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연구의 시작
이번 글은 동남아시아연구 학술지 제33권 4호에 수록된 이정우, 2023, "태국의 세대 정치: 세대의 차이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 논문의 저술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태국 연구의 시작
2022년에 해외 학술지 논문 게재를 확정하고 반 년이 좀 더 지난 시점이었을까? 또 불안함이 생겼다. 나는 1년마다 한 편씩 그래도 투고를 해야 불안함이 그래도 좀 없는 사람인데 또 다시 새로운 해가 다가온다니 싶었다. 그리고 석사를 권위주의로 받았으니, 그 주제로 논문을 써야겠는데 자신이 없었다. 해마다 논문을 서너편씩 쏟아내는 선배 박사들과 교수들이 대단해보였고 나는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나만의 컨텐츠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권위주의"라는 일반적인 주제로는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고, 연구 질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만의 연구 주제가 있어야 할텐데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다 어느 날 지도교수가 술자리에서 나에게 태국 정치를 공부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태국 전문가가 아무도 없다며, 그리고 학생회장을 오래 했으니 태국의 학생 시위에 대해 분석해보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견이었다. 지도교수는 나보고 논문을 한 달간 일단 읽어보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읽고 공부해봤는데 관심이 생겼다. 학생 시위가 벌어지게 된 이유를 분석한 여러 논문들을 읽으면서 흥미가 생겼다. 학생 시위가 벌어지게 된 짧은 이유는 바로 어느 정당이 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2019년 총선에서 젊은 사람들의 인기를 힘입어 제3당으로 약진하게 된 정당이 있었다. 태국의 엘리트들은 그 정당의 등장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고, 헌법재판소는 이후 해당 정당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며 해산을 명령해버렸다.
이런 지점에서 궁금해진 지점은 "2019년 총선에서 젊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정당에 투표를 했을까?"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기존 정치 체제에 왜 불만이 생겼을까?"였다. 실제로 통계 분석 결과를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지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지 보고 섶었다. 바로 그 지점에 대해 논문 초안을 끄적거렸고 나의 연구 방법론이었던 통계 분석을 하기 위해 데이터부터 찾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수행된 설문 조사 자료는 없을까? 태국 대중에 대한 정치에 대한 설문 결과는 없을까? 선거 행태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 조사는 없을까 뒤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태국인 친구라고는 일본에서 만났던 한 명밖에 없었고 태국 정치에 대해 사람들에게 인터뷰라도 할 생각을 전혀 못했다. 내가 배웠던 방법은 어떤 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는가를 태국인들에게 묻지 않고 데이터부터 분석하는 것이었다.
2019년 총선에서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그 정당을 지지한다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데이터는 아니지만 다른 데이터를 활용해서 젊은 사람들이 기존 정치 체제에 만족이 떨어지는지를 분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은 논문 초안을 지도교수에게 보냈다. 지도교수도 괜찮게 본 것인지 별다른 코멘트는 하지 않더니 바로 2023년 8월 한국동남아학회 연례학술회의에서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지도교수가 구성한 패널에서 발표하게 되었고 그렇게 태국 연구의 길로 한 걸음 나가게 되었다.
논문 작업을 시작하다
그렇게 적은 초안을 제외하고도 논문 한 편을 더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게 이번 글에서 보이는 "태국의 세대 정치: 세대의 차이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 논문이었다. 태국에 대한 연구 제안을 2022년 12월 즈음해서 받았고 1월 정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 당시 살펴보았던 데이터베이스가 꽤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히 논문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표적인 데이터가 전세계 선거에 대한 Comparative Study of Electoral Systems(CSES)와 대만에서 나오는 Asian Barometer Survey(ABS)였다. 데이터들은 실제로 그 국가들에서 면대면 설문을 실행하였고 자료를 꽤 축적해뒀으니 연구에 이용할 가치가 충분했다. 이미 ABS 데이터의 경우, 한국외대 서경교 교수가 활용하여 태국에 관한 논문을 몇 편 게재하여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가진 현상은 바로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이었다. 태국 젊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날까? 정치적 관심은 정치적 참여를 이끄는 요인이다. 이런 정치적 관심에 미치는 영향부터 알게 된다면, 태국의 젊은 대중의 정치 참여 요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ABS 데이터는 설문자들에게 "정치에 얼만큼 관심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관심이 정말 많다," "관심이 조금 있다," "관심이 그닥 없다," "관심이 전혀 없다"라는 응답 중 하나를 받는다. 이것을 이용해 연구를 수행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기존 연구를 검토해보니 태국뿐만 아니라 정치학에서 정치적 관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정치적 대화였다. 주변 사람들과 정치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명제였다. 둘째는 인터넷의 사용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정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부에 대한 신뢰였다. 정치 체제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더욱 정책 입안에 관심이 많고, 따라서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수들의 효과를 한꺼번에 확인하면서 동시에 내 논문의 특수성을 확보해야 했다.
내 논문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바로 "시위 참여 경험"이었다. 시위 참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만 나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여러 이유로 시위 참여를 나설 수 있다. 그렇게 나서게 된 경험을 통해 정치적 관심이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변수를 넣어 태국의 대중에 시위 참여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고 논문을 일사천리로 작성했다. 2023년 9월에 동남아시아연구 학술지에 제출하였고, 2023년 11월 말에 수정후게재 판정을 받은 뒤에 투고를 완료할 수 있었다.
방법론에 대한 고민의 시작
2023년 12월이 되기 이전에 한 편을 투고했기 때문에 실적에 대한 개인적인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양적 방법론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것을 심사위원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전공이 정치학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태국을 가보지도 않고 태국 연구를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적어도 학생 시위자들을 직접 찾아보고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익명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들의 코멘트를 아래와 같이 보이고자 한다.
다만 한 가지 권고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원고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필자의 전공은 정치학일 것으로 판단되며, 주로 양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연구자로 보인다. 커다란 틀을 만들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장점인 학문이며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안에서 실제 작동하고 움직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미시적 움직임과 정치사회적 동학에 대한 포착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질적 방법론을 병행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장기 현지조사가 아닌 단기 조사를 통해서라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 세대별로 특정한 인원을 정해 무작위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현장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상황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질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된 질높은 자료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을 권장드리고 싶다.
양적 방법론을 주로 배운 사람이지만, 질적 방법론의 병용에 대한 필요성을 나 스스로도 절감하게 된 구절이었다. 그래. 태국을 전공한다고 하면서 태국에 직접 다녀와보지 않고 적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2023년 11월에 마침 한국동남아학회 전제성 회장님과 518기념재단의 지원으로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Asia Democracy Network의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총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때 태국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친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앞으로 쓸 논문에 밑거름이 되었고 특히 2024년 말에 직접 태국으로 현지 조사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적 분석을 컴퓨터 앞에서 탁탁 만들어냈다고 다가 아니라 직접 가서 태국을 살펴보는 것이 연구의 깊이에 더 도움이 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