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초

돈오점수

by 연패맨


얼마나 전에 복싱을 하면 할수록 기초로 돌아와야 함을 느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복싱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생각한다(복싱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깊게 들어간다면 누구나 이 사실을 배울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던 우리가 알던 기초지식이 알고 보면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정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초이고 너무 당연한 지식이기에 무시한다. 그래서 그것을 정말로 마음깊이 이해하고 그런 상태에서 실천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가령 초등학교 도덕시간에나 배울법한 이야기를 우리는 머리로는 백이면 백이 안다. 그러나 정말로 왜 그런지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의 넓이와 그릇이 달라진다. 태도가 달라진다. 물론 가슴으로 이해해도 세상만사 다양한 상황과 환경과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그 다양한 순간순간마다 새롭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마음) 수행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정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수행을 '돈오점수'라고 이른다. '먼저 깨닫고(돈오) 그 깨달음에 입각해 서서히 익혀 간다(점수)'는 말이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앞서서'를 외치는 사회 속에서 서서히 익혀간다는 것(점수)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누가 봐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바보 같은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깨닫고 느끼면(돈오) 이 행동이 뒤쳐짐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3년이 넘도록 복싱업에 몸을 담았는데 이제야 기초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텝. 잽. 원투부터 다시 익혀나가고 있는 나의 모습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로 법문을 들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먼저 깨닫기(돈오)도 전에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점수)는 것이다. 즉 삶의 기초(왜, 어떻게, 무엇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가 없이 일단 태어났으니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기초가 없다 보니) 우리 대부분은 사회가 심어놓은 기준들에 이끌려 살아간다. 물론 삶의 기초를 깨달았다고 해도 너무나 험하고 난잡하고 예상치 못한 가지각색의 세상 일들 앞에서 우리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반드시 흔들리게 되어있다. 그러나 기초를 깨달았다면 흔들릴지언정 꺼지는 않는다. 삶의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텝, 잽, 원투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반드시 복싱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깨닫고 또 행하고 있다면 남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복싱을 접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내가 복싱과 삶의 기초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복싱과 삶에 접하고 있었기 때문은 물론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우연 또는 필연적으로 학습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그것이 일이든, 취미든, 삶이든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어가는 인연이 된다면, 누구나 기초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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