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잘레스 파파 Apr 09. 2022

귀하디 귀한 밥

파친코 명장면 리뷰 <1>

어머니의 마지막 밥상 (출처 : 파친코 4화)


"오늘은 쌀 사러 왔십니더.

마이도 필요 없고 두 홉이면 됩니더"


"쌀은 아무한테나 못 파는 거 알제?

일본 관리가 와서 검사하는데 그 여 사는

일본 사람한테 팔기 모자르믄 내가 큰 일난다 안 카나"


"딸내미가 오늘 시집을 갔십니더"


"선자가? 참 말이가? 와 인자 이바구하노?

인자 한 시름 놓겄네"


"좋은 남자 만났십니더. 마 하늘이 도우셨지예"


"그라모. 오늘 아침에 기장쌀이 쪼매 들어왔는데

이거라도 가가라. 보리 값만 받고 내줄게"


"우리 딸내미

쪼매 있다가 신랑 따라 일본 갑니더

지가 짜달시리 뭐를 해 줄 형편은 못 되고

우리 땅 쌀 맛이라도 뵈 주고 싶습니더

그거라도 멕이가 보내고 싶어예"


오늘은 쌀 사러 왔십니더


"세 홉이데이"


"고맙십니더"


"선자 어매도 먹음서

설움, 쪼매 삼키라이"




딸의 결혼식 날

일본으로 떠나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 땅에서 나는 쌀로 직접 밥을 지어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보내고 싶었던 어머니


조선인들에겐 쌀 한 홉조차도

엄격하게 금지됐던 일제 식민지 시대


안 될 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귀한 우리 쌀 두 홉을 부탁했고,

이 사정을 들은 쌀 가게 주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쌀 세 홉을 내주며 당부했다.


"선자 어매도 먹음서, 설움 쪼매 삼키래이"




지금이야 그깟 쌀 한 그릇이 뭐라고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쌀조차 먹기 어려웠던

암울한 시기였기에

저 쌀밥 한 그릇은 

정말 귀하디 귀한 밥이었다.


일본의 볍씨와 도정기술을 입혀

조선의 농토를 메운

자포니카 십분도 백미는

조선에 사는 일본인들과

전방과 오사카로 곳곳에 보내져

정작 이 땅에 사는 민족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맛이었다.


의도치 않게

쌀에 한맺힌 설움의 역사였다.

 


형용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

더할 나위 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어머니

언젠가부터 우리는 사소한 사랑의 맛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지

밥 한 그릇에도 이어지는 귀한 모정이

어느새 잊혀져 갔더라


그래서 너무나 귀한 장면이었다.


일본으로 귀한 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마지막 밥상


조선인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귀한 조선 쌀을 부탁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설움을 알기에

더 내어준 정 많은 우리의 이웃


눈물로 어머니가 손수 지어 준

밥을 삼키는 딸의 모습


모든 대사와 모든 영상들이

필사하고, 모방하고 싶을 정도로

귀하디 귀한 장면이었다.


<파친코>

모든 장면들이 영광이었기에

장면들을 하나하나 담아보려 한다.


그 첫 씬이

"귀하디 귀한 밥"이었다.



최고의 오프닝이었던 영상 하나를 남기며


#파친코 오프닝 영상

Pachinko — Opening Title Sequence | Apple TV+ - YouTube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의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