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선 Jun 11. 2024

올케어 프로그램

ATM의 비애


십여 년 전에 네가 이곳에 왔을 때 생각이 가끔 나. 그러고 보면 그렇게 같이 놀러 다닌 적이 얼마만이었던 건지. 아마 내가 군대 가기 전에 같이 떠났던 여행 이후로 처음 아니었나 싶어. 밴쿠버 다운타운, 그랜빌 아일랜드, 캐네디안 록키와 같은 관광지는 물론이고 캐나다 이민자 삶을 보여준답시고 주택가, 시민공원, 학교, 도서관, 한인마트 같은 곳도 갔었잖아. 한인마트 앞에 주차했다가 누가 창을 깨고 가방을 훔쳐가기도 했었고, 하하하.


그리고 슈퍼에 들어가 고등어였나, 오징어였나... 를 샀을 때도 기억난다. 이곳 한인 슈퍼에서는 특별 할인행사를 하는 생선은 따로 손질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도 종종 할인 제품을 잔뜩 사서 집에서 손질한 후 냉동실에 쌓아두고 먹기도 하니까. 그때 네가 그랬던 것 같아. 수산물 코너 점원분한테.  돈을 더 드릴 테니까 손질 좀 해주면 안 되냐고. 내가 황급히 널 뜯어말리기는 했지만. 하하하. 사실 여기도 손질해 둔 생선들을 따로 예쁘게 포장해서 팔기도 해. 물론 돈을 더 내야 하긴 하지. 그리고 소비자 중에는 직접 손질하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예쁘게 포장해서 파는 거겠지. 당시 나는 비닐에 담아 파는 걸 사더라도 돈 몇 푼 아끼는 걸 선호했을 뿐이었고. 그런데, 왜 나는 그때 그렇게 깜짝 놀랐을까? “돈을 더 드릴 테니 ~을 좀 해 달라”라고 부탁했던 것에 대해서. 역시 너답게 무척 공손하게 부탁을 했던 거였는데도 말이야. 


이민 첫 해에, 오기 전에 미리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어그러지고 나서, 아는 선배와 진지하게 생존전략을 세워야 했어. 어떻게 밴쿠버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그때 당시는 한국 대학 입시 전형에 어학능력이 도움이 되던 터라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조기 유학들을 많이 왔었어. 또 그 선배 역시 이민 오기 전에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 가족들의 니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나온 결론은 ‘올케어 프로그램 (All Care Program)’이었어. 쉽게 말하자면, 자녀를 홀로 유학 보낸 부모들, 혹은 아내와 자녀만 달랑 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전혀 걱정하지 않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다 케어해 주는 시스템인거지. 학비포함 일인당 일 년에 1억씩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1억으로 택도 없겠지) 받고 말야. 일주일에 몇 번 만나 밥을 먹고, 영화나 스포츠도 같이 하고, 학교 교사와 친구들도 같이 만나고, 그리고 아예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개별 유학생들의 생활을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그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당시 나로서는 1억이라는 돈을 누가 그렇게 쉽게 쓸 것인지 감도 안 오기도 했지만, 아이를 유학 보내놓고 신경을 안 쓰고 싶은 부모의 심정을 알 수가 없었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귀한 성장기를, 8천 킬로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인터넷으로만 감상하려는 아빠, 엄마의 심정을 말야. 적어도 본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있는 기업들 재무상황만큼 만이라도 자식들과 보내는 시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시장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각자가 알아서 했던 수많은 개인 과업들이 분리되어 직업시장에 새롭게 편입된 것 사실이야. 산업형태의 변화로 없어지는 직업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직업의 가짓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 빨래는 세탁소를 거쳐 코인 빨래방의 시대, 빨래를 수거하고 다시 배달해 주는 업체도 있고 말이지. 식당이나 음식 배달을 넘어서 이제 음식재료를 딱 준비해서 새벽에 배달해 주는 직업도 있잖아. 근데 이런 반복되는 가사가 아니라 (약간 귀찮더라도) 직접 했을 때 더 즐거운 일조차 올케어가 더 각광을 받는다는 사실이 씁쓸한 것 같단 말이지. 골프를 치더라도 캐디가 도와주고, 짐 들어주고, 다음 홀까지 카트 타고 다니는 게 대표적인 올케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 멋진 광경을 보면서 초록 잔디 위를 걸어 다니는 재미 따위는 없는 거지. 캠핑을 가더라도, 텐트는 미리 쳐 있고, 모닥불에 불 붙여주고, 고기 구워주고 하는. 낚시를 가더라도 바늘에 미끼 끼워주고, 낚시를 던질 목을 가르쳐 주고, 생선을 바늘에서 빼주고, 매운탕까지 끓여주는 올케어. 대신 이케아에 가서 쇼핑한 후 조립까지 다 마쳐서 집으로 배송해 주는 올케어. 과정이나 노력과 절차는 모두 돈으로 사고 그 결실만 즐기려는 올케어. 나로서는 이게 그럼 도대체 어디서 재미를 느끼려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힘들어. 책모임을 해도 누가 다 세팅을 해놓은 모임에 돈을 내고 참가하고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도 마찬가지. 이러다가는 술도 대신 마셔주고 대신 취해주는 직업이 생길 판이야. 여행도 대신 갔다 와서 감상을 말해주고…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쩌면 바디 프로필처럼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행이 된 몸만들기는 이런 유행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일반적인 취미 생활들에 올케어가 진입하면서 진정한 재미가 흐려지게 된 거지. 텐트를 치다가 실패를 하고, 젖은 나무로 모닥불을 만들려고 한 시간 동안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면서 겪는 재미 같은 게 없어. 다 된 밥상에 돈 내고 수저만 올려놓으려니 이게 취미활동인지 소비활동인지 구분이 안되고 권태가 빨리 오는 거야. 반면에 쇠질을 하고 무게를 치면 그래도 괴로운 만큼은 몸에 변화가 생기니까. 유일하게 남은 노력 반영형 취미 생활이라는 것이 유행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억측일까? 


이외에는 그냥 돈을 버는 생활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엄밀하게 말하면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해내는 생활. 그렇게 해서 얻은 통장 잔액을 캠핑 올케어에 쓰고, 낚시 올케어에 쓰는 생활을 하는 거지. 가끔 4~50대 남성들이 하는 얘기가,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그냥 ATM (현금지급기) 취급을 한다고 하면서 슬퍼하던데 애초에 자신을 ATM으로 만들어 간 건 바로 자기 자신과 자기 부모가 아닌가 생각해. 어릴 적부터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해. 다른 건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게"라는 얘길 듣고 자라서 그런 건지, 커서도 돈만 열심히 벌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다 알아서 해주는  것에 익숙해진 걸지도. 이런 세상에서 삶의 의미나 목표는 더 상위 소비자가 되는 걸 거야. 세상의 모든 걱정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 것이 바로 인생 성공이 되는 셈이지.


팬데믹을 거치고 세계적인 양적완화가 생기면서 금융소득이 노동소득을 앞서는 일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렸어. '파이어족', '주담대'라는 단어들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아. 물론, 이런 현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지. 아직도 납세자 대부분은 근로소득으로 먹고살아야 할 테니까.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올케어 프로그램을 선택해 온 사람들의 대안이 지속가능한 금융소득을 얻고 나머지 시간 동안 여유를 갖는 거라는 건 의미심장한 것 같아. 사람들은 다 알아. 이렇게 사는 건 더 이상 무리라는 걸. 하지만 여전히 탈출하기 위해 백날천날 준비만 하고 있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한 살이라도 젊고, 어깨 결림이 덜하고 무릎 연골이 성할 때, 준비를 그만 마치고 거리로 나서야 해. 자신의 인생을 즐겨야 해. 그러다가 혹시나 발생할 실패 역시 사랑해야 해. 그게 인간으로서 성장이 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해리 스티븐스 빌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