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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Jan 03. 2025

대한의 독립과 안중근 의거의 진실

<하얼빈>


대한의 독립은 미국(연합국)이 이뤄냈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김구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독립운동가들과 그 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투쟁했다. 그들의 각오와 용기는 평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옹골지고 강인한 것이었다. 필자는 몇 년 전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고문실과 사형장, 시체운송구의 모습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렵고 끔찍했으며 그곳에서 온갖 고초와 곤혹을 치렀을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을사조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있어온 독립운동가들의 수많은 항쟁과 게릴라전은 일본제국에게 있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와 러시아를 잡고, 세계 2차 대전의 주축이었을 정도로 강인했던 일본제국에게 있어 대한독립운동가들의 항거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다. 이들의 업적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나(되려 존경한다), 이들의 희생과 항쟁이 대한의 독립을 이뤄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대한의 독립은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일본의 패망이 그 원인이었으며, 지리적 요충지인 한반도를 공산세력으로부터 지켜내어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확립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이뤄낸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 <하얼빈>은 마지막 장면을 끝으로 독립운동가들은 끊임없이 싸워냈고, 한일병합 36년 만에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냈다는 식으로 자막을 띄운다. 영화가 안중근이라는 실제 인물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실제 사건을 다뤄내며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그들의 업적을 높이사고자하는 취지는 알겠으나, 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의 힘으로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냈다는 식의 발언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이다.  

 여지껏 한국사 교과서나 한국사 선생, 국가에서 보여주는 영상매체들을 통해 배우고 익혀온 한국의 역사는 상당 부분 왜곡된 부분이 많으며 국뽕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 온 것들이 많았다. 최근 들어 유튜브나 커뮤니티 같은 개인의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는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감추어졌던 진정한 역사와 더불어 입체적 시각으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한 이유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많은 이들이 안중근을 반일의 아이콘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안중근은 일본과 천황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는 동양평화에 대한 철학이 있었던 사람이었고, 조선과 일본과 중국이 손 잡고 평화롭게 잘 지내기를 바랐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통감으로 나타난 이토라는 인물이 조선을 서서히 잡아먹으며 동양의 평화를 깨트리는 액션을 취하자 그를 저격해 죽인 것이다. 즉, 그는 이토가 싫었을 뿐 일제가 싫은 인물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앞당기기는커녕 한일병합을 좀 더 거칠게 앞당기는 효과를 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토라는 인물은 거칠게 조선을 흡수하려던 정한론자들과 달리 부드럽게 조선을 흡수하려던 인물이었으며, 실제로 조선이라는 나라에 있어 정치, 경제, 교육 등의 시스템 초석을 마련하며 유의미한 발전을 이뤄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물론 이토 역시 식민지화를 원했던 인물임은 다름없었다).


 안중근이 이토를 싫어했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의 삶이 어땠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은 조선의 특권층이자 계급층이었으며 대한제국의 고종을 따르는 인물이었다. 즉 봉건체제 속에서 잘 나가는 양반집 자제였기에, 그는 농노들이 일으킨 동학농민운동 당시에 반란군들을 때려잡던 민병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이토가 통감이 되어 제시하고 꾸리기 시작한 계급사회 파괴와 왕의 존재에 대한 부정 및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식의 주장은 조선의 특권층이자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기존 체제에 반하는 내용이었기에, 이토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특히나 앞서 말했듯이 그는 동양평화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 고종폐하와 천황폐하에 대한 충의로 가득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안중근에 눈에 이토는 고종을 자기 입맛대로 가지고 놀지 않나, 메이지 유신 당시 일왕의 존폐를 앞두고 왕을 없애려는 시도를 했다는 소문이 돌지 않나,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고종과 천황에 대한 충의를 깸과 동시에 조선을 자연스레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 병합을 꿈꾸던 이토를, 안중근은 죽임으로 응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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