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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l 04. 2024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징검다리가 아닌가 싶다. 소년은 징검다리에서 소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징검다리에서는 소년이 소녀를 업고 건너기도 한다.


최근에 다시 읽은 백우암의 단편소설 <청별>에서는 소년이 짝사랑하는 소녀가 징검다리에서 살짝 스쳐 지나가는데 그 여운이 평생을 간다. 소년은 결혼도 하지 않고 그 첫 느낌을 되새기며 고목처럼 늙어간다. 소녀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버려도 소년은 소녀를 기다린다. 징검다리의 여운이다.


나는 어린 시절 강을 건너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날마다 하루 번씩 신발을 벗고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로 강을 건너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징검다리를 놓기에는 강물 깊이가 너무 깊었다. 가장 깊은 곳은 허벅지를 넘기도 했고 무릎을 넘는 것은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가물 때를 제외하고는 늘 그랬다. 겨울에는  바깥쪽에는 살얼음도 져서 짱~하고 발이 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렇게 깊지 않은 강이라면 돌 몇 개를 듬성듬성 놓아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신발과 양말을 벗지 않아도 강을 건널 수가 있다. 시골길을 가다가 징검다리가 있으면 왠지 정겹다. 강가에 놓인 돌을 밟으며 지나갔을 많은 발걸음들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다리보다 징검다리가 정겨운 이유는 무엇일까? 견고한 다리보다 조금은 위태롭고, 물깊이가 그냥 건너도 상관없는 강이지만 발을 물에 담그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이 아닐까? 그런 작지만 소중한 사랑과 관심이 담겨있는 게 바로 징검다리이다. 누군가 발을 강에 담그고 건너다가 일일이 신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 때문에 돌을 주어다가 징검다리를 놓았을 것이다. 처음 강을 건너던 사람의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징검다리 속에는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사람 중에도 그런 징검다리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 어려움이라는 게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없다. 얘기를 들으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자기 일처럼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징검다리 같은 사람이다. 친구와 친구 사이를 연결해 잘 지내게 해 놓고 자기는 살짝 빠진다.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자신이 선물 받은 물건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건네주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차지해야 할 보상이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사람도 "징검다리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자칭 '징검다리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경우는 거의 본의 아니게 그런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왜? 내가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무슨 부탁을 해오면 그것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끙끙댄다. 아니 부탁을 해오지 않더라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 가능하면 해결해주고 싶다. 해결할 능력이 안 되는 데도 그 문제로 고민을 한다.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의 이런 성품으로 인해 손해를 볼 때가 많다.


한 번은 평신도시절 셀식구 중에 '망상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가 있었다.  물론 그녀가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울교회 담임목사님이 자기 집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망상장애(색정적 질병)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병이었다.


그녀는 목사님이 은퇴하면 자기와 같이 살 거라면서 송우리에 있는 땅을 목사님 개인에게 기증한다고도 했고, 몇 백만 원 거액의 돈을 목사님 개인에게 드리기도 했다. 물론 청렴하신 목사님은 받지 않으셨고, 헌금으로 한 것도 액수가 너무 큰 것은 다 돌려주셨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시던 담임목사님은 그 일로 말년의 목회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였다. 전혀 사실무근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과 행동은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쉬쉬하며 둘이서만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사순절 기간에 그녀를 데리고 아침금식을 하면서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40일을 해도 조금 좋아지나 싶더니 다시 증세가 나와서 40일을 또 더 작정하고 함께 기도했다. 그러나 도로아미타불! 급기야는 담임목사님과 교구목사님도 알게 되었고, 근처 정신과에 가기까지 했다. 정신과 의사 왈, 하루에도 그런 사람이  20여 명은 찾아온다고 했다. 종교인 중에 존경할만한 종교지도자를 대상으로 그런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신부, 중, 목사가 그 대상이라고 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거의 스토커 수준), 직장상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평상시 선을 베푸는 것을 좋아했기에 누가 보아도 이상한 점은 별로 없었다. 길을 가다가 혼자 깔깔 웃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는 결국 신대원진학을 하면서 입학하자마자 다른 교회 중고등부 사역을 맡게 되어 셀리더를 놓게 되었고 그녀를 돌보는 일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담임목사님의 은퇴까지의 목회와 모교회를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 후에도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 사무장님과 교회목사님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기도한 대로 목사님의 은퇴와 새 목사님의 청빙과 위임식 등을 잘 마쳤고 교회는 든든하게 서갔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모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는 보상도 주셨다. 담임 목사님의 마지막 목회를 보고 새 목사님의 위임식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은퇴를 앞둔 담임목사님께서 금일봉으로 주신 신대원입학 축하장학금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하나님 사랑의 증표였다.


이런 걸 보고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망상장애를 앓던 그녀, 교회 사무장님과 교구목사님 정도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그것은 후에 소설을 쓸 때 소재로 삼을 예정이다. 징검다리 역할을 잘했다고 했는데 결국은 내가 한 일은 드러나지 않고 도리어 내게 불이익이 되어 돌아온 일들도 많다.


징검다리 위에서 얼핏 한 번 살을 스쳐 지나간 그 흔적 때문에 소년은 소녀와의 이별을 <청별>(푸른 이별)이라 부른다. 그 사랑과 이별을 누가 알까? 그러나 기억하고 있으리라. 사랑이기에,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도 자신이 놓은 징검다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과 관심이기에.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단지 강 위에 놓여있는 돌 몇 덩이로 볼 수 있지만, 돌을 놓은 사람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 징검다리가 자신의 수고와 애씀의 흔적임을, 그래서 누구나 쉽고 편안하고 정감 있게 그리고 운치 있게 강을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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