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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Oct 24. 2024

원투 : 복싱의 기초이자 모든 것

일본의 복싱


일본의 복싱
나카타니 준토의 위"아래" 적중 / 사진 출처 : Ring Magazine 

 일본은 전반적으로 스포츠에 진심인 국가다. 비단 전문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체육부터, 교내 스포츠동아리까지 교육 체계와 환경이 굉장히 잘 잡혀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자연스레 PC방을 가듯이, 영국 학생들이 자연스레 축구를 하듯이, 일본학생들은 자연스레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고 그것이 일상이 된다(한국은 게임강국이고, 영국은 축구강국이고, 일본은 다양한 스포츠의 강국인 이유가 여기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일본학생이라면 누구나 [슬램덩크]와 같은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꼭 스포츠가 아니라도 동아리 활동 자체가 잘 되어있어서 원하는 분야의 낭만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넓다). 학생 때부터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다 보니 사회분위기 역시 누구나 쉽게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고 그것을 즐기는 성격을 띤다. 

 그러다 보니 사나이들의 로망인 강함, 강함의 근거인 격투, 격투의 꽃이자 낭만이라 할 수 있는 복싱이란 스포츠가 일본에서 빛이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꾸준히 기반을 다져온 일본 복싱과 달리, 헝그리 정신만으로 한 때 빛을 발했던 한국 복싱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한강의 기적, 급작스런 경제성장, 헝그리 정신, 냄비근성, 문화지체현상은 모두 일맥상통한다). 세계 복싱의 트렌드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한국복싱은 뭔가 정체된 채로 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고, 그것은 몇 십 년째 같은 결과로 보여지는 바이다. 반면 일본의 복싱은 자국의 스타일에 타국가 복싱의 장점과 세계의 트렌드를 잘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후에 얘기하겠지만, 사실상 일본 복싱은 기본기를 맥스로 찍는 것을 중시하기에 업계 상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는 복싱을 추구한다). 이것은 보수적이고 외골수적인 조선과 달리 이른 문호 개방으로 서양의 문물을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나라안에 자연스레 융화시켰던 일본이란 나라의 역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일본은 지금도 꾸준히 세계챔피언들을 배출하고 있다. 



  

 

원투
나스카와 텐신 / 사진 출처 : Traze Boxing

 일본에 뛰어난 복서들이야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기본기 복싱을 참 잘 보여주는 선수인 나오야, 텐신, 준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 이들의 특징은 기본기를 맥스로 찍었으며, 예쁘면서 강력한 교과서 복싱을 구사하고, 그렇기에 "원투"를 기가 맥히게 친다. 복싱을 배워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원투는 콤비네이션의 가장 기초가 되는 동작이며 빠르고 간결하게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누구나 원투를 알지만, 누구도 원투를 제대로 치지 못한다. 동작이야 간단하지만 상대방에게 굉장히 읽히기 쉬울 수 있는 기술이며, 그렇기에 상당히 정교하고 깔끔하고 노련하게 사용해야 실속 있는 단타이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봐도 여태껏 스파링을 하면서 부담 없이 원투를 친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원투로 상대방을 맞출 수 있겠다는 확신과 타이밍이 잘 생기지도 않았을뿐더러, 원투 동작 중이나 후에 되려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모두 필자의 기량 탓이지만). 여하튼 원투는 인스탭, 타이밍, 체중이동 등 타격의 기본을 농축해 놓은 액기스와 같다. 해서 '원투를 마스터한다는 것 = 인스탭, 타이밍, 체중이동 마스터'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원투만 잘 닦아놓아도 다른 것들은 자연스레 잘 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연습할 때 원투만큼 단순하고, 재미없고, 타격감 없는 동작도 없는 건 사실이다.  

이노우에 나오야의 원투 / 사진 출처 : 월간 ANDA - 뉴스핌

 다시 일본 복싱 얘기로 돌아와서 나오야, 텐신, 준토 모두 원투라는 단타로 KO 또는 다운시킨 상대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원투는 우리가 아는 그 '잽+스트레이트'도 있지만, 원어퍼, 위아래, 아래위, 원크로스 등 말 그대로 하나둘 타이밍으로 타격하는 단타 동작들도 포함된다(물론 '잽+스트레이트=원투'가 필자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 원투이자 복싱의 알파이자 오메가와 같은 동작이다). 이들이 원투로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이유는 펀치력, 타이밍, 스피드 모든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스탭' 기술이 번개 같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입장인 관객의 눈에도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빠른데, 상대선수의 입장에서는 정말 번개 같을 것이다. 일단 원투는 상체 준비동작 없이, 지면을 밀어내며 뛰어들어가는 스탭에서 시작하기에 인스탭이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이것을 예리하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내 원투에 그대로 노출되느냐 아니면 역으로 내가 카운터에 당하느냐가 달려있다. 

 내가 일본 복싱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은 멋있는 동작이나 기교 또는 현란한 풋워크 없이, 기본기(스탭, 원투)를 예리하고 정교하게 갈고닦아 그것으로 승부를 보기 때문에 관찰자 입장에서 꽤나 이해가능한 복싱을 구사한다(물론 이해된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기초과학의 강국이자 기본기복싱의 강국인 일본, 원투로 상대를 조지겠다는 그들의 어떠한 일념이 그들을 세계의 정상에 올려놓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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