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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Oct 19. 2023

못난 애비들의 싸움

휴가 (A Leave, 2021)

*** 고 임재춘 노동자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80년 대 초반에는 설날과 추석 연휴가 되면 가족들이 모여 극장에 가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땐 한국영화 중에서는 반공 전쟁영화가 아니면 가족들이 같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드물어서, 보통 성룡 주연의 홍콩 무협영화들이 명절 중심으로 개봉했었죠. 이후에 <배틀크리크>와 <프로텍터>와 같은 현대물이 나오기 전까지의 성룡의 영화들은 대개 줄거리가 대동소이했어요. 먼저 재능은 뛰어나지만 무척 게으른 한량이 주인공 성룡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가족이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죠. 슬픔에 잠겨 방탕하게 살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은둔한 무술 고수의 소문을 들어요. 그리고 삼고초려를 해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웬걸, 복수를 위해 무술을 배우려던 계획이었는데, 그냥 마당 쓸기, 장작 패기, 물 긷기만 주구장창하게 됩니다. 그게 무공을 익히기 위한 기초체력을 닦는 일이라는 걸 모르고 주인공은 온갖 불평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는 거죠. 어릴 적부터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에게 있어서 배움의 자세라는 건 저런 거였어요. 하등에 쓸모없어 보이는 걸 반복해가다 보면 어느새 체력이 붙고, 그러고 나서 고급 기술을 익히게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다'는 믿음은 단지 배움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큰 일을 도모하려면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마무리를 한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옛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있잖아요.


근데 사실, 인생이 어디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가나요. 번번이 지뢰밭을 걸어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일 투성이인데. 게다가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수신(修身)만 해도 평생토록 노력해야 하는 일인데, 꼭 이걸 먼저 마무리해야지만 가정도 꾸리고 그럴 수 있다면 너무 막막하지 않나요? 현직 캐나다 총리인 저스틴 트뤼도는 얼마 전에 부인과 결별을 발표했는데, 그들의 개인사정도 모르면서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수반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도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잖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을 방기하고 다른 일을 도모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 "어이구 쯧쯧쯧... 지 가족 하나 제대로 단도리 못하는 놈이..." 하면서 종종 사용되는 형국이죠. 영화 <휴가>의 재복처럼 말이에요.





휴가 (A Leave, 2021)



제작 : 작업장 '봄'

배급 : (주)인디스토리

각본 / 연출 : 이란희

출연 : 이봉하, 김아석, 신운섭




영화 <휴가>의 도입부는 회사의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스산해진 농성장이 비추면서 시작합니다.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노조 전체가 5년 넘게 복직 투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시내 한복판 천막 안에서 찬 바람을 맞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집행부뿐이에요. 사법부 최고기관의 판단에 항의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확성기를 들고, 서명을 받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지만, 추운 날 여기 나와서 이 고생을 하더라도 저기 안락한 의자에 앉은 채 전관 변호사를 앞세운 저 사람들에게 법적 다툼에서 졌다는 사실에, 나의 고생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도 관심조차 받지도 못하고, 아무런 기약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요. 이제 일반 조합원들은 재판에도 나오질 않거든요. 귀찮아서든 미안해서든.


맨날 연대만 해? 도대체 언제까지 연대만 할 건데?


재판에 진 마당에 여전히 칠판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연대 투쟁 일정표를 보고 뱉어낸 재복의 불평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우리 싸움이 진 것도 조합원들에게조차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 그래서 이제 이 농성장을 접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판국에 다른 사업장 투쟁을 도우러 가다니요. 뭣보다 대법원 판결로 이제 모든 걸 접고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건데 일정이 저렇게 많으니까요.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5년간 안정적인 벌이 없이 집 밖으로 돌기만 해서 재복의 가정은 그야말로 파탄 지경이잖아요. 그런 재복의 모습을 보면 당연한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어요. 자기 가족들의 희생에 빚져가면서까지 하는 복직 투쟁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건지.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좀 부당하는 건 알죠. 세계적인 팝스타나 헐리우드 배우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음악이나 영화를 위해 가정을 희생하지 말라고 비난하지는 않으니까요.


딸랑 세 명만 남은 텐트 안에서도 '너 때문에 괜히 노조는 해 가지고', '니가 한 게 뭐 있냐' 하면서, 쏘세지 반찬으로 촉발된 갈등이 점점 극심해지게 됩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생각이 달라도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위기에 몰리면 아주 작은 갈등도 도화선이 되는 거죠. 이때, 만용이 우리도 휴가를 갖자고 한 제안은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휴가'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자기 본업을 더 충실히 하기 위해서 심리적, 체력적 환기를 갖는 것이잖아요. 때문에 정기적인 소득이 없더라도 정규직 노동자만큼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 있는 예술 창작인도, 장기 구직자도, 고시생도, 그리고 파업 농성 중인 노동자 역시 휴가를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또 충분히 쉬고 와서 본업으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재복이 휴가 동안 경제활동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것도 어쩌면 당시 본업인 복직 투쟁을 더 충실히 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재복의 휴가 내내, 관객들은 과연 재복이 농성장으로 돌아가서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재복과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보다 더 가슴을 졸이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2007년 무단 폐업과 정리해고를 강행한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과 거기에 맞서서 13년간 싸웠던 노동쟁의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회사는 경영악화를 사유로 내세웠지만 사실 1996 ~ 2007년까지 한차례 빼고 매번 흑자를 기록했던 알짜배기 회사였죠. 사장은 전 세계 120번째 꼽히는 천억 대 부자로 기록이 남았고요. 정리해고 무렵엔 임원진에게 성과급 300%도 지급되었고, 2006년 하반기 ㈜콜트악기 신용등급은 '우수'였어요. 하지만,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무척 가혹한 노동환경이었다고 해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창문도 없애고 분진을 막을 마스크나 목장갑도 일주일에 한 개씩만 지급되어서 매일 빨아서 써야 했다고 합니다 (https://cortaction.wordpress.com/workers-stories/노동자의-이야기/ ). 노조가 생긴 이후인 2007년 지방 노동청-검찰 합동조사에서 27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고 하니까, 그 이전에는 더욱 심각했겠죠. 게다가 관리직들의 잦은 성추행, 그리고 징벌적인 순환배치로 2005년에 한 여성 노동자가 회사 뒷산에서 회사 작업복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어요. 결국 2006년에 콜텍이 노조를 설립하게 되자 바로 이듬해 3월부터 정리해고를 단행한 걸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심지어 산업재해로 입원 중인 노동자들부터 해직처리하더니 4월에 콜텍 공장을 아예 폐업해 버립니다. 이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부 명령, 벌금, 점거농성, 분신, 용역깡패 고용에 대한 상해교사 기소, 고공농성, 단식 등이 이어지고, 2009년 서울 고등법원에서는 회사의 정리해고 사유가 긴급한 경영악화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2012년 양승태 - 고영한 대법원에서 "장래에 올 수도 있는 경영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공장 폐쇄는 존중되어야 한다"하면서 콜텍의 폐업을 지지했습니다 (같은 날, 콜트의 경우는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노동자들이 회사로 돌아간 3개월 후 회사는 다시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국내 공장을 정리했습니다. 이후 2017년에, 대법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회사에 복직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여집니다).


지금은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처음에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시작할 때 내세웠던 요구사항은 '구타금지, '두발자율화'였다고 하죠.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서글픈 노동 환경과 회사 측의 태도, 그리고 매번 회사의 편을 들어주는 공권력을 부딪히다 보면, 결국 힘없는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 괴롭혔던 건 이거예요. 과연 저게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수백 명의 동료들이 다 떠나가고 3명이 남아서 (실제 콜트/콜텍 농성 텐트에도 콜트 1명, 콜텍 3명만 남았다고 합니다), 다들 가정이 붕괴되고 자녀들을 생활고에 내몰면서까지 저렇게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질문 말이에요. 그동안 못 했던 애비 노릇을 휴가 나왔다고 좀 하는가 싶더니, 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농성장으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자신의 존엄성을 위한 싸움은 고결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제 입장에선 먼저 처자식 안 굶기는 일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었던 거예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는 다른 생각을 하는 거였죠. 어쩌면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영화 속 선인가구 지회의 농성천막에는 단 3명만 남았던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바로 재복이 그렇게 불평했던 연대 일정이 빼곡히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백 명이 모여서 만든 노동조합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극소수 만이 끝까지 남아서 농성장을 지키기 때문에, 선인가구, 콜트/콜텍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 농성장도 마찬가지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서로 품앗이하듯이 상대의 농성장을 찾아 연대투쟁을 하게 되는 거죠. 빈틈없이 스케줄을 짜는 것도, 단지 이탈자를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고립감을 느끼지 않게끔 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영석이 고공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했을 때 만용이 심하게 만류했던 것이었죠. 모든 복잡한 일정에서 벗어나 혼자 철탑 위에 올라가는 것은 극단의 외로움에 빠지게 하니까요. 아무리 재복이 올려주는 쏘세지 반찬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처음에는 "(수십 년간 청춘을 바친) 회사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분노로 시작했을지 모를 싸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하는 절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싸움이 지속되면 절반 정도는 지기 싫어서, 저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싫어서, 저들이 저러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와 같은 파이터 본능으로 버티게 되고, 또 절반 정도는 사장이 금방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러 나오겠지, 몇 달 안에 쇼부보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버티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모르는 거죠. 그리고 싸우면 싸울수록 깨닫습니다. 지금 나라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이 절대 저절로 바뀔 리가 없다는 걸. 비록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 못 지는 못난 애비이지만, 적어도 자식들 대에선 비정규직이라고 멸시를 당하거나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에서 이유 없이 짤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걸. 이 싸움이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이 미친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만들 거라는 걸. 이렇게 절망스러운 세상을 가만 둘 수가 없어서 계속 싸우게 되는 거죠. 실제로 콜트/콜텍 노사분규는 2011년에 남녀차별임금청구사건을 승소로 이끈 적이 있죠. 남녀가 동일한 노동하고도 임금 차등됐던 것을 시정하도록 한 대한민국 최초 판결이었고 피고인 박영호 사장은 고용평등보장법 위반으로 벌금 1000만 원을 처분받았습니다.


콜텍 투쟁에 끝까지 남아서 농성한 3인의 인터뷰를 보면 한결같이 애비노릇을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해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자식 세대의 삶을 걱정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여전히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말이죠. 영화 속의 재복도 마찬가지예요. 간만에 집에 찾아 가지만 대놓고 애비를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뭐라 떳떳하게 할 말이 없죠. 밥 먹고 다니라고 잔소리하는 것 밖에. 언제 막혔을지도 모르는 싱크대 하수도와 돼지우리 같은 집안 꼴을 청소하면서, 어쩌면 재복 역시, 자신이 무슨 독립운동을 한다고 애들을 다 이렇게 방치하고 사는가, 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반드시 곁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회사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산업재해 신청 하나 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자기 딸 또래의 준영을 만나면서, 그리고 준영의 빈자리를 채우러 온 어린 현장실습생을 만나면서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싸움이 그냥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돌아가기 싫지만 자신이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딸들이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걸. 그리고 이것이 못난 애비가 딸들에게 지금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거라는 걸 말이죠.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의 13년 싸움을 거쳐서 깨닫게 된 승리의 요건이 복직이나 보상, 위로금,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박영호 사장의 약속 이행이 아니라 “우리가 싸우기 전보다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 비정규직법과 정리해고만이라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요.


그렇다고, 재복이나 만용, 영석, 임재춘 노동자와 김경봉, 이인근 노동자들이 항상 결의에 차있고 항상 투쟁의지가 불탔었던 건 아니었겠죠. 매일매일 그림자처럼 잘 살고 있는 건지 회의가 따라왔을 거예요. (고) 임재춘 노동자는 다른 인터뷰에서, 주말에 집에 갔다가 농성장으로 돌아올 때 끔찍하게도 오기 싫다고 하더군요. 매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른 선택인지 고민했다고도 하고요. 그래도, '일정이 있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 농성장으로 다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고 합니다. 밤늦게까지 소란스러운 행길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해서도 고민을 했던 것도 아니고,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한테 맞아서 앞니가 부러져서 그런 것도 아니죠. 오히려 이들에게 있어서 더 큰 고민은 자신들의 투쟁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자기와 친한 커뮤니티 안에서만 갇힌 채 사회의 다른 쪽에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13년의 콜트/콜텍 노동 쟁의기간 동안 관심을 가져준 언론은 극소수였으니까요. 자신들의 투쟁기록을 모아 책으로 낸 (고) 임재춘 노동자 역시 끊임없는 회의를 한 페이지에 남겼습니다.


"우리들의 이 싸움이 우리들만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정말 나아질까…. 의심스럽다."



맞아요. 어쩌면 영화 속 재복과 영석, 만용 그리고 콜텍의 임재춘, 이인근, 김경봉 노동자들 모두 빵점짜리 남편, 빵점짜리 아빠였을 거예요. 어쩌면 이들은 물 긷기, 장작 패기도 안 하고 그냥 곧바로 무공 수련에 뛰어드는 풋내기들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싸움보다 가족들의 생계를 선택한 사람들이 결코 비겁한 배신자가 아닌 것처럼, 가정을 방기하고 거대한 적들에 맞서 싸우는 걸 선택한 사람들을 무책임한 몽상가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거 아닐까요? 적어도 이런 분들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매번 나 하나 인간 구실하면서 사는 것도 무척 힘들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노동자의 자부심', '수출 산업역군으로서의 긍지'에 대해서는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회사나 직무와 자신과의 관계가 단순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존재하는 동양식 직업관에서는, 직장을 잃을 경우 삶의 의미도 같이 잃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국가 경제규모가 바뀌면서 산업 패러다임이 따라 변화하는 건 피하기 어렵잖아요. 예를 들어 당장 요즘은 전 지구적으로 탄소배출로 인한 환경위기에 경각심을 가지고 사는데, 관련된 산업에 아직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어요. 40년을 일했든 50년을 일했든, 자신이 몸 담았던 일에서 느닷없이 떠나야 하는 건 이제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들의 생계 구제와 경력 전환은 국가와 사회에서 같이 도와야 하는 것이지 고용주만 떠맡아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업을 만들고 그에 따른 고용을 만드는 것은 물론 기업이지만 그 직업을 가진 납세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유하게 하는 책임은 국가에서 져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그런 책임은커녕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노동쟁의를 단속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근로기준법 예외조항을 두고 있으니, 이 나라는 친기업적이라기보다는 반노동자적이라고 볼 수밖에요. 게다가 사용자의 위법행위에 대해선 어찌 그리 관대한지.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농성장을 파괴하고 노동자를 때렸는데 벌금 30만 원에서 300만 원,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27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었는데도 과태료 1,635만 원이 뭡니까? 물론 한 나라의 정부 정책은 그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반영하는 법이니까, 무작정 정부만 욕할 수만은 없겠죠. 사회 전체가 만연해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는 거대한 의자놀이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이것 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렇게 오랜 시간 찬 바닥, 혹은 철탑 위에서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의사, 판검사, 기업가 들이랑 똑같이 벌고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서 땡깡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요. 재능이 뛰어나거나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거기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걸 질투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조금 덜 노력하고, 때로는 실수를 하며 살았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벌만 받으며 살아서는 안된다는 걸 말하는 거라는 걸요. <송곳>의 고구신 말대로,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실제 콜트/콜텍 농성장 텐트에는 이런 구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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