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오네오 Jun 14. 2024

애가 왜 나한테 오겠니!

무성애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바람을 피울 수 있을까?


갑자기 뭔가에 꽂혀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을 너무 보고 싶은데 이 나쁜 놈의 머리가 제목을 생각해내질 못해서 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를 (드라마 제목 생각해 낸 것만으로도 용하지) 1화부터 정주행 하다 문득 이 책을 소개한 드라마를 알게 된 다음 카페(맘카폐지 뭐...)서 찾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드라마 5화가 끝나고 나서야 한다.


점점 나빠지는 이 머리를 어찌할꼬...

굳이 변명을 하자면 소설 제목에 숫자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 리 없다. 내가 숫자에 많이 약해 수 관련 사고를 많이 친다 원래. 이삿날을 잘못 기억한다던가  시간을 잘못  기록한다던가.

18호실(이건 고등학교 때 나빠진 남학생들 모아놨던 기숙사 호실이고... 춘호야 잘있니?) 17호실이었던가? 정신없이 찾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겸사겸사 소설 제목 찾자고 드라마 정주행을 기안 올린 IEP도 싸들고 와서 봐야 하고, 다음 주 모임 발표 준비도 해야 하는 이 바쁜 와중에 시작한다. 쓰다 보니 드라마나 소설이 보고 싶어 진 이유가 꽤나 충분하네. 회피반응... 시험 기간 앞두고 그렇게 폰으로 체스를 해대는 아들 녀석이 못마땅하더니... 쯔즛...



이렇게 매력 넘치는 나...

마음먹으면 바람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문득 들었다. 아마 '19호실로 가다' 소설에 나오는 외도에 대한 서사때문이었을거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수잔은 아이들마저 학교로 간 낮시간에서 조차도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에 공포심을 느껴 자기만의 공간인 허름한 여관방을 빌려 온전한 자유를 얻는다. 그게 바로 19호실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남편에게 들키고 나서, 그 여관방이 필요했던 이유를 밝힐 수가 없어 차라리 외도했다는 핑계를 댄다. 외도를 위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했다는 거짓말을 하서는 지금부터라도 외도를 해야 하나 마음먹은 수잔은 한없이 귀찮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침잠한다.


이 대목에도 매우 엉뚱하게도

40대 여자가

니 그렇게 일반적으로 까진 가지 말고,

지금 내가 남친을 만들겠다 마음먹는다면 가능하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좀 많이 어렵지 않겠나? 싶다. 이유는


눈이 높아도 너무 높아!


얼마 전 고등 동창끼리 모여 열일곱 그때 그 시절 이야기하던 중 고딩의 연애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발달과업이 아니고, 그냥 학교 상위 1퍼 예쁜 애들과 잘난 애들의 전유물 같은 거였단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렇지.. 열일곱 살 애들이 결혼적령기처럼 보편적으로 연애를 하진 않지... 말하자면 그때의 이성교제는 학교 퀸카 혹은 공식 여신이 일진짱이랑 만나서는 학년 공식 커플이 되고 주목받는 인싸가 되는 그런 메커니즘인 거 아니었나? 아닌가 요즘 10대들은 보편적으로 이성교제를 하나?

여하튼

문득 그때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꼭 열일곱에 이성교제를 해보자는 목적으로 남친을 찾았다면 할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나의 질문에 열일곱에 만나 근 30년을 알고 지내는 촌철살인 날리길 꺼리지 않는 멋진 내 친구들의 대답은...


니가? 아무나? 니 좋아하는 남자애랑?


이라 외치며 콧웃음을 날려주신다. 돌리지 않고 말해 친구들 보기에도 나는 눈이 높았고 내가 괜찮다 생각했던 이성이 널 좋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단 말이다. 그래 그랬지. 그땐 그 나이땐 원래 안 만나면 안 만났지 나 좋다는 남자애가(있지도 않았지만) 막 그리 고마워서 감격하고 설레던 시절은 아니고. 연애가 아니라 동경이 더 자연스럽고 편했던 시절이었다.

인기는 없었으나 콧대는 높았던 나의 열일곱...


근데 지금은?

슬프게도 그때 쟤는 아니다 싶은 애들은 20년이 다 뭐냐 거즌 3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역시나 아니었다 싶고, 더욱더 슬프게도 30년 전, 참으로 풋풋해서 여자 기숙사 옥상에서 밤잠 설치며 칭찬해 대던 남자애들도 30년 후 지금을 내 눈으로 보니 아니긴 마찬가지다 싶은 생각이 드는, 열일곱 살 때의 나보다 더 높아진 눈을 가져버린 내가... 어찌 남자를 만난단 말인가?(사람 안 변하는 거지)


내가 어리고 예쁜 시절 안 괜찮았던 이성은 지금도 여전히 확고히 아니고, 그때 괜찮다 싶던 이성도 이제 보니 영 아니다 싶으면 이제 남은 건...

어리고 예쁜 남자밖에 없는데(그러지 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 귓가로 선재야 선재야 선잰가? 선재지!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 어리고 예쁜 남자의 현재진행형 대명사. 우리 선재)


솔직히 이 문제는 나보다 더 늙었어도 나보다 팽팽하고 예쁘고 심지어 재력까지 확실히 갖추신 우리 완선이 언니가 분명히 말해주셨다.


언니한텐 갈 것 같아요! 사랑해요. 완선 언니



애가 왜 나한테 오겠니?


완선 언니도 하고 있는 자기 객관화를 제가 못해선 안되지.

이러니 어찌 남친이 생기겠는가? 완선언니한테도  안 가는 남자가 전혀 절대 나한테 올리가 없는데...


그러고 보면 세상에 현실적으로 이성애를 즐기는 이성애자가 얼마나 될까 싶은 슬픈 마음이 든다. 소설 찾겠다고 들여다보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사람을 이성애자, 동성애자, 그리고 무성애자로 구분하던데 이미 현실연애 기능이 제로에 가깝고, 남자를 사랑해 볼 마음이 상실된 상태, 그렇다 보니 연애가 판타지 영역으로(상수리 나무 아래 '리프탄' 정도는 되어야 마음이 동하는)만 가능한 사람을 과연 이성애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엄밀히 말하면 이 경우 무성애자에 더 가까운 게 아닌지...


갑옷입고 마물잡는 내 이상형 리프탄 칼립스


나처럼 40대 후반부터 연애를 판타지 영역으로 놓아두신 분들, 도무지 여성성이 필요하지 않은데 여성의 의무를 다하고 있느라 자궁선근증, 자궁근종 따위의 질병에나 시달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에 찌증만 오만상 나 있는 분들과 함께 이 속상한 맘을 달랠 길 없나 묻고 싶다. 그다지 '여자'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고(생물학적으로) '여자'로 살고 싶지도 않은데(사회학적으로) 퇴화되지 않는 이 '여자'의 임무를 다하느라 머릿속에 분노가 가득한 분들 다들 어떻게 지내시나요?




혹시 위로까지는 안 되겠지만 깊은 성찰을 원한다면 조심스레 '19호실로 가다 ' 추천합니다. 근데 많이 울컥해지실 수 있어요.

사실 이 소설을 소개한 '이번 생은 첨이라'를 더 추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너 티야? 난 에프, 근데 좀 무서운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