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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최 Nov 25. 2023

집 장만이 만만치 않다는 그림책

대체 집이 뭐길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는 편이다. 요새는 어떤 책이 잘 팔리나 궁금해서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생긴 일종의 직업병인데 지금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만에 어린이책 코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의 그림책을 발견했다. 바로 <집 장만이 만만치 않아>다. 대한민국에 사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제목이다. 윤정미 작가의 전작 <도시, 가나다>를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반갑기도 했다.


다른 선택을 했기에 가능한 상상들


<집 장만이 만만치 않아>의 표지.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와 다섯 동료들


그림책의 주인공은 제비다(집 장만이 만만치 않은 건 사람뿐만이 아닌가 보다).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는 '뭐든지 큰 나라'에 산다. 눈이 밝으니 밥을 잘 먹고, 발이 빠르니 어디든 먼저 가는 제비다. 어느 날, 임금님이 어마어마하게 큰 궁궐을 짓는데 튼튼한 제비 집을 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옆 마을 제비 집들은 이미 다 없어졌고, 다들 '소문이 자자한 나라'로 떠난다고 난리다.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 역시 언제 집이 없어질 줄 모른다는 위기감에 '소문이 자자한 나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소문이 자자한 나라'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달리기도 잘해야 하고, 눈도 밝아야 한다. 이쯤은 문제없다고 생각하던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는 날개가 다섯 치는 되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날개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나무에 묶어서 늘려보기도 하고, 날개를 길게 해 준다는 빨간 열매를 찾아 먹기도 한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원산에 가서 소원도 빌어보지만 모두 소용이 없다.


마지막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깃털을 주워서 날개에 꽂는 것이다. 하지만 깃털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자 처음부터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를 지켜보며 응원하던 다섯 마리 동료 제비들은 자신들의 깃털을 뽑아 그에게 건넨다.                                                                        


'소문이 자자한 나라'에 가기 위한 테스트를 받으려는 수많은 제비들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받으러 갔지만, 꼼수가 통할리 있나. 가짜 깃털이 들통나고 결국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다. 가짜 깃털을 뽑다가 연꽃밭으로 굴러 떨어진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는 하늘길만 길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땅길로 돌아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다섯 동료는 길 떠나는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에게 나침반과 네잎클로버, 책과 애벌레, 고약을 선물로 건네고 그는 답례로 요술 씨를 건넨다.

 "소문이 자자한 나라의 하늘길이 아주 멀고 험하다지요. 이 박씨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소."


흔한 해피엔딩이라면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는 집을 장만해야 한다. 그것도 전에 살던 집보다 더 크고 멋진 집을. 거기에 결혼도 하고 아들, 딸까지 낳아 잘 먹고 잘살면 이보다 더 완벽한 해피엔딩은 없겠지. 하지만 작가는 다른 선택을 한다.

땅길을 걸어 '소문이 자자한 나라'를 향해 가는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

봇짐을 지고 당당히 걸어서 '소문이 자자한 나라'를 향해 가는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 그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까. 어쩌면 '내 집'마련이라는 목표를 잊은 채 여행하는 삶에 빠질지도 모르고, 세상을 바꿀만한 위대한 발견을 해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것은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에게 시련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될 테다.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가 친구들에게 요술 씨앗인 '박씨'를 나눠주는데 문득 한 전래동화가 떠올랐다. 바로 흥부놀부다. 혹시 저 제비 중에 한 명이 흥부에게 박씨를 전달해 주는 그 제비는 아닐까? 아니 어쩌면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가 그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그저 흥부에게 도움을 주는 조연인 '제비'에게 이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새롭고 재미있다.


<집 장만이 만만치 않아>는 이렇듯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그림책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상은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가 다른 선택을 했기에 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 집 장만이 얼마나 어렵냐면


수도권에서 맞벌이를 하는 지인이 있다. 남편은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아내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아이티 기업 계열사의 임원이다. 얼마 전 연락을 했더니 아내가 외국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아마도 남편이 직장을 접고 따라 나가게 될 거 같다고 했다. 큰 이유 중 하나가 집을 못 산 거였다.


"아니, 오빠네 부부 같은 사람들이 집을 못 사면 도대체 누가 집을 사는 거야?"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들은,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며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지만 집을 사지 못했다. 문득 평범한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40년 가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하다는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얼마 전 '갑분' 김포시의 서울 편입 이슈로 전국이 들썩였다. 여당이 특별법을 발의하며 불을 지피자, 구리를 비롯한 다른 경기도의 도시들도 잇달아 들썩였다. 이렇게 경기도의 도시들이 너도나도 서울에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집 때문이다. 서울시가 되면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놈의 집집집. 대한민국은 '어디 사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거기 집값이 얼마예요?'로 대화가 끝나는 나라다. '엘사'(LH사는 사람), '순살 자이'(철근을 빼먹어서 순살치킨처럼 비싸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청포족'(가점이 낮아서 청약 문턱을 넘기 힘든 청년층) 같은 집과 관련된 신조어도 넘쳐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집'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이 불안한 사회에서 '집'이라는 안식처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가 되면서도, 모든 국민의 꿈이 건물주(조물주 보다 높으신 분)로 대동단결되는 나라에서 사는 삶에 지칠 때가 있다. 집 평수를 늘리기 위해 여행을 포기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뛴다. 집에 매몰되어 사는 삶은 다른 욕망을 거세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모든 욕망을.


얼마 전 청약 당첨으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몇 년 만에 팔고 타운하우스에 들어가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주변에서 타운하우스는 나중에 팔 때 똥값(?)인데 왜 아파트를 팔고 거기로 들어가려 하느냐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남편의 오랜 꿈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거라 큰맘 먹고 결심을 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림책 <집 장만이 만만치 않아>에서 제비를 지켜보던 다섯 동료들은 처음엔 관찰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보여 안 보여 날개' 제비를 보며, 점차 그의 편에 서서 응원하게 된다. 마침내 주인공 제비가 '쿨'하게 다른 선택을 할 때, 그를 믿고 지지하는 친구가 된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제비'를 현실에서 만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분명한 건, '소문이 자자한 나라'에 들어가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리란 거다(이 테스트는 꼭 아파트 청약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집을 장만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고, 네가 가는 길을 응원한다고 그렇게 말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림책 속 다섯 제비들처럼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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