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닥 유료화를 앞두고
필수의료공백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만들어 낸 서비스
딱 6월 한 달 동안이었다, 올해 아이가 약을 먹지 않은 기간은. 몇 주 전부터 다시 후두염을 시작으로 콧물, 기침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에어컨을 세게 튼 건 아닐까, 고기를 너무 적게 먹였나? 자책하게 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다 보면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다. 입원을 안 했으니 말이다. 세돌 지날 때까지 수액 한번 맞은 적 없고, 응급실 한번 간 적 없으니 건강한 편이라고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간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던 나는 응급실을 자주 찾았다. 욕실에서 쓰러져 119를 부른 적도 있고, 회사에서 점심 먹다 실려간 적도 있다. 물론 내 발로 찾아간 적은 부지기수다. 얼마 전에도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응급실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너무나 잘 안다. 하염없는 기다림과 격앙된 사람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사이렌소리. 종종 맘카페엔 아이가 고열인데 응급실에 가야 할까 고민하는 엄마들의 글이 올라온다. 이내 아이가 고열이어도 경끼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가지 말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자신이 경험한 고된 응급실 체험 후기를 들려주면서.
똑닥 앱이 육아필수앱이 된 이유를 생각한다
밤늦게 혹은 휴일에 아이가 아플 때는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초보 엄마들은 답답하다. 이럴 때는 응급실보다는 달빛 어린이병원이 좋은 대안이다. 달빛 어린이병원은 소아 경증환자가 야간이나 휴일에도 응급실이 아닌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하는 시•도 지정 의료기관이다. 야간과 주말에도 진료받을 수 있는 달빛 어린이병원은 2023년 8월 기준 전국에 45개소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세종시에도 얼마 전에 달빛 어린이병원이 생겼다. 기존에 유명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새롭게 달빛 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기존에도 늦게까지 운영했었던 곳인 데다 워낙에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그렇다.
다행히 야간과 휴일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법 큰 어린이 병원도 이달에 새로 문을 열었다. 입원도 할 수 있어 벌써부터 엄마들의 기대가 많았다. 병원이 오픈하자마자 맘카페에는 "새로 생긴 병원도 똑닥으로 접수하나요?" 묻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이곳은 똑닥을 사용하지 않고 초진은 현장에서, 재진은 자체 사이트에서 접수하는 시스템이다).
'똑닥'앱은 영유아를 기르는 부모라면 모를 수 없는 의료서비스 앱이다.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앱으로 진료 접수를 할 수 있어, 대기 부담을 줄여주는 육아 필수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앱은 누적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연계된 병의원만 1만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에 달빛 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유명 소아청소년과는 '똑닥' 앱으로 주로 접수하는데, 1초 컷으로 유명하다. 현장대기도 받지만 한창 아데노바이러스가 창궐했던 지난봄에는 새벽부터 줄 섰다는 간증글이 줄줄이 올라왔었다. 흔히들 아침에 접수하러 가면 점심 먹을 때쯤 진료를 받는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접수와 진료 대기에 대한 악명이 높다.
그런데 9월부터 '똑닥'앱이 유로화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한 달에 천 원, 일 년에 만원이면 그리 비싼 것 아니니 서비스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처음에는 무료로 가입시켜서 익숙해지니 유로전환을 시키는 상술(?)이 괘씸해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다.
유명 소아청소년과를 자주 찾는 엄마들은 어차피 1초 컷이어서 앱은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유료화가 된다니 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희망고문도 아니고).
문득 놀이공원에서 추가 요금을 받고 일반 대기 줄보다 더 빨리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있도록 도입된 패스트트랙 이용권이 떠올랐다. 그때도 '뭐야, 줄 서기도 이제 파는 거야?' 했는데, 결국은 시간을 돈을 주고 사는 시스템이 점점 많아지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것은 놀이공원에서 줄 서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그러하기에 돈을 더 내면 진료를 빨리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공평하지 못하다(돈을 내고 앱을 구독해도 1초 컷이어서 무용지물인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이쯤 되면 이 앱이 왜 육아 필수앱이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가 아파서 이비인후과나 내과, 가정의학과를 이용할 때 '똑닥'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아파 소아과를 가야 할 때에만 이용한다.
유독 소아과에서만 '똑닥' 이용을 많이 하는 건 왜일까. 저출생시대에 아이들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동네 소아과가 없어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은 아닐까. 그러니 '오픈런'이 생기고 '똑닥' 이용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는 필수의료공백이라는 참담한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다. 앱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시간은 절약할 수 있을지 모르나 더 피로해졌다. 아침에는 1초 컷에 마음 조리고, 운 좋게 접수가 되면 되는 대로 순서를 놓칠세라 틈틈이 확인하느라 바쁘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라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외과 의사 공고를 11번이나 냈다는 뉴스를 접하며 불안감이 몰려왔다. 외과와 응급의학과 같은 비인기 진료과목은 채용에 애를 먹은 반면 성형외과는 단번에 채용이 이뤄졌다고 한다(2023.06.14. jtpc 뉴스 인용).
똑닥 유료 서비스는 9월에 시행된다. 맘카페에 들어가 보면 벌써 사전 신청을 한 성격 급한 엄마들도 다수 보인다. 그에 비하면 나는 느긋한 편이다. 요즘은 우리 아이만 아픈 건지 소아과가 봄철처럼 분비지 않아서다. 하지만 나는 이 이벤트의 결말을 알고 있다. 씁쓸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