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 복싱
숨차는 실기. 구술시험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경북 영주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시험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건물 처마밑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순번을 기다렸다. 챙겨 온 스포츠 양말과 복싱유니폼(복장 역시 시험의 일부인지라, 복싱에 걸맞은 유니폼을 착용하는 게 좋다는 혹자의 조언을 따랐다)을 꺼내 입고 간단하게 줄넘기부터 시작했다. 대기 시간이 거의 2시간 남짓했는데, 이는 이번 시험이 작년 그리고 재작년과 달리 실기평가에 줄넘기와 미트 치기까지 포함된데 있었다(할 게 더 늘어난 만큼 체력관리가 더욱 요구되는 까다로운 시험이었다).
앞으로 내 차례까지 두 사람이 남은 시점, 장소도 장소(대한복싱훈련장. 꽤 컸다)이고, 추가된 실기평가에, 3번째 시험이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고 먼저 줄넘기를 시작했다. 아뿔싸, 가져온 줄넘기가 자꾸 꼬이는 바람에 시험관이 시키는 연결동작을 하던 중 2~3번 줄에 걸리는 실수를 범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숙련도는 제대로 보였으니 패스. 다음으로 기본 스탭부터 쉐도우를 시작했다. 다행히 머릿속에 계속 그려놓고 있던 기술들을 까먹지 않고 보여주었고, 작년 시험에 저평가받았던 연결동작의 부재를 메꿀 수 있었다. 다음으로 미트 치기와 미트 받기 순서였는데, 이때부터 숨이 차기 시작했다(늘어난 실기평가와 긴장한 탓이었다). 숨 고를 틈 없이 바로 미트 치기를 했고 뒤이어 숨을 헐떡이며 미트 받기를 했다. 미트를 치고받는 것은 서로가 타이밍과 힘의 합이 맞을 때 좋은 모습이 나오는 데 아무래도 실기운영요원과 나는 서로 초면이다 보니(숨도 제법 찼던 터라)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샌드백 치기. 샌드백.. 실기시험장에 들어오면서부터 느낀 것이었는데, 샌드백이 너무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봐도 질 좋은 가죽(때깔부터가 달랐다), 길쭉하고 탄탄해 보이는 외관, 한눈에 봐도 무겁고 탄력 있어 보이는 샌드백이었다. 아무렴 첫 잽을 치자마자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촥 감기는 주먹 끝맛과 샌드백의 무게감.. 훌륭했다. 솔직히 샌드백 치기는 '내가 언제 이런 곳에서 이런 샌드백을 쳐보겠나'하는 생각에 주먹맛을 꽤 즐기면서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 나오야가 샌드백에 연타 잽을 멋들어지게 치던 것이 생각나 잽을 3~4번 날려본 뒤(진짜 잽만 쳐봐도 좋은 샌드백은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체감했다. 역시 선수용은 다르다), 작년 시험에서 저평가받았던 스텝의 부재를 메꾸고자 치고 빠지는 연타 위주로 실기시험을 풀어나갔다.
실기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구술시험장으로 향했다. 내가 거의 막바지인지라 대기인원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숨 좀 돌리고 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는 거였는데 너무 급하게 시험장으로 들어가 숨이 찬 채로 구술시험을 치렀던 것이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답이 간단한 문제들은 확실히 답을 했는데, 주관적인 문제들에 경우 숨도 차고 긴장된 탓에 약간 쉰 목소리로 말에 강세를 주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대답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시험위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대답했고 말을 조리 있고 또박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내가 대답이 끝났음에도 심사위원이 나를 2초 정도 빤히 쳐다보았는데 그 표정이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게 다 대답한 거야?' '주저리주저리 뭐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같은 표정이었다 쉣.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점은, 내가 준비하고 공부했던 내용이 전부 구술시험문제로 출제되었던 점이다. 해서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점이 플러스라면 플러스 요인이었다. 여하튼 구술시험을 불편한 마음으로 치른 탓에 기분이 딱 우중충한 하늘과 비슷했다. 하지만 뭐 어찌 되었든 시험은 끝났고 후련착잡했다.
이번에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저번처럼 김칫국은 안 마시려고 한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고, 붙으면 붙는 거다. 만일 떨어진다면.. 그건 내년에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내년에 다시 도전할 힘이 있다면 다시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