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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an 04. 2024

연말에 휴가를 쓴다는 것

이민기 속집 외전 - 빅토리아 다운타운 여행 #1

10여 년 전, 여느 때와 같이 심란하게 컴퓨터 매장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어떤 손님과 제법 시끄러운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게 환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성인용 게임을 사려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요구해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마침 내가 제일 고참이었을 때라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었던 상황. 그 손님이 결국 답답해하면서 내게 뱉은 말은 "네가 왜 아직도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였다. 단지 나의 융통성 없음에 짜증을 내는 말이라는 건 알아들었지만, 나로서는 한창 소매업에 질력이 나서 매일같이 구직활동을 했음에도 별 성과가 없어 좌절하던 때여서 나도 모르게 진지한 대꾸를 해버리고 말았다. "맞아. 난 이런 곳에나 어울려. I know. I deserve here."


"(~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 ) 자격이 있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deserve"는 상황에 따라 긍정의 의미로도 부정의 의미로도 쓰일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이 상을 탔을 때, 혹은 진급을 했을 때에도 "You deserve it!" 하며 축하를 해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때에도 "He deserves it."으로 쓸 수 있는 셈이다. "그는 벌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는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어의 '자격'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저 대꾸를 하고 있을 당시 내 표정은 무척이나 쓸쓸했을 테니까, "맞아. 난 여기서 오래 일할 자격이 있지!"라는 의미의 말이었을 거라고 오해했을 리는 없다. 그랬다면 그때 순순히 돌아가진 않았을 테니까.


2023년에는 연말 연휴이자 학생들에게는 겨울 방학 기간으로 알려진,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을 관통하는 약 2주간의 날들에 맞춰 휴가를 잡아두었다. 첫 현지 직장을 가진 이후로 오랫동안 공공 부문에서 일해 온 - 그래서 연말에는 강제로 휴가를 써야 하는 - 아내와는 달리, 나는 사실 올해처럼 연말 연휴를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소매업에서 일했을 때는 물론이고, 그 후에 출장 서비스를 다닐 때 역시 연말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서비스콜이 들어왔었다. 사실 서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처럼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가족회합을 하는 건 아니고, 해봐야 아내와 둘이서 저녁을 먹는 정도여서 굳이 연말 연휴에 꼭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남들 놀 때 일을 하게 되면 도로 사정도 그렇고 비교적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었다. 한국에 살면서도 명절 챙기면서 쉰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역만리에 가족이라고는 달랑 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 혼자 집에서 연말 연휴를 보내는 걸 보는 마음이 편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민 온 지 20년도 지났고, 맨땅에 헤딩을 해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자리 잡고 사는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상'...이라. 남들 쉬는 날 같이 쉬는 것을 '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은 몰라도, 명절 때마다 가족들과 교류를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들, 연말연휴에 꼭 쉬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I deserve here."라고 뇌까리면서.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회초년생들, 신규 이민자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대개 휴일에도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정규직 근로자들이 오후 근무나 주말 근무 등을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그 근무시간을 채울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식이다. 아내도 현 직장에 처음 채용되었을 때는 토요일 하루 근무하는 파트타임이었고, 나 역시 현지 직장에 취업하고 13년 넘게 화요일~토요일 근무 시간으로 일했었다. 딱히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월요일 휴무라서 병원이나 은행에 약속 잡기 훨씬 수월했던 면도 있었다. 휴일을 같이 보내야 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말에 하는 지역행사 같은 곳에 참가하기 힘든 정도? 그렇더라 하더라도,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기간 동안 휴가를 내어 이렇게 근교로 여행을 가고 있자니 왠지 우쭐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우쭐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 이게 '상'이 맞는 건가? 내게 이 연말 휴가가 deserve 한가? 우리 차를 실은 페리 출항을 준비하느라 바쁜 BC Ferries의 노동자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저들은 연말 휴가가 deserve 하지 않아서 지금 이 순간 여기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물론 대답은 '아니오'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갈 수 있는 건 내가 뭔가를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게 가능한 직업을 가졌고 그걸 양해해 주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연말에 휴가를 낼 수 있는 건 '상'일 수도 없고, 휴가를 못 낸다고 해서 '벌'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세상에는 1만 6천여 직업이 존재하는데, 각 직업은 시장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고 개인의 필요와 여건에 의해 선택된다. 누군가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예전에 어떤 개그맨은 방송에서 "지금 공부를 안 하면 커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해야 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한 여름 찜통더위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카트를 옮기다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어릴 적에 공부를 안 한 벌을 받은 것인가? 그는 그런 죽음에 deserve 한 것인가?


의료계 종사자, 소방관, 경찰, 군인 등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부터, 철도, 금융, 교통, 우편 등 사회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필수 직종들은 연말에 쉴 수 없다. 물론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금전적 대우도 높다.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걸까?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직종을 옮기거나 은퇴를 해서 연말에는 여행을 갈 수 있는 삶을 즐기고 싶은 걸까? 사실, 자기 직업에 백 퍼센트 만족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을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회사는 직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채용되었고, 그 능력을 발휘하면서 급여를 받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일이 안정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직원들의 급여, 복지 및 안전한 노동환경에 신경을 쓰는 것일 뿐이어서, 직원의 만족도와 회사의 필요가 상충할 때는 어쩔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연말 연휴기간 동안 반드시 휴가를 내어 가족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에게, 명절에 가장 바쁠 수밖에 없는 승객 운송업은 맞지 않는 것뿐이다.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연말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모두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연말 연휴기간에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냥 시키는 일을 구시렁대며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관성적으로 출근을 하고 업무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 코로나로 사회 전체가 봉쇄되었을 때, 이들은 Essential Worker (사회 필수직업 종사자), 혹은 Frontline Worker (사회 최전선 직업 종사자)라고 불리며 찬사와 존경을 받고는 했다. 그들이 맡은 일을 잘 해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고 또는 여가를 즐길 수도 있었다. 이런 그들의 노동에 감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 필수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나 거룩한 희생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지금 하는 일이 싫어서 짜증을 낼 수는 있지만, 연말에도 일해야 하는 직업을 '미천'하다고 구분하며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 근무시간 맞춰 출퇴근을 하고, 일하면서 회사나 클라이언트들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하고, 급여인상을 바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일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연방정부 청사 시설을 관리하는 나 또한 코로나 당시 꼬박꼬박 출근해야 했었다. Essential Worker라는 자부심은 개뿔. 그냥, 전염병으로 인해 세상이 급박하게 변화하는 걸 내 안에서 부정하고 싶었던 건지, 당연하다는 듯이 매일 출근하고 매일 퇴근했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아내가 부러운 적도 없었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그래서 사회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직업이 줄어들어 간다면, 둘 중 하나라도 지속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에 구시렁대며 일을 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감사를. 그리고 그들에게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그러고 보면, 빅토리아 Victoria에는 종종 왔었지만 순전히 놀러 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싶다. 냉동 수리 일을 할 때는 회사 출장으로 몇 차례 온 적이 있었고, 그전에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방문을 했을 때는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해야 했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BC) 주의 수도인 빅토리아 다운타운에는 빅토리아 항구 바로 옆에 있는 주의사당과 여왕이 의회를 방문할 때 묵는 숙소라고 하는 '엠프레스 호텔 (Fairmont Empress)'을 중심으로 유럽식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양식 벽돌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펼쳐져 있다. 오랫동안 유럽 문화에 대한 선망이 있었던 일본 여행산업 입장에서는, 이런 느낌이 있으면서도 거리상 가장 가까운 도시는 빅토리아였던 것이다. 때문에, 한동안 빅토리아 시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넘쳐났었고, 또한 빅토리아 외곽에 있는 대형 정원인 '부차드 가든 (The Buchart Garden)' 역시 빅토리아 다운타운과 패키지로 묶여서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로 유명했었다.


130년 전통의 주의사당 건물


밤에는 불이 들어온다



그 옛날, 한국에 해외 여행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을 무렵에는 해외여행 가이드 책자라고 해봤자 일본에서 출간한 여행책자를 표절, 편집한 것들 뿐이었었어서, 2000년대가 훨씬 지나고 나서도 밴쿠버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빅토리아 다운타운과 부차드 가든은 필수 관광지로 꼽히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한국에서 친지들이 올 때마다, 만만치 않은 페리요금과 입장료를 내고 부차드 가든으로 모시고 가야 하곤 했었다 (그때는 아직 꽃을 좋아할 나이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이 오래된 오해의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빅토리아 시가 위치해 있는 섬이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알려져 있는데, 어쩌면 이 역시 일본 책을 베껴서 처음 출간한 책이 반복 인용되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여기서 밝히지만, 북미 서해안에서 가장 큰 섬으로 밴쿠버의 서편에 있고, 빅토리아 시가 있는 섬의 이름은 '밴쿠버 아일랜드(Vancouver Island)'입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는 캐나다 북극에 있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크리스마스이브 시내를 잠깐 돌아본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이 반짝반짝하다. 위슬러나 벤프, 토피노, 켈로우나 등, 서부 캐나다에서 유명한 관광도시들을 다녀보더라도, 빅토리아 다운타운만큼 생활감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드문 것 같다. 정말이지 이곳 다운타운은 호텔, 식당, 주점, 그리고 쇼핑가 만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엔화에 길들여져 소비도시로 성장을 한 것일까? 건물 하나하나, 길 모퉁이 하나하나가 너무나 예쁘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 친절하지만, 도무지 이곳에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주의사당에 취직해야 하나? 게다가 최근 은행이자의 급등과 임대료의 폭등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코로나 사태에서 아직 회복을 못한 건지, 한 블록마다 한 두 상점이나 식당은 폐업을 한 것이 보인다. 아이고, 참말러, 이 정도면 정말 병이구나. 중증이야. 놀러 왔으면 그냥 놀면 되지 왜 이렇게 먹고살 궁리를 하는 건지.


맨날 여행계획은 자기만 짠다고, 자기도 누군가 미리 계획을 다 짜 놓은 여행에 속 편히 숟가락만 얹고 싶다고 불평을 하는 아내는, 사실 본인이 계획 짜는 걸 무척 좋아한다. 빅토리아 첫날 저녁 메뉴 역시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에 있는 인도-프랑스식 해산물 식당 <Fish Hook>. 콘셉트는 거창하지만, 상가 건물 아래층에 조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는 20석 규모의 동네 식당이다. 예전에 한번 내 출장을 따라온 아내에게 이끌려 간 적이 있었는데, 당일 들여온 생선으로 만든 튀김 - 찜요리가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낮은 온도에 익힌 연어와 크림치즈를 얹은 바게트 샌드위치와, 인도식 향신료와 백포도주로 같이 찐 홍합찜을 '씨저 (Ceasar)' 칵테일과 곁들여 먹었다. 1969년, 캐나다 캘거리 시의 어느 여관 바에서 탄생한 걸로 알려진 씨저는 기본적으로 '블러디 메리'와 같은 레시피에 타바스코 소스와 조개즙을 넣은 칵테일인데, 나에게는 한국의 초고추장이 생각날 때마다 한 잔씩 챙기게 되는 술이다. 지역 주점마다 자신들만의 각색을 해서 만들기도 하는데, Fishhook의 씨저는 마치 식사 대용인 것처럼 칵테일 새우를 넣은 후 피클로 가니쉬를 했다. 하하하. 귀엽네. 그래도 이렇게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도 영업을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칵테일 새우를 넣고 피클로 가니쉬한 Fishhook의 씨저


숙소로 돌아와 잠시 여독을 푼 다음, 어스름이 내릴 즈음 다시 빅토리아 다운타운의 야경을 즐기러 나서본다. 크리스마스이브라서 이미 많은 상점들은 셔터를 내린 상태이기도 했지만, 폐업으로 1층이 비어있는 상가건물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낮에는 안 보이던 수많은 노숙인들이 그 앞에 나타나 잠자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매 블록마다 등장하는 영국식 펍들, 갈색 벽돌에 <해리포터>에나 나올 것만 같은 간판을 건 술집들의 경우 무척 활기차 보여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 사는 거 뭐 있나. 내가 누굴 걱정하고 누굴 동정할 처지인가? 흔히들 말하듯이, 도시는 하나의 생명체 아닌가? 상처도 있고 운동능력이 떨어진 장기도 있겠지만, 세포와 기관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들과, 정책과, 시장의 운동을 전체적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어두운 밤 길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노숙인들의 잠자리에 깜짝 놀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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