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15
그런 거 있잖아요. 언제부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당연스럽게 내가 맡아서 하는 걸로 모두 생각하고 있는 일. 보통 여럿이 같이 일하는 회사에서 이런 경험이 많죠. 팀장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아무 생각 없이 특정 업무를 툭 맡긴 걸지도 몰라요. 혹은 어떤 사람이 그냥 선의로 아무도 모르게 어떤 일을 찾아서 하는 경우도 있죠. 그리고 그 일이 잘 처리가 된 거죠. 누가 그 일을 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스무스하게, 아무에게도 불편함을 끼치지 않고. 그 순간 그 사람은 그 업무 담당자가 되어버립니다. 자연스럽게. 어쩌다가 그 업무가 빵꾸가 나서 사람들이 "이거 그동안 누가 했던 거지?" 하며 의문이 들 때까지는 적어도. 하지만 어쩌다가 그 일을 맡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도 안 나는 거죠.
이번 책을 쓰면서도 도대체 어쩌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언젠가부터 너무나 당연스럽게 제가 삽화를 그리는 걸로 되었더라구요. '엥? 갑자기요?'라고 따질 경황도 없이 말이죠.
뭐 사실, 이연 작가님과 처음에 호흡과 스타일을 맞춰 볼 겸, 손 풀기 식으로 영화 <니 얼굴>에 대해 쓴 적이 있었죠. 은혜 씨의 재능을 부모가 전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을 보고 약간 부러움의 심정을 담아서. 어릴 적 그림을 그렸던 에피소드를 쓴 적이 있는데, 그래도 그것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 같지는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한테 돈 내고 사라는 책을 만드는 건데, 제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 인간인지 확인도 안 한 채 덜컥 삽화를 맡기긴 쉽지 않았을 것 아녜요. 이연 작가님과 블로그 댓글을 나누면서도, 가끔 손 풀기 식으로 그린 걸 보여 드린 적이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상업용 책에 들어갈 삽화 퀄리티로 증명을 하기에는 그냥 낙서 수준이었어서.
그러다가, 연초에 제가 잠시 글을 놓고 있는 동안, 이연 작가님이 <위시라이프> 출판사와 얘기를 어느 정도 마쳐 놓으셨더라구요. 계약서만 안 썼지 위시라이프에서 책을 내는 걸로 99% 확정, 그리고 전체 분량이나 구성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삽화도 그리는 걸로 결정이 났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여기서 서로의 기대치나 좀 차이가 있었습니다. 편집부에서 생각하는 삽화란 책 사이 공백을 채워주는 어떤 예쁜 도안 같은 거였어요. 영화책이니까, 간단하게 데포마쥬 된 필름이나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 같은 거요. 각 영화 챕터의 시작을 짝수 (왼쪽) 페이지에서 시작하자고 정했다 하더라도, 이전 글이 꼭 홀수 페이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 빈 공간이 남을 건 자명했죠. 그리고 솔직히 이때까진 전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요.
오히려 이때쯤 제게 가장 큰 걱정은 제 글에 관한 거였어요. 내가 뭐라고.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쓰는 건지. 같이 한국 땅에서 부대끼며 고생하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더라도 듣기 싫은 경우가 많은데, 정작 본인 살 당시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자발적으로 탈출을 해놓고는 무슨 자격으로 훈장질을 하는 건지... 에 대한 자각이었죠. 딴 건 몰라도 주제파악은 좀 하는 편이거든요. 공산당처럼 말이 많아 분량이 차고 넘치는데도 굳이 존칭형 어미를 고집했던 것도 조금이라도 덜 재수 없어 보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고 말이죠. 그래서, 만일 삽화를 그려야 한다면, 그냥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장식품보다는 어떤 기능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불평불만이 담긴 제 글을 받아들이기 조금이라도 쉽게. 그래서 개그 만화 같은 걸 넣었으면 했어요, 처음엔. 좀 심각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싶었거든요.
초고가 나오고, 책의 윤곽이 좀 보였지만 당장 만화를 몇 컷을 그려야 하는지는 아직 감감했습니다. 초고라고는 하지만 인디자인에 얹어봐야 분량이나 여백 같은 게 보일 상황이었고, 또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이후에 원고를 수정하면 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그렇다고 쓰게 될지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그림을 무작정 그리는 것도 좀 암담했고 말이죠. 마침, 이연 작가님과 같이 글을 쓰면서 비공개로 블로그에 댓글을 단 부분이 있었는데, 이 수다로 각 영화 사이 빈 공간을 채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위기 환기도 되는 것 같았고요. 제작 뒷얘기 같이 은밀한 느낌도 나고.
이런 식으로 그림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려고 했습니다만... 그럼 친애하는 공저자께서 너무 실망을 하실 것 같아서, 결국은 제가, 제 입으로, 그림을 그리겠노라 선언을 했습니다. 삽화가 아니라, 우리 글에 어울리는 우리만의 영화 포스터를 말이죠. 그리고 각 챕터 앞에 들어가는 게 어떤지. 이때가 한국시간으로 4월 2일. 이때까지만 해도 6월 출간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니까, 3개월 안에 18편의 포스터를 그리기로 한 거죠. 회의 도중 그게 가능하겠냐는 걱정이 당연히 나왔었지만, 어쩌겠어요. Ai를 족치는 수밖에. (근데 Ai가 생각보다 일을 안 도와줘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더랬습니다. 그림은 잘 그리는데, 뭔가 논리가 안 맞는 그림을 그려서. 예를 들어 <업> 포스터에 들어갈 카메라 감독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더니 무슨 카메라 한 대에 렌즈를 여러 개 달아두질 않나, 필드 모니터는 달아 놓고 정작 카메라 감독은 뷰파인더를 쓰고 있질 않나...)
제일 처음에 그린 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였어요. 아마도 그 이미지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리고 '자각약'이라는 제목을 글을 구상할 때부터 생각났었던 것 같습니다. 한나가 목을 매어 스스로 단죄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마치 자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책을 딛고 뛰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표현해 내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이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하고 싶었죠. (아... 이렇게 자기 그림을 자화자찬하다니 ㅠㅠ) 여전히 글만큼이나 선언적이긴 했지만, 이 그림은 꼭 집어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만큼 구상이 쉬웠던 건 <토니 에드만>이었습니다. 이연 작가님의 '니 인생 살어' 글을 읽자마자, 오래전 그날로 돌아가 이 사랑스러운 두 부녀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하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그림 속 털북숭이 괴물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왓차’에서 영화 <토니 에드만>을 꼭 보시길). 너무나 고맙게도, 이연 작가님이 제 그림을 보시고 꼬박꼬박 감동해 주셨어요. 게다가, 처음에 2도 인쇄 레이어 분리에 애를 먹고 있으려니, 편집장님께서 선뜻 CMYK 칼라 인쇄로 밀어붙여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힘을 내서 계속 그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거네요. 누가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칼 들고 협박한 적도 없는데, 결국 제가 꼭 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린 거였네요. 어떨 수 없어요. 보통 일복이 많은 사람들이 다 이렇게 구시렁 대는데, 결국 보면 지 승질에 못 이겨서 자기가 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이연 작가님이랑 카덴자 편집장님 덕분에 다시 깨달았잖아요.
사실 내가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덧 1, 표지 그림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포스터의 초기 스케치입니다.
덧 2, 소소한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짧은 데드라인 안에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걸 연출하는 데 있어서 midjourney 생성형 Ai 기술의 도움이 무척 컸다는 걸 이 자리를 통해 밝힙니다.
덧 3, 8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시민청 동그라미 홀에서 조촐한 출간기념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폴폴 작가님 사회로 진행되고, 이연 작가님은 현장에, 저는 화상회의로 참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