 마지막에 로이스가 죽고 클라크가 울부짖으며 지구를 거꾸로 돌기 시작할 때 너무 심하게 울고불고한 나머지 <슈퍼맨>을 새드엔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첫날 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밤새 울어서 못 잤고 둘째 날에는 “슈퍼맨 죽은 거 아니야~”라는 고급 정보를 언니에게 듣고 미국에 살고 있는 ‘클라크 씨’를 만나러 갈 계획을 짜느라 밤을 새웠다. 항공료와 할리우드 주변 일주일 치 숙박비까지 꼼꼼히 계산하며 그를 만나러 가는데 돈이 얼마나 들 것이냐를 심도 있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ENFP가 그러하듯 일주일 만에 그를 잊었다. (ㅎ...) 2004년에 그가 죽었을 때도 왜인지 몹시 서운했다. 그가 살았던 기적적인 인생에 마지막까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도훈 영화기자

   나는 팬심이 희박한 유형의 인간이다. 덕후의 유전자가 별로 없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작가주의’ 관점에서 모두 좋아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나는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가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에일리언 커버넌트>가 믿을 수 없는 졸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거장의 영화에 별점 하나를 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배우는? 배우는 좀 다른 문제다. 영화를 선택하는 감식안이 처절할 정도로 떨어져서 졸작에 졸작이 이어지는 배우라고 해도 그 졸작들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낼 줄 안다. 그게 좋은 배우다. 물론 나는 배우에 대한 팬심도 좀 떨어지는 인간형이기는 한데(도대체 영화기자는 어떻게 해내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열광했던 배우는 역시 줄리아 로버츠였던 것 같다. 

   줄리아 로버츠를 나는 종종 ‘최후의 클래식 배우’라고 부른다. 그는 대중과 한 발짝 떨어진, 그래서 ‘스타의 신비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배우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없던 시절 스타덤에 오른 로버츠는 그저 영화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을 불러 모으던 거의 마지막 스타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레타 가르보가 첫 유성영화 <크리스티나 여왕>(1933)에 출연했을 때 홍보 문구는 “그레타가 말을 한다”였다. 줄리아 로버츠가 <메리 라일리>(1996)에 출연했을 때 홍보 문구는 “줄리아가 나온다”였다. 세상은 바뀌었다. 지금 스타들은 지나칠 정도로 친숙하게 군다. 소셜미디어 계정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매일 입는 착장을 올린다. 모두가 슈퍼히어로 쫄쫄이를 입고 싶어 한다. 특정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이 몰려가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로맨틱 코미디는 넷플릭스에만 남은 고고한 장르가 됐다. 나는 지금도 종종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의 마지막 장면을 본다. 특유의 찢어질 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추는 줄리아 로버츠를 본다. 그리고 고전적인 스타 시스템이 붕괴한 시대를 애도한다. 맞다. 이게 다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임청하. 무협영화를 진짜 많이 봤다. 그중 나를 잠 못 이루게 했던 배우는 딱 한 명 임청하(린칭씨아)뿐이었다. 내 마음속 영원한 똥퐝부빠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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