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학술지 동아연구 다음 호에 게재 확정된 이정우, 근간, "태국 MZ세대의 SNS 활용,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이 정치적 관심에 미치는 영향"의 집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2023년에 학술지 <동남아시아연구>에 게재한 "태국의 세대 정치: 세대의 차이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적으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내 논문이지만 분석의 결과가 하나 납득되지 않아서 말이다. 내가 제시한 가설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MZ세대 유권자는 사용하지 않는 다른 유권자에 비해 더 높은 정치적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태국의 세대 정치" 논문 102페이지). 아시아 바로미터 조사(이하 ABS) 데이터를 사용하였고 패널 데이터는 아니지만 2014년과 2018년에 조사된 자료를 함께 사용했다. 더 긴 기간의 분석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MZ세대 여부 이항변수와 인터넷 사용 변수 사이의 교차항을 넣어봤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즉, 인터넷을 사용하는 MZ세대라고 해서 정치적 관심이 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 형성 과정(data generation process)을 먼저 살펴봤다. 양적 연구 데이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갖추어져야 하는 요건은 많지만,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무작위 추출(random sampling)이 중요하다. 내가 보고자 하는 대상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면 부분을 추출해서 추정을 해야 한다. 그러한 추출은 임의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를 통해야 한다. 그래야 추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ABS 데이터의 경우에도 무작위 추출이라고 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사는 지역(북부, 북동부, 중부, 남부 등)의 배분이 잘 되었다.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추정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추정을 했는데도 기존의 연구와는 다르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MZ세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이 높지 않다니. 처음엔 놀라웠다. 정치학에서 데이터를 사용해서 분석을 해봤을 때 기존 연구와 다른 결과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 좋은 시작이 되기도 한다. 분석 모델을 더 나은 것으로 골라서 새로 분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다른 방법으로 변수를 측정할 수 있는 고민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러한 분석 결과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철저히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그랬다. 데이터에 이상도 없고 분석 모델에도 이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태국의 세대 정치" 논문은 가설이 더 많으니까, 가설 하나두 개로 가볍게 쓸 수 있는 이 논문을 먼저 투고하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 그 논문은 8월 동남아학회 논문과 연계해서 천천히 작성하자고 생각하고, 이 논문은 빠르게 적었다.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적어서 2023년 3월 27일에 투고를 했다. 그리고 첫 리뷰를 기다렸는데 심사위원들의 지적은 너무도 날카로웠다. 한 심사위원은 6장짜리 반박을 보내면서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는데, 가볍게 정리하자면 "태국에서 SNS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앉아서 양적 연구나 가볍게 타닥타닥 두들기는 연구자의 편협한 연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였다. 나머지 두 심사위원의 판정도 같았다. 그러나 수정할 수 없는 코멘트가 있었으니 바로 방법론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양적 연구같이 편협한 분석으로 어떻게 태국의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포착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머지 둘은 "수정 후 재심사"를 줘서 그래도 재심사의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재심사를 하더라도 방법론 자체에 대해서 불신을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태국인 친구들에게 인터뷰 요청도 하고 나름 부분적으로 질적 연구를 섞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들 현재의 태국 정국에 반대되는 논문에 게재 가를 줄 수는 없다며 최종적으로 2023년 7월 18일에 게재 불가 처분을 받아 들었다. 물론 어떠한 심사자들은 나의 노력에 좋은 평을 보내며 다시 수정 후 재심사를 권고했지만, 두 명이나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기에 우선 첫 도전은 그렇게 4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처음엔 이러한 과정을 두고 너무 화가 났다. 방법론이 다르면 어쩌라고, 내가 배운 것이 이런 방법론인데. 다르다고 해서 심사 자체를 이렇게 해버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이 논문은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8월 학회가 지났고, "태국의 세대 정치" 논문 작성부터 먼저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전제성 한국동남아학회장님과 당시 총무위원장이었던 김희숙 박사님, 518 기념재단의 지원으로 태국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 시위에 직접 참여하고 현재에도 정치 개혁 운동에 뛰어든 친구들을 보니, 정말 자신의 인생을 내놓고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 만나면서 일주일 좀 넘게 같이 지내고 정말 "태국의 상황에 반하는" 통계 분석을 자랑스럽게 내놓은 내가 좀 한심스러워졌다. 물론 데이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는 나도 좀 더 공부를 해보아야 알겠지만,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의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 연구가 누군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에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방해라도 되지 않기를 그렇게 바랐다. 그렇게 이 논문은 버려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말이었다.
그러다 12월 즈음이었다. 태국에서 돌아오고서 데이터셋의 질에 관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McMann과 그의 공저자들이 쓴 논문이었다. 제목은 "Assessing Data Quality: An Approach and An Application." 2022년에 나온 비교적 최신 논문이었는데 <Political Analysis>라고 꽤 저명한 저널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 논문에서는 측정의 문제도 중요하고 데이터의 출처를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어디서 그 데이터를 만들었느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ABS는 태국 데이터를 특정 기관을 통해 수집한다. 태국 현지의 정치학 전공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더라도 그들은 “왕립기관은 결국 정부 혹은 왕실을 기쁘게 만드는(make pleased) 것이 목적이어서 그곳에서 나온 데이터와 자료는 한 번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선 이것으로부터 나의 회의감이 시작되었다.
또 뒤늦게 접한 논문이 하나 있었는데 Kai Jager 교수가 2017년에 쓴 "The potential of online sampling for studying political activists around the world and across time"이라는 논문이었다. 그 논문의 요지는 면대면 설문(face-to-face survey)은 사람들을 피하게 만들고 응답률을 낮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ABS 데이터는 면대면 설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설문 자체를 꺼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ABS의 공식 문서에서는 응답률이 77%라고 답하지만 믿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Jager가 제안하는 방법은 인터넷 특히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응답자를 표집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물론 인터넷에서 표집을 하게 되면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편향적으로 추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젊은 사람들의 성향을 아는데에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ABS 데이터에 관해서 회의감을 넘어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찰나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이런 데이터를 이용해서 내 연구에서 보인 통계적 유의미성의 결여를 반박할 수 있는 논문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고를 했어도 현재 태국 젊은 친구들의 정치적 관심을 형성하는 것을 SNS를 통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쓴 논문의 발견 중 일부를 반박하면서 다른 설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논문 쓰기에 다시 착수했다. 2023년 12월 초였다.
그렇게 논문을 다시 쓰기 시작하고 다른 요인을 발견해야 했다. 생각했다. 태국에서 젊은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질까? 인터넷 사용이 관심을 높이지 않는다면 어떤 다른 요인이 작용할까? 이때 생각한 것이 경제적 불평등이었다. 태국은 불평등의 수준이 높다. 시위에 참여하고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아도 모두들 불평등으로 불만이 많은 상태에서 2020년 정당이 해산되고 길거리에 나서게 되었다는 증언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설을 단순히 "인터넷 사용이 정치적 관심을 높인다"기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면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다"라고 바꿨다.
이제까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삼중 교차항(three-way interaction)을 사용해야 했다. MZ세대이면서 경제적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 가지의 조건이 맞아야 했다. 그래서 이 분석을 위해 방법론에 능통한 박사들에게 많은 질문도 하고 토론을 정말 많이 했다. 이러한 연구와 분석이 나의 친구들에게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방해가 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저번 리젝 이후 저널을 한 번 옮겨서 심사를 받았는데, 2024년 1월 6일에 제출했는데 다시 "수정 후 재심사"를 받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재심사를 거칠 수 있어서. 이번에는 내 느낌에 정치학자 2명, 인류학자 1명이 심사에 응한 것 같았다. 정치학자 2명은 양적 방법론 분석 방법 자체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수정을 제안했지만, 이번에도 인류학자 1명이 방법론 자체에 비판을 많이 가했다.
이번엔 정말 저자세로 수정 설명서를 보냈다. 당신의 방법론적 비판에 공감하고 내가 배운 도둑질이 이런 것이라고,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 태국에 가서 인터뷰도 수행하고 이런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이렇게 적어서 보냈더니만 다음 2라운드에서는 "수정 후 게재" 판정을 내줬다. 그렇게 2024년 7월 29일에 와서 최종 게재 가 판정을 받았고 얼마 전에 최종 논문을 보냈다.
작년에 "태국의 세대 정치"를 쓰고는 방법론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시작되었다면, 이 논문을 쓰고는 태국에 정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적 방법론을 통해서 나의 친구들을 응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지만 동시에 태국의 전문가가 되려면 실제로 그곳에 다녀와야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또한, 학자로서 갖는 "중립성"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학자들이 어찌 앉아서 중립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만 분석하는 일로 만족할 것인가. 박사학위란 과연 무엇인가.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이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한 정치학자 김지윤 박사가 그랬다. "사실 정치학이라는 건 지나간 일을 가지고 생각을 하는 거거든." 이 말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어느 분야에 권위를 갖게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태국의 현실에 대해 진단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정의하는 일. 그 일 자체가 어떻게 중립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할 수 없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건방진 것이 어딨 는가. 그건 과신이고 오만이다. 나는 젊은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노력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니 그대로 나의 혼을 담고 움직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