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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Feb 25. 2024

일본이 조금 좋아졌다

개방, 낭만, 성(性), 개성의 나라

개방의 나라
이날 내가 먹은 나가사키 짬뽕도, 어찌 보면 료마 덕분이다

 이번에 일본 규슈지역에 다녀왔다. 일본은 이래저래 한국과 닮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고, 서로 껄끄럽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여하튼 정말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다. 특히 90년대 생이라면 누구나 보고 자랐을 유년시절의 추억인 애니메이션의 본고장이며, 성인이라면 누구나 보았을 AV산업의 최강국이다. 외에도 사무라이, 닌자, 스시, 라면 등 일본 하면 딱 떠오르는 시그니쳐들이  많은데 이는 수십만에 달하는 신을 믿는 민간신앙은 물론, 무엇보다 동양권에서 가장 빠르게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융합시켜 이뤄낸 업적에 그 이유가 있다.

 이를 가능케 한 인물 중 한 명인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근대사는 물론 일본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위인 중 한 명이다. 필자는 중학교 일본어시간에 선생님을 통해서 료마를 알게 되어 그와 관련된 드라마와 만화책을 접했다. 료마는 분명 실존인물 이기는 하나, 에도 막부의 공식 문서에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는 인물이기에 그의 행적은 물론 창작물 역시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가 이뤄낸 업적이나 행적들은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었고 일본이란 국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신칸센을 타고 나가사키에 도착해 가파른 계단을 걸어올라 도착한 전망대.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의 동상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순간은 이 여행에 있어 정말 가슴 뿌듯한 순간 중 하나였다.




낭만의 나라
금방이라도 가마할아범이 나올 것 같다

 일본은 낭만이 있는 나라다. 이유야 물론 다양하겠지만, 90년대 생들에게는 슬램덩크나 더파이팅 같은 애니메이션 때문에 특히 일본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가득하다. 일본 특유의 학교 동아리 문화, 만화 같은 골목길, 애니메이션에 거의 무조건 등장하는 노을 진 강둑 등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넘쳐난다.

 특히 필자는 [더 파이팅]에서 일보가 로드웍을 하고, 웹툰 [더 복서]에서 유토가 로드웍을 하고(복싱 만화하면 왜인지 무조건 이곳을 로드웍 한다), [탑블레이드]에서 맥스가 처음 등장하는 등 여하튼 일본 관련 창작매체에서 거의 99% 배경으로 나오는 그 강둑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나 역시 복서처럼 그곳을 한 번 뛰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강둑은 지진이 많은 일본 특성상 해일이나 범람을 막기 위해 거의 일본 전역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아는데, 규슈가 다른 지방에 비해 그런 피해가 적은 것인지 아쉽게도 내가 묵은 숙소나 여행지 근방에서는 그 강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의 특유의 낭만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다. 후쿠오카의 신사에서, 나가사키의 골목길에서, 벳푸의 온천에서, 필자는 분명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꼈다. 신사에서 참배를 하는 무녀에게서(하카타 비진(미인)은 진짜였다. 아니, 필자의 눈에 일본 여성 대부분이 아름다웠다), 만화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주택들에서, 온센(온천)의 녹슨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연기 속에서.  

 낭만은 분명 구시대적이고 느리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일본은 그것을 현대와 어울러 잘 간직하고 있었다.  




성(性)의 나라
후쿠오카 밤문화의 거리 나카스

 다양한 신이 즐비한 민간신앙과 그에 따른 수많은 신사 및 각종 문화 때문인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은 확실히 특이한 나라다. 특히 성 산업 부분에서 그러하다. 이는 일본의 습한 기후와 온천문화에서 유래된 것은 물론, 잦은 정복전쟁으로 인해 여성을 성욕구 해소 용도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나쁜 짓 참 많이 한 나라 중에 하나가 일본이다. 그래서 일본의 문화 자체는 좋아하지만, 개인적, 정서적으로는 참 싫은 나라다).

 후쿠오카의 나카스란 지역에 가면, 그 작은 섬안에 수많은 술집과 풍속업점들이 즐비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걸스바'다. 삽입된 사진의 아랫부분에 있는 여성들처럼 걸스바 홍보를 위해 '몇 분에 얼마'라는 간판을 들고 서있는 이쁜 옷차림의 여성들이 나카스 길거리에 쭉 서있다. 걸스바는 술집에 들어가서 얼마를 지불하면 몇 분 동안 그곳 직원 여성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나름 건전한 밤문화이다(물론 거기서 돈을 더 지불해서 2차를 가는 문제까지는 잘 모르겠다). 재밌는 점은 이 걸스바의 테마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머슬 걸스바, 메이드 걸스바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게 다양한 테마의 걸스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걸스바뿐만 아니라, 삽입된 사진의 간판처럼 남자 직원이 있는 호빠도 많이 있다. 물론 soap land라고 해서 여성 직원이 온몸을 사용하여 비누칠을 해주며 성관계까지 해주는 풍속업도 있다(약 1시간에 2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무료안내소'라고, 무료로 걸스바나 soap land를 고객의 취향에 맞게 소개해주는 안내소도 있다는 점이다.




개성의 나라
soap land

 이렇게 신기한 밤문화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이 성매매를 부분합법으로 하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타쿠가 사회의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오타쿠 문화가 존재하고 인정받듯이 일본은 성 산업에도 개성을 존중해 준다. 항상 유행을 따라가고 남들 하는 거 다 해야 하는 한국문화와 다르게, 일본의 문화는 옷차림부터가 다양하고 그만큼 본인에게 맞는 개성이 살아있다. 예능도 그렇다. 유명인들을 띄워주기 위해 프로그램이 형성되고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괜히 멋쩍은 웃음만 유발하는 '요즘' 한국의 고리타분한 예능과 달리, 일본의 예능은 진짜 개그맨들이 나와서 웃겨주고 기발하고 미친놈 같은 다양한 행태를 보여준다. 승용차는 또 어떤가? 경차를 타면 무시 아닌 무시를 하며 차는 곧 계급이라며 꼭 준중형을 고집하는 사회풍조를 지닌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인들은 도로의 실정에 맞게(우리나라 역시 도로나 골목을 생각해 봤을 때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아의 레이와 같은 경차를 사용한다.

 남들 하니까 나도 해야 하고, 이거 안 하면 남한테 뒤처지는 것 같고, 다수와 다르면 이상한 인간이나 아싸로 취급해 버리는 눈치문화와 유행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타인의 개성을 존중할 줄 알고 스스로의 개성을 사랑할 줄 아는 일본인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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